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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24. 2016

시인을 꿈꾸던 국회의원, 김광진이 말하는 ‘인생의 책’


        

‘19대 국회 최연소 의원’, ‘헌정 사상 최연소 정당 최고위원’, ‘헌정 사상 최초의 청년 비례대표’. 김광진 국회의원(35,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수식어보다 ‘시를 사랑하는 정치인’으로 그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명사의 서가’ 인터뷰를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그의 의원실을 찾았다. 손님을 맞이하는 큰 소파 뒤로, 접이식 침대가 살짝 보였다. 그날 인터뷰 시간도 ‘15분’ 단위로 잡았을 만큼 바쁜 하루하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도 없겠다는 내 말에,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1년에 책 100권 읽기’가 그의 소신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연말에 가서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것 같으면 얇은 시집으로라도 권수를 채우면서, 그것을 스스로의 ‘프라이드’로 삼아왔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된 뒤로는 책을 사기는 많이 사지만 그만큼 다 읽지는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올해에도 한 달 책값만 100만 원이 넘게 쓴 달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산 책들은 전남 순천에 있는 지역 사무실을 오고 가면서 기차 안에서 주로 읽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오바마 주식회사>. 그 책을 읽기 시작한 지도 참 오래됐다고 멋쩍게 웃었다. 오바마가 말하는 ‘마이크로 타게팅’ 같은 전략들을 선거에서 사용해보려고 의원실 직원들과 같이 읽고 있단다. 그가 앉은 소파 뒤에 있는 큰 서가에 ‘빅데이터’ 관련 책들만 두 칸을 빼곡 채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때는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책들을 사 모았고,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라 통일, 무기, 인권 등으로 검색되는 책들도 사 모으기도 했다. 대학원 전공인 역사에 관한 책들은 눈에 띌 때마다 한 권씩 산다.

이렇게 책을 많이 사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사람인데, 옛날에는 어땠을까. 학창시절에는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는지 솔직하게 대답해달라고 물었다. “책을 정말 좋아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남중-남고를 나오고 대학 학부는 농대를 나와서 사실상 ‘남대’를 나왔지만, 군대 시절까지 포함해서도 운동장에서 축구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단다. 어려서부터 ‘까만 얼굴’이 콤플렉스여서 바깥 활동을 싫어한 까닭도 있고, 문예특기자로 대학 진학을 생각할 만큼 문학을 좋아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책을 고등학교 때 참 많이 읽었어요. 그 책을 70권쯤 산 것 같아요. 친구 생일이 되면 항상 그 책을 선물했어요. 그 책을 박노해 시인이 교도소에 갇힌 채로 썼잖아요. 그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 거죠. 학생들이 보통 학교에서 ‘새장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들을 가지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선물을 많이 했죠.”


“내 인생 담은 책 쓴다면 첫 장면은 ‘통일 선언’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동양화를 그렸다. 미대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한국에만 존재하는 이유, “그림을 그리기에는 공부를 너무 잘 한다는” 이유 때문에 학교는 미대 진학을 말렸다. 그는 그때를 인생의 변곡점으로 꼽았다. 지금 바쁜 시간을 쪼개서 문화예술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그때 포기한 꿈 때문이라고 했다.


