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갑질의 전통,이런 나라에서 글쓴단 사실에 슬픔

[현장] 김훈

by 인터파크 북DB


2017020619244983.JPG


<남한산성>,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이 신작소설 <공터에서>를 발표했다. <흑산> 이후 6년만이다. 2월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소설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 시작 직전 마련한 사진 촬영 시간. 화려하게 터지는 플래시 앞에서 책을 든 칠순의 작가는 작아보였다. 역사와 시대의 폭력적인 흐름을 연약하게 버티면서 희미한 희망을 갈구하는 그의 작품 속 인물과 유사해보였다.


김훈 작가가 새로 발표한 소설은 마씨(馬氏) 집안의 아버지와 두 아들의 삶을 소재로 한다. 아버지인 마동수는 1910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젊은 시절을 만주에서 보낸 후 한국 전쟁과 이승만‧박정희 치하를 보낸 인물이다. 한편 그의 두 아들 마장세(1951년생), 마차세(1953년생)는 해방 후 출생한 작가 세대를 대변한다. 각기 1910년 생인 그의 아버지와 1948년생인 작가가 투영된 인물이다.


작가는 아버지를 한 마리 말 같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늙은 말 같았어요. 갈퀴가 눈앞을 덮고 광야를 헤매다가 터덜터덜 돌아오는 느낌의 아버지의 모습을 투사한 것이죠." 때문에 간간히 말을 타는 장면이 작품 속에 등장하기도 하고, 표지에도 말 그림이 실렸다.


이번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현대사이지만 역시 이념이나 정치적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는 생활 전선에 있는 개인을 다뤘다.


"제 소설엔 영웅이나 저항하는 인간은 나오지 않습니다. 시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역사적 하중을 견딜 수 없어서 도망가고 부인하고, 또는 너무 무서워서 미치광이가 되어 세계의 바깥을 떠도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렸죠."


20170206192519287.JPG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것을 겨우 조금씩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대한 전망, 전체적 구조, 통합적인 시야가 저에겐 없습니다." 김훈이 이번 소설을 쓰면서 선택한 방법은 '크로키' 기법을 글쓰기에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대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도입한 기법이 디테일에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컷 찍어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이었지요. 디테일을 통해 더 큰 것을 드러냄으로써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고자 했습니다. 펜을 빠르게 움직이는, 미술로 치면 크로키 기법과도 같은 전략을 택한 것입니다.”


작가는 현대사에 대한 소설을 쓰기 위해 지나간 시대의 신문 사회면을 참고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유구한 전통으로서의 갑질이었다.


"소설을 쓰려고 지나간 시대의 신문도 많이 봤습니다. 전쟁 때 추운 겨울날 피난민들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을 지어서 피난 가는데, 고관대작들은 군용차와 관용차를 징발해 응접세트, 피아노를 싣고 피난민 사이를 먼지 날리며 질주해 내려가는 거예요. 제발 이런 짓을 하지 말아달라는 성명이 탑 기사로 나온 걸 봤어요. 그 기사를 보고 내가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슬펐죠. 전쟁 때 신문에서 보여준 비리와 야만성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유구한 전통 때문에 광화문에서 분노의 함성이 일어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가족으로부터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함께 하자는 요청을, 친구들로부터는 태극기 집회에 함께 하자는 요청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했다. 후일 관찰자로서 그 집회 현장을 목격한 작가는 현장에서 흩날리는 성조기, 십자가, 태극기에서 여전한 '기아'와 '적화'의 정서를 발견한다. 그때 "70년 간 엔진이 공회전 하듯이 지나간 것은 아닌가 싶어서" 서글펐다고 했다. "광화문에 나갔다가 태극기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철거되는 가건물 안에서 살아왔구나', '또 헐리겠구나'하는 생각에 슬픔을 느꼈지요. '공터'라는 제목도 이런 비애감과 연결된 제목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현장] 김훈 "유구한 갑질의 전통…이런 나라에서 글쓴단 사실에 슬픔 느껴"]의 일부입니다.

전문보기



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사진 : 도서출판 해냄 제공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