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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31. 2016

소설가 이명행 "노무현을 통해 노무현을 넘어서길..."

* 소설가 이명행 작가가 신작 <대통령의 골방>을 펴냈습니다. 새움 출판사 편집부가 이명행 작가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이명행 작가가 10년의 공백을 깨고 <대통령의 골방>이라는 선 굵은 소설로 독자를 찾았다. <대통령의 골방>은 작가가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나누었던 사담(私談)을 모티프로 삼는다. 작가는 2008년 7월의 어느 여름날 오후, 점퍼와 밀짚모자 차림의 대통령을 만났다. 그가 세상을 뜨기 10개월 전이었다. 

대통령은 그날 작가에게 자신이 겪었던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터놓았다. 대통령은 "보고라고 들고 오는 '정적(政敵)의 가십'을 듣고 싶지 않아 정보기관의 주례보고 자체를 없앴다"고 작가에게 말했다.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와 명예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얘기도 했다. 길지 않은, 그러나 진지했던 대통령의 몇 마디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이 작가는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다"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지난 시절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래의 대통령이다. 작가는 "대통령은 일종의 '균형자'라 생각한다"며 "어느 편도 소외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은 게 대통령의 일"이라고 했다. 작가는 "다음 대선까지 우리들은 새 대통령에 대해 꿈꿀 권리가 있다"며 "소설 <대통령의 골방>이 그 꿈의 개연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Q "대통령의 골방"이라는 작품 제목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존재는, 소설 속에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만,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위에 관련된 담당자가 있고, 그것들이 가감 없이 그 관계자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공적인 삶을 삽니다. 그것은 당연한 거죠. 몇 시간씩 사라졌다가 나타나서는 '내게도 사적인 삶이 있다'라고 항변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아닌 겁니다. 물론 사적인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공적인 어떤 문제에 맞서 항변할 이유가 될 수는 없는 삶이라는 것이죠.

조금 극적인 설명을 위해, 이를테면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도 하기 전에, 임기가 시작하는 날 0시에 핵무기를 통제할 수 있는 가방을 받아 'on' 하는 순간의 의미를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그 순간부터 그는 막중한 공적 삶 속으로 빠져드는 겁니다. 사적인 어떤 것들이 무한히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각오가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 공적인 삶 반대편에다가 그에게 골방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어쩌면 그는 그런 골방을 갖고 싶었겠죠. 골방은 이미 상상하시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자기만의 작은 세계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감시당하지 않으며, 오직 혼자만이 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곳이죠.

소설 속에서 골방은 그의 그런 사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적으로는 일종의 벙커입니다. 대통령의 벙커죠. 그가 대리인으로서 힘을 가진 자들, 이를테면 재벌이나 열강의 세력들과의 힘겨루기에서 이겨내기 위한 구상이 바로 그곳에서 이루지는 것이죠. 대통령의 대리인으로서의 삶의 고뇌, 그의 진정성을 담아내는 데, '골방'이 유효할 것이라고 봤고, 그래서 제목을 '대통령의 골방'이라고 지었습니다.

Q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나눈 한 시간가량의 대화가 소설의 모티프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을 만난 게 언제쯤이었는지요?

그동안은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날 대통령과 찍었던 사진을 확인해보니, 2008년 7월 12일이더군요. 이야기를 끝내고 나온 시각이 오후 5시가 넘었습니다. 매우 화창한 날이었고, 직접 농부들과 함께 농사를 짓던 그 너른 들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점퍼 차림에 밀짚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정말 홀가분한 모습이었습니다.

