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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10. 2017

저무는 '개 시대', 이제는 고양이 타임

산골독서가의 세상읽기

               


잠시 일본 삿포로에 다녀왔다. 눈이 보고 싶어서다. 편집된 기억일 수 있지만, 어린 시절의 겨울은 늘 눈 세상이었다. 요즘에는 한겨울에도 눈 보기가 쉽지 않다. 지리산 피아골은 더욱 그렇다. 


일본 도착하기 전날, 공교롭게도 삿포로에 50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 눈이 1미터나 쌓였다. 어디를 봐도 눈 세상. 거의 날마다 눈이 내렸다. 화창한 날이면 눈에 반사된 태양빛 탓에 눈이 부셨다. 


눈의 고장 삿포로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출발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배경이 홋카이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국>의 주요 배경은 일본 본토 니가타현의 온천 마을 에치고 유자와다.


눈 다음으로 놀라운 건 일본인들의 고양이 사랑이다. 시내 어느 곳이든 고양이 캐릭터 그림, 조형물이 쉽게 보였다. 백화점에서는 '고양이 숍'을 발견했다.


한국의 '애견 숍' 이미지를 생각하면 안 된다. 고양이에게 필요한 사료, 밥그릇 따위를 파는 곳이 아니다. 고양이 잡지, 고양이 브로마이드, 고양이 달력, 고양이 가방, 고양이 목걸이와 반지, 고양이 마우스패드, 고양이 노트, 고양이 필통…. 그야말로 고양이 하나로 통일된 장소,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간을 위한 곳이다. 


매장은 사람으로 넘쳤다. 매장 바로 옆 갤러리에서는 고양이 사진전이 열렸다. 역시 사람으로 붐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구나. 


'한국에서 고양이 관련 사업을 하면 대박을 치겠구나!'


일본을 보면 5~10년 뒤의 한국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일본의 여러 유행이 5~10년 뒤면 한국에 상륙하기 때문이다. 걸그룹, 노래방, 스티커 사진, TV '먹방' 프로그램, 심지어 부동산 폭락 조짐까지. 이런 걸 감안하면 일본의 고양이 열풍이 한국으로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내 주변을 봐도 고양이를 키우는 일명 '애묘인'들이 부쩍 늘었다. 10년 전에는 반려동물로 개가 대세였으나, 이제는 고양이가 눈에 자주 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마치 '고양이 사진 경연대회'라도 열린 분위기다. 예쁘고 깜찍한 고양이 사진이 넘친다. 돈에 눈 밝은 자, 사업에 예민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미 고양이로 가득할 거다. 


요즘 멀리 여행을 가면 스마트폰, 태블릿PC에 전자책을 담아간다. 해외여행 갈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그 나라 관련 책을 챙긴다. 이번엔 나쓰메 소세키가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챙겼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어서 챙겼는데, 공교롭게도 분위기도 잘 맞았다. 물론 이 소설의 배경은 삿포로가 아닌 도쿄지만 말이다. 


내가 왜 인간으로 태어나 이 고생을 하는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가난한 영어교사 집에 사는 고양이가 화자인 소설이다. 고양이 눈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 이야기. 읽다보면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인간이 얼마나 찌질하고, 못나고, 궁상맞고, 멍청하고, 합리적이지 않은지…. 읽다보면 낯간지럽고 민망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애묘인들은 고양이가 얼마나 철학적이고, 우아하고, 도도한지 장황하게 말하곤 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 그 말에 수긍이 간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다른 종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서술한 것이어서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를 곱씹게 한다. 


'동물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할까', '고양이는 날마다 피곤한 모습으로 출근하는 인간이란 종을 어떻게 판단할까', '왜 인간은 고양이처럼 털도 없이 태어나 계절마다 옷을 사 입어야 할까' 등 말이다. 바야흐로 애묘인이 늘고, 도심 곳곳에 길고양이가 넘치는 이 시대에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소설이다.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다가 묵직하게 밀려드는 성찰의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 피아골에도 길고양이가 많다. 고양이들은 마을과 들판, 뒷산을 제 집처럼 자유롭게 거닌다. 이에 반해 개들은 거의 집에 묶여 있다. 주인이 주는 밥을 먹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줄에 묶인 채 지낸다. 개를 풀어놓으면 이장님이 마이크를 들고 방송을 시작한다. 이전에 살던 마을에서는 이런 방송을 자주 들었다. 


"아, 아, 이장입니다. 주민 여러분들은, 개끈이 풀려 개가 돌아다니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개가 마을 골목에 똥을 싸면 미관상 보기 좋지 않습니다. 꼭! 개가 똥을 싸면 치우시고, 무엇보다 개가 풀리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개 때문에 마을 방송을 하는 게, 산골에서 나름 ‘공중파’로 통하는 방송에 ‘똥’이 자연스레 등장하는 게 참 신선했다. 개는 인간에게 가깝지만, 그만큼 단속과 통제의 대상이다. 그에 비하면 잘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길고양이는 자유의 대가로 먹고, 자는 일에서 고단함을 느끼겠지만 말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주인공 고양이는 실천도 못할 말을 장황하게 하고, 날마다 고되게 일하면서도 가난한, 서로 잘난 척하면서 위선을 떠는 인간을 마음껏 조롱하고 비웃는다. 고양이 시선에서 보면, 과연 인간이 많이 진화한 고등생물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나도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다. 볕을 쬐거나, 낮잠을 자거나,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게 고양이의 일상이다. 종종 고양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왜 인간으로 태어나 이 고생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네.'


만국의 애묘인에게, 늘 피곤한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에게 강추한다. 읽다보면, 아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할 거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저무는 '개 시대', 이제는 고양이 타임]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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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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