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어語> 출간 기념 인터뷰
2016년 소설 ‘유럽식 독서법’으로 제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을 때, 김솔 작가는 수상작품집 ‘작가의 말’에 ‘맥주와 콜라의 대위법’이라는 글을 실었다. 작가들은 보통 이 지면에 수상 소감이나 작품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 하지만 ‘맥주와 콜라의 대위법’에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작가가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어찌 보면 뜬금없다고 해야 하나? 여기에 왜 이런 글을 실었을까? 다소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작가 김솔을 이해하는 하나의 힌트가 된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며 주목받고 있는 김솔 작가의 ‘독특한’ 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유의 몽환적인 문장으로 시간과 공간, 국적, 심지어는 성별까지 뒤섞어버린 독특한 이야기들을 즐겨 쓰는 김솔 작가는 기존의 어느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기회가 오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죠. ‘작가의 말’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제 이야기를 하는 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아까운 지면에 작품을 실어보자는 생각에 기존에 써놓았던 글 중에서 골라 보냈는데, 이게 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나 봐요.”
조금은 기발하고 엉뚱한 이런 발상은 결국 초단편 소설집 <망상, 어>(문학동네/ 2017년)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맥주와 콜라의 대위법’에서 작가의 독특한 개성을 엿본 문학동네에서 더 써놓은 짧은 글들이 있느냐는 문의가 왔다. 기회란 늘 준비하는 사람의 몫. 그동안 컴퓨터에 매일 일기를 쓰듯 수십 편의 글들을 모아놓았던 그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이렇게 김솔 작가는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두 달간 짧은 글을 연재하게 되었고, 그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망상, 어>는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초단편 소설집이다.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200자 원고지 20매 안팎의 소설 36편이 수록됐다. 장모의 애완견과 자신의 아이를 바꿔서 키우는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 맞벌이 부부의 양육과 반려동물 문제를 풍자한 ‘교환’처럼 단편소설로서 완결된 서사를 갖춘 작품부터, ‘콜라와 맥주의 대위법’ 같은 에세이 형식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글들이 실렸다. 수록 작품 중 상당수는 해외 토픽이나 사회면에 소개된 기발한 소재를 소설로 재구성해 읽는 재미까지 더했다.
“변화된 생활패턴에 맞는 소설 있다면 독자들이 충분히 수용할 것”
초단편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독자들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꼽힌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긴 글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만큼 초단편 소설이 갖는 매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듯하다.
“요즘 책을 읽지 않는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그 이유가 개인의 잘못이나 독자들이 나태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생활 패턴의 변화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듯해요. 변화된 생활 패턴에 맞는 형식과 내용이 있다면 독자들이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망상, 어>에 실린 글들은 출퇴근하는 짧은 시간에 한 편씩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짧다 보니 배경도 필요 없고, 에피소드 하나, 상황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분량이 채워지더라고요. 이것저것 다 걷어내니 오로지 이야기만 남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제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렇다고 짧다고 해서 대충 쓴 건 절대 아닙니다. 혹자는 단편소설이 되지 못한 자투리가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지만, 각 장르는 태생부터가 달라요. 형식과 내용은 별개일 수 있다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좀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요.”
김솔 작가가 초단편 소설이 늘고 있는 트렌드를 염두에 두고 짧은 글을 즐겨 쓴 것은 아니다. 그저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다. 김솔 작가의 ‘상상 아카이브’에 짧은 글이 많은 이유는 그의 독특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굴착기를 만드는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호흡이 긴 글보다는 출퇴근 시간에 생각난 아이디어나 에피소드를 그날 끝낸다는 생각으로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되다시피 했다.
하루 중 가장 글이 잘 써질 때는 출근 전 30분. 소설을 쓰는 데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 30분쯤 집을 나설 때까지 글 쓰는 생활을 일상화하고 있다.