미대 진학을 포기한 뒤로 문예특기자를 꿈꾸며 시를 썼다. 창비 등에서 나오는 웬만한 시집들은 모두 읽었다. 비록 문예특기자 입학의 꿈도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민족문학작가회의(지금의 한국작가회의) 순천지부 길문학회에서 활동하며 계속 시를 쓰고 읽었다. 국회의원이 된 지금도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내비치고 싶을 때 SNS에 시를 한 편 인용해 올리기도 한다. 최근에 올린 시는 “바람아 먼지야 이것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라는 구절로 끝나는,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였다. 가끔은 직접 시를 쓰기도 하는데, 지난해 말 나온 동인지에도 그의 시가 실렸다.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는 소망이기도 하고, 제가 가장 빛나는 시간으로 삼고 싶은 장면이 있어요. 대한민국이 통일이 되는 순간에, 그것을 선언하는 행사장에서 제가 사회를 보는 장면입니다. 제 인생의 책 가장 첫 장을 장식하는 사진이 그 장면이 되면 좋겠어요. 통일 선언문에 서명하는 위치에 있기보다, 제가 양쪽을 중재하는 위치에서 제 입을 통해서 통일이 선언되는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자신의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쓴다면 어떤 장면으로 시작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 책의 제목을 미리 한번 지어보라는 질문을 이어서 던졌더니, 지금 쓰고 있는 책의 가제로 대신했다. ‘정의력 있는 세상’. 국회의원 생활 4년을 정리하고, 국회에서 본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책이다. 금력(金力), 무력, 폭력 등 대한민국 사회에는 여러 가지 힘이 존재하는데, ‘정의력’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광진 의원은 그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직 정의는 힘이 없음을 나타내는 방증이라고 했다. 국어사전에 ‘정의력’이라는 단어가 등재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런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치 이야기를 물어봤다. 한국 현대정치사를 한 편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2015년 지금은 기-승-전-결 중 어디쯤에 해당할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는 “‘기-승-전’으로 가다가 다시 ‘기’ 후반으로 돌아간 수준”이라고 답했다. 한국 사회가 급변하던 시기를 겪고 이제 민주주의 국가의 안정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다시 1970년대 수준의 격변기로 다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기-승-전’에서 ‘결’로 나아가지 못한 한국 정치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현재 정치인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정치의 발견>을 꼽았다. 국민들이 정치를 많이 혐오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감성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라고 덧붙였다. 원혜영 국회의원의 선물로 처음 읽게 된 그 책을 의원실의 직원들과 대학생 인턴들, 그리고 의원실 손님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단다.


“한국정치 소설로 보자면, 기-승-전에서 다시 ‘기’로 돌아간 상태”


지난 7월 김광진 의원은 머니투데이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을 수상했다. 5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군인사법’ 개정안(군사망순직처리법) 덕분이다. 이 법에 따르면 앞으로는 군대 내 가혹행위로 자살한 경우도 순직으로 인정된다. 그는 군 의문사 유가족들을 대신해 군인권 문제 개선에 많은 노력을 해왔다. <불편해도 괜찮아>와 <다시, 사람이다>는 그에게 인권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 책이다.

“군인권 문제와 학생인권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인권문제는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를 당하지 않은 제3자가 관심을 가져줘야 해결되거든요. 그게 인권감수성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대를 전역하는 순간 ‘군대는 빡세져야 돼’라고 생각해요. ‘내가 군생활 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보이스카우트지’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도 ‘예전엔 선생들이 줄빠따로 때렸어’ 하는 인식에서 안 바뀌거든요. 인권의 척도를 자기가 군생활 하던 20~30년 전이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 사회로 잡아야 돼요. ‘예전에 비하면 좋아졌다’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에 맞는 수준이냐’로 인권의 척도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책 추천을 부탁했다. 단,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 방 안에서 지금 직접 한 권의 책을 골라서 보여달라는 거였다.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제 인생의 책 중 하나”라면서 <친일인명사전> 세트를 뽑아왔다.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사무국장으로 4년 동안 일한 사람으로서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하던 시절, 책의 발간을 위한 모금과 발간 이후 보급에 힘쓴 바 있다. 30만 원이나 되는 비싼 책이기 때문에 굳이 직접 사려고 하지 말고,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의 공공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마지막, 그가 서가에서 찾은 책 한 권을 보여줬다. 순천만에 대한 시와 사진을 모은 책이었다. 10년쯤 전에 나온 그 책의 발간사는 지금 국회의원인 이학영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 순천지부장이 썼고, 책장을 넘겨보니 안도현 시인의 시 앞에 김광진 의원의 시가 있었다. 나중에라도 혹시 시집을 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사실 시는 쓰려고 한다”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했다. “팍팍한” 정치인의 삶 속에서도 그가 부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공부”를 놓치지 않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어느 후배가 인생상담을 한다고 술 한잔 하자고 찾아왔어요. 그 친구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고 헤어졌는데, 집에 들어오면서 생각해보니 제가 7, 8년 전에 다른 후배들한테 해준 얘기를 그대로 했더라고요. 제 자신이 하나도 발전이 안 된 거예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공부는 못 하고 있는 거죠. 국회의원이 되고 수많은 책과 자료를 읽고 있지만, 결국 ‘진짜 책’을 안 읽고 있는 거거든요. 대학교 때 읽은 책을 가지고 인생이 어쩌고저쩌고 얘기하는 걸 제 스스로 보면서, ‘내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김광진  ㅣ  순천대학교에서 조경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학을 수료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사무국장, 순천 청소년축제위원회 총무국장, 순천 YMCA 재정이사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 공개경선에서 1위를 차지해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 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 육군발전 동원분과 자문위원이다.


글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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