Q 이야기를 나눌 때 대통령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그분의 평소 표정대로 매우 밝아 보였습니다. 말씀하시는 것도 신중하시면서도 매우 논리적이어서 쉽게 각인되었어요. 어딘가의 표현에 보니까 우유부단했다고 되어 있던데, 그건 잘못된 인상이죠. 하지만 전임 대통령으로서의 소회에 이르자, 표정이 많이 굳었습니다. 저와 함께 가셨던 분은 대통령 자문기구의 위원장이셨는데, 그 팀에서 마련한 혁신안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것을 추억하면서는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것에 반대했던 기득권의 완강함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결국 관료 얘기였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노무현 대통령 아냐... 말씀들에서 모티프 얻은 것뿐"

Q 그날 오간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첫째는 매주 '정적(政敵)의 가십'을 가져오는 정보기관의 주례보고 얘기였습니다. 국익을 위한 정보보다 보스의 정치적 안위에 도움이 될 정보를 가져오는 충성이 대통령으로서는 좀 불편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었던 것들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의 기업과 부동산 거래를 하여 터무니없는 이문을 남긴 언론사의 사주 이야기나, 그들이 드나드는 술집에서 벌어진 퇴폐적인 광경, 재벌기업 회장의 소유로 되어 있는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찾아낸 그의 내연녀 얘기였을 것입니다.

적절한 시점에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데 효용성이 뛰어날 정보들이겠죠.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적절한 시점에 이르기 전에 판단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임기 초 그 주례보고를 없앴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대통령으로서 누렸던 지위와 명예가 자연인으로서의 그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에 대고 허리 굽히는 것을, 권력의 껍데기 안에 잠시 들어앉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가 즐겼을 리 없습니다. 그는 그것들이 불편하기만 했었다고 술회했습니다.

셋째는 '대통령으로서의 일'에 관한 것이었어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국민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위에서 말한 힘 있는 세력들로부터 오는 저항과 저항을 넘어서는 압력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죠. 전혀 짐작하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전혀 생소한 언어가 되어 제 이마를 쳤습니다. 굴욕의 부호들이 갑각의 균열의 틈을 비집고 나와서 몸서리를 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경찰에 지시해 종로 거리에서 힘없는 시민들의 가방을 뒤지는 것, 불의에 맞선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게 하는 일에서는 거칠 것이 없는 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생각했던 '대통령의 일'이 아니었죠.

그때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에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었죠. 큰 권력이 시장에 있으므로 명목상의 행정부 수반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횡행하던 시절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투표로 뽑힌 국민의 대리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을 대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었고, 그 자신에게는 시리도록 분명한 존재 이유였을 것입니다.

Q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습니까?

함께 가셨던 분이 혁신을 위한 자문기구의 위원장이셨던 분이어서, 자연스럽게 대통령으로서 바꿨어야 했던 것, 그런데 바꾸지 못했던 것들에 관한 소회가 자연스럽게 나왔던 거죠. 또 저는 작가로서 그런 것들이 가지고 있는 이면의 이야기들이 궁금했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대통령께 묻고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노무현 대통령이 주인공은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 말씀들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려고 노력했던 대통령이었고, 그것에 깊은 고뇌를 했던 분이었죠. 저는 그분을 통해, 그분을 넘어서는 '꿈의 대통령'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다음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 싶어요.

Q 이명행 작가님이 생각하는 대통령이란 어떤 존재이며,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일종의 '균형자'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편을 들어라'가 아니라 어느 편도 소외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일이 대통령이 할 일인 거죠. 하지만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이 정글에서는 약자 편에 서는 것이 그 균형자의 역할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가수반으로서 국민의 맨 앞에 서서, 저 자본의 정글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재벌이며, 오직 자국의 이익을 우선에 두고 판단하는 저 열강을 상대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들과 싸우자는 것은 아니죠. 그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국민의 편익을 위해 그 힘 있는 상대들과 타협하고, 또한 이익을 얻어올 일에서 단호히 국민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대선이 머지않았죠. 앞으로 대선까지 이 기간은 우리가 새 대통령에 관해 꿈꿀 권리가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대리인으로서의 새 대통령에 대한 꿈을 마음껏 꾸어도 좋을 시간인 거죠. 그런 꿈들 틈에서 이 소설 <대통령의 골방>이 그 꿈의 개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꿈들이 좀 더 실감 나지 않겠습니까?

Q 작품 속에서 대통령이 느끼는 '굴욕'의 원인을 간략히 되짚어주신다면?

