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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07. 2017

여성 소설가 추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여성 서사’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추천 소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이날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 1만 5천여 명은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UN은 1975년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매년 3월 8일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북DB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이야기’ 속 여성에 주목했다. 소설 속에서 지금껏 여성은 주로 대상화되거나 주변부에만 머무르는 경향이 강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소설가 9인에게 이런 틀을 깬 소설들을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17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여성 서사는 무엇일까? 여성 소설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작가명 가나다 순)



강화길 × <힐 하우스의 유령>

86년생 여성으로서 살아오며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재현한 ‘가상현실’로 소설 세계를 구축 중인 강화길 작가. 그녀는 지난해 소설집 <괜찮은 사람>에서 동시대 여성의 일상 경험과 맞닿은 여덟 편의 소설을 선보였다. 작가는 고딕 호러의 선구자로 불리는 셜리 잭슨의 작품 <힐 하우스의 유령>을 추천했다.


“힐 하우스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산다. 내 곁에는 그녀가 있고, 그가 있고, 우리는 손을 잡고 있다. 그런데 난 왜 무서운 걸까. 왜 자꾸 비명을 지를까. 이 소설은 당신에    게 기억을 선사할 것이다. 잊었다고 믿었지만 사실 내 마음을 흔들고 있었던, 바로 그 진실에 관한.”


김현진 × <벨벳 애무하기>


각종 매체에 글을 쓰며 여성으로서의 솔직담백한 시각을 선보이던 에세이스트 김현진. 지난 해엔 파격적인 카톡 소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로 소설가 데뷔를 마쳤다. 그녀는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세라 워터스의 소설 <벨벳 애무하기>를 추천했다.


“어느 작은 마을의 온 가족이 하는 굴식당에서 일하던 소녀 낸시가 남장 여자 키티에게 흠뻑 빠져 런던으로 떠나 겪는 온갖 인생 역정의 이야기. 가끔은 냉혹한 운명에 유린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끝내 한 사람의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고 평등한 사랑을 나누며 범상치 않은 시절을 겪으면서 소녀가 어른이 되도록 쉴 틈 없이 질주하는 이야기.”


박민정 × <빌러비드>


첫 번째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에서 현 청년 세대와 부모 세대가 겪는 갈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한 소설가 박민정. 그녀는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추천했다.


“식민자와 피식민자가 전쟁을 벌이고, 마침내 피식민자에게 해방의 세상이 찾아왔을 때에도 함께 해방될 수 없는 노예의 노예들은 무엇이 될까. 그러나 유령으로 존재할 것이다. 우린 지옥도 예쁜 곳일지 모른다고 상상하며 그자들의 언어로 내 사랑을 비석에 새겼다.”


윤이형 × <파과>


현실과 가상, 꿈과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는 특유의 문학세계로 한국 문단의 중심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소설가 윤이형. 그녀는 지난해 세 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를 발표했다. 윤이형 작가는 동갑내기 작가인 구병모의 소설 <파과>를 추천했다.


“60대 킬러 ‘조각’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그녀는 악인인가?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렇듯 황폐한 현실 뒤에 찾아온 ‘연민’의 당혹스러움이 그녀 한 사람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뿐이다.”


이수진 × <피아노 치는 여자>


스물 셋 이른 나이에 등단해 기대주로 주목받은 소설가 이수진. 등단 7년 만에 발표한 <머리 위를 조심해>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에선 속도감 있는 서사로 숨겨진 욕구를 파헤쳤다. 작가는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골랐다.


“더 이상 ‘그녀’이고 싶지 않은, 비로소 ‘온전한 나’이길 갈망하는 여성에게 추천. ‘페미니즘 리뉴얼’을 염두에 두었을 때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질문인 ‘나’의 구성, ‘무엇을 도려내고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원론을 ‘성적 대상화의 대상화’를 통해 무자비하게 꿰뚫는다.”


