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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13. 2017

김남중표 청소년소설을 만들다

김남중 작가 인터뷰

                      


'음란마귀'가 들어온 것일까. 반팔 티셔츠를 입은 작가 프로필 사진에서 유독 딱 벌어진 어깨와 우람한 팔 근육이 눈에 띄다니. 청소년 소설을 펴낸 동화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는 참으로 부적절한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자만이 동화를 읽을 수 있다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동화를 손에서 놓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가! 


동화작가와 근육질의 남자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서 길을 잃은 것은 순전히 작가 탓이라고 우겨본다. 1998년 신춘문예에 동화로 등단한 후 18년 동안 매년 3~4권씩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 치고는 알려진 게 너무 없기 때문에 이런 엉뚱한 부분에 꽂히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어릴 적 탐험가가 되고 싶었으나 읽고 놀고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는 김남중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기자에게도 일종의 탐험이었다. 


사진에서 본 대로 김남중 작가는 훤칠한 키에 군살 없는 몸매 그리고 선 굵은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외모만 본다면 우리가 은연중 갖고 있는 동화작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첫인상이었다. 1년에 몇 차례씩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고, 야외 활동을 즐기는 취미 역시 남다른 면모였다. 그의 탐험은 계속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첫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그는 영락없는 동화작가였다. 마치 어린아이를 앞에 앉혀놓고 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그의 태도와 목소리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따뜻했다. ‘외강내유’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것이다.




사람에게서 성적 욕망을 빼내면 무엇이 강렬하게 남을까


가난한 나라 다압에서 태어난 지니는 꿈을 찾아 렌막으로 탈출한다. 그러나 밀입국을 위해 브로커의 도움을 받았던 지니는 렌막에 건너온 뒤에도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 돌보는 일을 하던 지니는 빚을 갚기 위해 강제로 '클럽 캥거루'에서 일하게 된다.


지니가 룸살롱을 연상시키는 클럽 캥거루에 나갈 때 독자들은 열여덟 소녀의 삶이 유린당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의 뻔한 상상력에 일침을 가하듯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클럽 캥거루는 남자들이 여자를 사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라 아기를 보러 오는 것이었다. 일종의 아빠 체험을 위한 '아기 룸살롱'이라고나 할까. 렌막에서는 일부 부유층만이 가족을 꾸리고 아기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클럽 캥거루는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다. 이런 기발한 설정과 긴박함은 소설 초반부터 강렬하게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건 하나의 메모였어요. 룸살롱은 상업적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일그러뜨리는 단적인 장소잖아요. 만약 사람에게서 이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빼내면 어떤 부분들이 강렬하게 남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사랑이 사라진 후에는 종족 본능이 인간을 강하게 이끌어가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고, 이 욕망을 이용하는 왜곡된 공간이 또 생겨나지 않을까 해서 '아기 룸살롱'이라는 짧은 메모를 하게 됐어요."

 
짧은 메모에서 확장돼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 <해방자들>(창비/ 2016년)은 청소년을 위한 SF 소설이다. 겉으로는 완벽한 국가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랑마저도 통제된 철저한 전체주의 국가에서 청소년들이 사랑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속도감 있게 그리고 있다.

 
사실 체제 유지를 위해 우월한 유전자만이 살아남도록 사랑을 통제하고 출산을 제한하는 가상 국가는 장르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딱히 SF 형식을 미리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에요. 현재 한국 사회를 생각하며 그 연장선에서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운 미래를 상정하게 된 거죠."




"청소년에게 사랑의 일부로서 성적 욕망은 커다란 에너지"


김남중 작가는 우리가 사회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고, 그 중 하나로 사랑할 권리가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닐까 우려했다. 그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이 소설을 쓰게 됐다.


사실 책을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삼포세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오늘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 세대를 가리키는 이 말은 2011년 처음 사용된 신조어다. 공교롭게도 작가는 이 소설을 2010년 구상해 2011년에 썼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삼포세대와 명확히 알레고리화해 이 작품을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때(창작 당시)도 '사회가 변화되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하지만 삼포세대 같은 말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을 때거든요. (지금)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화됐으니 안타깝죠."