김솔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 한 가지 바람을 가졌다. 등단작부터 기발한 소재와 이국적인 문체로 기존의 어느 작가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난해하고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말도 많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소설가 권여선 작가는 젊은작가상 심사평에서 “김솔의 소설을 즐기게 되기까지 제법 고생을 했다”며 그의 소설이 난해함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직장인과 소설가를 병행하는 특수한 상황도 짧은 소설을 많이 쓰게 된 이유가 됐지만, 제 글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독자들 평이 많아서 ‘어떻게 하면 읽히는 글을 쓸까’라는 고민 끝에 주석이나 궤변을 배제한 짧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번에도 실패한 것 같아요. 아직도 어렵다고들 하시네요.
이번 책에 실린 일러스트를 아내가 그렸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이건 무슨 뜻이냐며 자꾸 물어보는 바람에 절망에 빠지기도 했어요. 사실 가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도 제가 글을 쓴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 제 책을 주게 되는데, 대부분 조금 읽다가 어렵다고 덮어버리더라고요. 가족들한테서조차 외면받는 슬픈 현실이에요.(웃음)”
“소설 속에 독자들을 적극 개입시키며 단점 보완... 아직 갈 길 멀다”
동전의 양면처럼 ‘기발하고 독특하다’는 평과 ‘난해하다’는 반응을 동시에 얻고 있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김솔 작가는 “문학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이 아니라서 쉽게 쓰는 법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식 문학 교육’의 수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고유성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방법은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자체 분석했다. 등단 5년차가 된 그는 지금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김솔 작가는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광주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취직을 잘하기 위해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 시대 평범한 사람이었다. 대학에 와서 너무 많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재미있는 게 없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전공 책이 아닌 문학을 접하게 됐다. 하지만 그저 공대생들이 읽지 않는 책들을 읽는 ‘공돌이’에 불과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거창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책을 닥치는 대로 읽던 그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카프카, 보르헤스, 박상륭 등 기존의 소설 문법과 다른 소설들을 접하면서였다. 그리고 당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에 깊이 감정이입돼 습작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설가의 길은 쉽지 않았다. 취직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줄 수 없는 상황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투고를 했고, 그러다가 서른여섯에 결혼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현실적으로 소설을 쓰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린 결과 서른아홉에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가 됐다. 당선의 기쁨을 여러 사람과 나눌 사이도 없이 바로 벨기에 주재원 발령을 받은 그는 그곳에서 4년간 생활하면서 원 없이 글을 썼다.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유럽의 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유럽식 독서법’ 또한 그곳에서 쓰여졌고, 최근 발표하고 있는 유럽 연작들도 이때 부지런히 글을 쓴 결과물이다.
그는 2012년 신춘문예에 떨어졌더라도 계속 도전을 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회사 생활만 하기에는 너무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아직까지는 회사 생활을 그만둘 생각도 없다. 생계를 위협받지 않아야 오히려 쓰고 싶은 글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망상, 어>에서도 드러나듯, 김솔 작가는 작품 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버무려내는 남다른 솜씨를 지녔다. 보통 단편이든 장편이든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김솔 작가의 소설에서는 작가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글로벌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진지도 모르겠다.
“저는 솔직히 제 이야기를 할 게 없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 제 생각을 정리해 말할 만큼 성숙하지도 못했고요. 제 생활이 재미없어 소설을 쓰는데, 그 재미없는 이야기를 굳이 소설에서 또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감동이 약할 수 있는 단점도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소설 속에 독자들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방법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실제로 만나본 김솔 작가는 기이하고 몽환적인 작품 속 주인공들과는 달리 수줍음과 겸손함을 기본적으로 장착한 사람이었다. 생활의 균형을 꽉 붙잡고 있으면서도 지리한 일상을 당연시하는 대신 소설이라는 재미있는 꿈을 실현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 어쩌면 소설가는 ‘망상’에서 ‘언어’를 낚아올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 책에 수록된 ‘망상어’라는 작품에서 망상에서 언어를 건져올리는 작업을 “사막에서 낚시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김솔 작가는 오늘도 재미없는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하루 종일 망망대해 같은 망상 속에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말없이 히죽거리고 있다”. 그의 망상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많은 망상어들이 상상이라는 좁은 어항을 탈출해 세상을 떠돌 것이다. 그 망상어들이 독자들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있다.
취재 : 이미회(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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