정세랑 × <예술과 중력가속도>


참신한 상상력과 따뜻한 이야기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소설가 정세랑. 그녀는 2016년 대학병원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50명의 인물을 각 장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 <피프티 피플>로 주목받았다. 정세랑 작가는 소설가 배명훈의 단편집 <예술과 중력가속도>를 추천했다. 작가는 이 중 ‘예비군 로봇’과 ‘초원의 시간’에 주목한다.


“먼저, ‘예비군 로봇’의 은경 씨는 여성 전쟁 영웅을 가장 자연스럽고 입체적이고 사랑스럽게 그려낸 캐릭터입니다. 무엇보다 완전무결한 대상이 아니라 실수하는 주체로 독자들을 똑바로 마주 보기에, 독자들은 속절없이 은경 씨에게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 시간여행에 대한 단편인 ‘초원의 시간’의 경우, 구출 대상인 천재 소녀가 처음 발표했을 때는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작가가 수정을 하며 "이 아이는 여자아이여야 한다"는 강렬한 자각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배명훈 작가는 문학 안팎의 젠더에 대해 가장 첨예하게 고민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이 놀라운 단편집에서 그 고민들을 만나보셔도 좋겠습니다.”


조해진 × <나쁜 피>


‘흔들리는 청춘의 삶’에서 빛과 온기를 찾아내는 작가 조해진. 지난 2월 말 발표한 그녀의 소설집 <빛의 호위>는 절망과 고독을 감싸주는 기억에 대한 아홉 편의 이야기다. 조해진 작가는 김이설 작가의 장편소설 <나쁜 피>를 추천했다.


“김이설의 첫 장편소설 <나쁜 피>는 극도의 황폐한 환경 속에 내던져진 화숙의 이야기이다. 정신지체를 갖고 태어난 어머니와 알코올 중독자인 할머니, 그리고 폭력 성향의 외삼촌 밑에서 자란 화숙에게는 기댈 곳이 없다. 화숙이 가끔씩 만나 체온을 나누는 나이 많은 버스기사도 화숙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한명일 뿐이다. 그러나 화숙은 이 거친 현실에 순응하고 절망하기    보다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생활력으로 오락실을 운영하며 생존을 이어간다. 


그 누구에게도 연민을 구하지 않는 데다 상처를 삭이기보다 되돌려주는 성향으로 때로는 비정해 보이는 화숙이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자살한 사촌의 딸 혜주와 혜주를 친딸로 삼으려는 친구 진순을 받아들여 하나의 가족을 이룬다. 죽은 외삼촌의 고물상이 그들의 새로운 안식처이다.


내가 읽은 한국소설의 여성인물 중 화숙은 가장 선인장 같았다. 가시가 빼곡히 돋아 있는, 그러나 손을 잡아주고 싶었던 인물. 세상은 화숙에게 독하다 말하겠지만, 화숙은 결국 모든 것을 포용한 강인한 인물이다.”


최은영 × <계속해보겠습니다>


소설가 최은영은 ‘핫한’ 작가다. 사뭇 ‘통속적인’ 찬사가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그녀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출간 이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은영 작가는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 보겠습니다>를 추천했다.


“요강에 변을 보는 사람 따로, 그 요강을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정상가족’의 평범한 일면이라면? 이 소설은 ‘가부장적 가족’이라는 ‘요강’을 발로 차버리고 스스로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여성 인물의 담담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편혜영 × <아웃>


<재와 빨강>이 폴란드 문학 전문 커뮤니티에서 뽑은 ‘2016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편혜영. 그녀는 일본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을 추천했다. 


“여성에게는 무엇이든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자유든 계급이든 사랑이든. 그러니 서사 속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투쟁할 수밖에 없다. 기리노 나쓰오 소설의 주인공도 대개 그렇다.  <아웃>의 여자 주인공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서, 계급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욕망을 충족하려고, 순간적인 충동이나 악의에 의해서 사건을 저지르지 않는다. 최소한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 연대하고 싸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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