김남중 작가는 <해방자들>을 통해 사회구조적인 요인과 더불어 성(性)의 정체성에 대한 개인의 문제까지 한 편의 소설에 녹여냈다. 주기적으로 성욕 억제 주사를 맞는 렌막 시민들과 달리 겁이 많은 남자 주인공 소우는 몇 년 동안 친구가 대신 주사를 맞아주었다. 그 결과 소우는 렌막 시민들에게는 사라진 이성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발각돼 요양소에 들어갈 위험에 처한다.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인 성적 욕망이 구체화되는 과정은 청소년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현대 사회 구조 속에서 청소년들의 성적 욕망은 건전하게 표출되지 못하고 억압되고 왜곡되기 쉽죠.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일부로서 성적인 욕망은 커다란 에너지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성취동기라는 것을 천천히, 자상하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해방자들>은 김남중의 두 번째 청소년 소설이다. 1998년 데뷔 후 40권 가까이 책을 낸 그는 주로 동화를 써왔다. 청소년 소설은 동화에 비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했다. <해방자들>을 쓰는 과정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지나간 시절 풋풋했던 설렘을 다시 느껴봤던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주인공인 지니와 소우가 별똥별을 보는 장면 등 첫사랑과 결혼한 그의 실제 이야기도 곳곳에 등장한다. 


"다만 쓰면서 내 욕망의 이야기는 아닐까 스스로 많이 물어보았어요. 이 소설의 독자층이라 할 수 있는 중학생 아들이 둘 있어요. 이 아이들한테 이 소설이 설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현재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썼습니다. 그런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모험의 세상이 펼쳐지면서도 한편에 현실이 단단히 뿌리내린 '김남중표 이야기'


김남중 작가는 1년에 3~4권씩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1년 중 5~6개월은 사람 없는 산속이나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작업을 한다. 어릴 적 꿈이 탐험가였을 정도로 활동적이기도 해 1년에 몇 번씩은 혼자 또는 여럿이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한다. 이러한 성향은 작품에도 투영된다. 


"저는 아이들에게 공간감을 넓혀주고 싶어요. 자전거도 그런 방법 중 하나예요. 차로 다닐 때보다 공간감이 열 배로 넓어져요. 우리나라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까 은연중 (바다를) 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다도 엄연히 영해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연결되는 공간이거든요. 바다를 길로 인식하면 세계가 확 넓어져요. 그런 공간 감각, 세계 인식 감각을 심어주기 위해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이에요."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는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비롯한 자전거 이야기, 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나는 바람이다> 시리즈 등을 통해 그는 아동문학의 무대를 넓혀왔다. 작년 여름에는 35일간 북극해를 탐험하는 쇄빙선에 동반 승선했고, 그 경험은 바다에 관한 또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오늘날 다른 사람이 가보지 않은 영역을 가보고 찾아내고 소개하는 작가야말로 탐험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그는 어릴 때의 꿈을 이룬 셈이다.


김남중 작가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발 만드는 회사를 다니며 동화작가 일을 병행해왔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명절이나 휴가 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고 한다. 먹을 것을 싸들고 골방을 빌려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하얗게 불태우며 작품을 써내는 걸 몇 년이나 계속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작가를 포기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둔 것은 오히려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였다.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잘 살 수 있을까 물었을 때 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인 불안을 없애기 위해 글을 쓰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세상,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세상에 대한 답을 찾아나갔다. 


모험으로 가득 찬 세상이 펼쳐지면서도 한편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단단히 뿌리내린 '김남중표 동화'는 바로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달콤하고 따뜻하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동화도 그 역할이 있지만, 그것 말고도 가감 없는 현실에 대해 문학으로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동화가 만들어놓은 틀을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아기 룸살롱'이란 메모 한 줄, 김남중표 청소년소설을 만들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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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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