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파크 : 독립생활의 기록
빌라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며 처음엔 층간소음 걱정을 많이 했다. 아파트에 비해 소음에 취약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윗집 휴대폰 진동 소리, 옆집 재채기 소리까지 들린다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건물은 언제나 고요했다. 무심히 뒤꿈치를 찍듯이 걸으면 으레 들리는 발자국 소리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 건물이 비교적 견고하게 지어진 모양이지. 나는 안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새벽 무렵 어룽어룽 잠이 들었는데 고막을 울리는 큰 소리에 잠에서 깼다.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굉장한 소음이었다. 놀라 현관문 가까이로 가 문밖 사정에 귀를 기울이니 옆집 남자가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윗집의 현관문을 발로 걷어차며 조용히 좀 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한밤중의 소란에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나는 워낙 담이 작아 눈앞에서 남들이 싸우기만 해도 마음이 쪼그라들곤 했다. 그런데 내 삶의 터전에서, 내 이웃에서 이런 큰 분쟁이 일어나다니 누가 차가운 손으로 심장을 콱 움켜쥔 기분이었다.
불행하게도 갈등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달은 언제나 한밤중에 일어났다. 세상이 고요한데 옆집 문이 세차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가 달음질쳐 위층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날이었다. 역시나 한밤중 옆집 남자가 달음질쳐 올라가 윗집 문을 걷어찼고 나는 그 소리에 또 잠에서 깼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윗집 문이 열리고 거주민이 튀어나왔다. 언제나 내 옆집 아저씨가 문을 걷어차고 손쓸 새도 없이 재빠르게 사라지니 이번에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체 매번 왜 이러시는 거예요?"
"시끄러우니까 그렇지. 조용히 좀 살자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요? 저 지금 가만히 누워 있었어요."
"내가 아무 소리 안 나는데 이러겠어? 조용히 좀 살자고!"
"그러니까 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발소리인지, 악기 소리인지, 뭐가 울리는 소리인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보시라고요. 그래야 저도 조심이라도 하죠. 저도 억울해서 이럽니다."
"됐어, 됐다고! 양심껏 하라고!"
"아니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시라니까요. 문만 걷어차지 말고. 저도 아저씨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집에 잘 있지도 않고 들어와선 움직이지도 않아요. 대체 무슨 소리가 난다는 겁니까?"
"그럼 내가 없는 소릴 있다고 해? 양심껏 하라니까!"
기묘한 대화였다. 윗집 청년은 이성적으로 사태를 해결해나가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내 옆집 아저씨는 논리성을 상실하고 그저 '나는 분명 소리가 들린다. 양심껏 하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옆집에서 저토록 분노할 만큼의 큰 소음이라면 어쩌면 우리집에서도 들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 건물, 나는 늘 고요하기만 하던데? 그렇다면 옆집 아저씨가 밤마다 듣고 저토록 분노하는 그 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실존하는가? 결론은 둘 중 하나였다. 윗집 청년이 대단한 거짓말쟁이거나, 옆집 아저씨가 환청을 듣거나.
둘이 그렇게 이상한 언쟁을 벌인 후에도 옆집 사람은 수시로 위층으로 달음질쳐 올라갔고 천둥처럼 문을 걷어차고 번개같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윗집 청년이 쫓아 내려와 이미 굳게 닫힌 옆집 문을 두드리는 날도 있었다.
나의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렇게 시들시들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낮부터 바깥이 소란해 내다보니 이사 트럭이 와 있었다. 빠끔 문을 열고 살피니 맙소사, 감사하게도 문제의 옆집 아저씨가 이사를 나가고 있었다! 할렐루야! 그렇게 그는 이 건물에서 퇴거했고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사태의 진실을 결국 알지 못했다. 층간소음은 과연 실재했던 것인지, 환청이었던 것인지. 옆집 남자는 왜 갑자기 퇴거했는지, 집주인의 개입이 있었는지, 그저 제 발로 나간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알게 된 것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주거생활에 있어서 여러 난관에 봉착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문제는 ‘이상한 이웃’이었다. 이웃의 광기는 내가 예측할 수도, 컨트롤할 수도 없다.
감히 말하건대 지금 당신의 이웃이 점잖고 상식적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면, 이는 진실로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도 모두 어딘가에 '살고 있다'. 바로 누군가의 이웃으로.
* 본 칼럼은 책 <혼자일 것 행복할 것>의 본문 일부를 편집한 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이웃의 조건]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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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홍인혜(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