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단순한 호러쇼가 아니다, 마지막 100페이지의 스펙터클

듀나의 장르소설읽는 밤

by 인터파크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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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리바이벌>을 다 읽고 그의 공식 페이지에 있는 메인 주 지도에 들어가 보았다. 물론 여기 나오는 메인 주는 실제의 메인 주가 아니라 킹의 소설 속에 존재하는 반 허구의 공간이다. 캐슬록, 데리, 예루살렘스 롯과 같은 곳들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한 번 보시라.(참고 링크 : http://stephenking.com/images/map_of_maine.jpg)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모두 하나의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 그의 소설들에서 위의 지명들은 꾸준히 등장하고, 한 소설에 나왔던 사람들이 다른 소설에 나오거나 언급되는 일은 흔하다. 얼마 전, 질리언 제임스라는 스티븐 킹의 팬이 이 모든 연관 관계를 차트로 정리해서 내놓았다. 역시 한 번 보시라. 경고하는데, 눈 아프고 머리 아프다(참고 링크 : http://laughingsquid.com/the-stephen-king-universe-a-very-detailed-flowchart-linking-his-books-and-characters/)

이런 꼼꼼한 연관 관계에도 불구하고 킹의 책들을 하나의 시간선으로 이어지는 우주의 일부로 보는 건 좀 그렇다. 일단 그런 식으로 모든 책들이 정리가 되지도 않고 된다고 해도 따지기 시작하면 코믹북 유니버스처럼 번잡하고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탠 바이 미>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같은 소설들이 <그것>이나 <세일럼즈 롯> 같은 소설들과 같은 우주를 공유한다면 미학적으로 좀 괴상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이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우주는 감추어진 초자연적인 진실에 의해 지배되는 러브크래프트의 우주보다는 포크너의 남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중요한 건 주인공들이 각각의 소설에서 겪는 초자연적이거나 괴상한 현상이 아니라 그 반쯤 가상이지만 극도로 현실적인 세계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과 그들이 이루는 세계이다. 방점은 괴물이나 뱀파이어나 외계인이나 귀신 들린 집이 아닌 그 사람들에게 찍혀야 한다.

이게 꽤 중요한 것이, 사실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설정이나 아이디어의 독창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킹의 소설은 설정만 요약하면 김이 빠진다. 그 중 몇몇은 대놓고 진부해서 놀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비슷한 이유로 킹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이렇게 긴 소설들을 쓸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도 든다. 물론 읽다보면 궁금증은 풀린다. 킹은 호러문학의 거장이지만 호러 효과나 아이디어를 위해 인간들을 희생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삶은 언제나 그의 소설의 중심이다. '장르의 탈을 쓴' 어쩌구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시작점이 다르다는 말이다.

<리바이벌>도 딱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소설이다. 스티븐 킹의 <프랑켄슈타인>. 한마디로 금지된 실험을 벌이는 미친 과학자를 다룬 19세기 풍의 이야기다. 혹시 우리가 눈치를 못 채기라도 할까봐, 킹은 소설 후반에 빅터라는 아들을 둔 메리라는 여자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래도 줄거리를 소개한다면, 소설은 제이미 모턴이라는 기타리스트와 찰스 제이컵스라는 목사의 이야기다. 배경은 물론 스티븐 킹 메인 주의 작은 마을인 할로. 1962년, 카리스마 넘치고 인기있는 목사 제이컵스는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자 신성모독적인 설교를 하고 교회를 떠난다. 목사를 따랐던 어린 소년인 제이미는 자라면서 기타와 마약에 빠지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거의 폐인이 된 그에게 서커스 마술사가 된 제이컵스가 나타난다.

1962년에 시작된 제이미 모턴의 이야기는 2013년에 끝이 난다. 그러니까 50년을 커버하는 대역사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매켄과 러브크래프트를 잇는 장르 호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100 페이지 정도밖에 안 된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장르 호러의 재료라는 것이 참 대놓고 전통적이라, 클라이맥스에 접어들면 거의 유니버설 영화사의 세트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앞의 400여 페이지가 잉여이냐. 그건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100페이지가 단순한 호러쇼로 끝나지 않는 건 스티븐 킹이 그 앞의 400페이지를 통해 공들여 제이미 모턴과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을 꼼꼼하게 구성해놨기 때문이다. 그들은 곧 시체가 되어 퇴장할 호러물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모두 각자의 삶과 추억을 가진 진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100 페이지의 스펙터클은 단순히 초자연적인 서커스가 아니라 이들의 공포와 열망이 압축되고 종합된 결과이다. 이 느긋한 압축의 과정이야말로 스티븐 킹과 러브크래프트를 갈라 놓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만드는 것이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단순한 호러쇼가 아니다... 마지막 100페이지의 스펙터클]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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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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