대통령이 굴욕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업무에서 존재감을 잃었을 때입니다. 어떤 조건이나 압력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그 본연의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굴욕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대통령에 당선이 된 후,  그가 그 당연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플랫폼에 섰을 때, 정말 어이없게도 절망을 가득 실은 열차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관료조직은 그 일을 위해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부대입니다. 그러나 관료조직 깊숙이 이미 재벌과 열강의 힘이 그보다 먼저 들어가 있었습니다. 명목상 그의 부하였지만, 그들은 그 영역 밖에서 자신들의 주군을 따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관습이었습니다. 자신의 부하인 관료들과 줄다리기를 해야 하고, 그 힘겨루기 속에서 관료들의 등 뒤에 선 힘센 장수를 본다면 그것은 매우 절망스러울 것입니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 새 대통령에 관해 꿈꿀 권리가 있는 시간"

Q 권력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엔텔레키'라는 개념이 인상적입니다. 간단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사물이 이치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 편입니다. 인간의 욕망에 따라 부려지는 권력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이 가진 고유의 경로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것이죠. 엔텔레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인데, '질료가 형상을 얻어 완성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물 안에 내재되어 그 목표를 이루는 힘이죠.

이를테면 콩 안에 내재되어 콩이 되게 하는 생명력, 팥 안에 내재되어 팥이 되게 하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태고에 그 본연을 이루도록 부여된 운명적 힘을 말하는 것이죠. 저는 권력을 부리는 권력자의 의지와는 다르게 권력 그 자체에도 엔텔레키와 같은 속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프로그램된 것이죠. 그래서 권력자가 그것과 싸우려 할 때 그 속성을 거스른다면 오히려 그 힘에 희생될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매우 냉혹한 힘의 이기적 유전자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Q 정명회, 자연가, 회맹구 등 작품 속에서는 국가를 뒤에서 움직이는 막후세력들이 등장합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이 만든 하나회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작품 속 막후세력들이 어느 정도의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리 시대에 실제로 상당한 개연성을 가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예견한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이미 부분적으로는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재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의 도구가 될 수 있는 총리나 장관을 세우는 일들은 지금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통령을 앉힐 수도 있겠죠.

저는 그것을 <대통령의 골방>에서 '회맹구'로 구체화했습니다. 어린 인재를 뽑아 양성하고, 그 양성된 인재들 중에서 다시 '디아도코이(후계자)들'을 키우는 거죠. 그 수많은 인재들은 일정한 목표 속에 성장할 것이고, 후계자가 최고 권력자로 성장하는 일에 도구처럼 쓰일 것입니다. 소설 속 회맹구는 바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인 것이죠. 저는 이미 진행 중에 있다고 봅니다.

Q 권투선수 '마빈 헤글러'의 일화가 작품 속 대통령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소재로 쓰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소재를 채택한 이유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주신다면?

인간적인 대통령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삶이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때 그가 대리인으로서 희생하는 공적 삶도 돋보일 것입니다. '마빈 헤글러 일화'는 시인 최승호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그 에피소드를 소화하기 위해 자료를 더 찾았죠. 강자에게는 강하지만, 약자에게는 약한 인간적인 모습이 그 일화를 통해 드러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소설 <대통령의 골방>은 두 가지 점에서 제게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첫 번째는, 2013년에 <마치 계시처럼>이라는 중단편을 묶은 작품집을 냈습니다만, 2004년에 출간한 <사이보그 나이트클럽> 이후 10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쨌든 그 10년 동안 간간이 쓴 짧은 소설들을 묶은 것이 <마치 계시처럼>이라는 작품집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본격적인 집필은 아니었죠. 이번 소설 <대통령의 골방>이 제가 가졌던 10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그 시작을 알린 소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1993년 문학과지성사 창작선에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는데, 그 소설도 국제정치를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 분야로 다시 돌아온 거죠. 앞으로 이번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권력의 흐름과 그것이 하는 일에 주목할 것입니다. 우선 다음 대통령 선거부터 관심 있게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것이 곧 또 소설이 되겠죠.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로맨스소설도 써보고 싶습니다. 로맨스에도 관심이 깊거든요.

사진 : 새움 출판사 제공


취재 : 인터파크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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