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Jun 02. 2016

스크린도어에 붙은 메모... "너의 잘못이 아니야"

구의역 사고와 추모물결...청년노동의 현실을 짚은 책

                 



"추모가 일상이 되어버린 나라의 어른으로 미안합니다."



6월 1일 저녁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앞, 한 시민이 이런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5월 28일 '구의역 승강장 9-4 스크린도어'에서 숨진 한 청년을 추모하기 위해 나온 시민이었다.



스크린도어 시설관리 하청업체 직원인 만 열아홉 살 김아무개씨는 스크린도어 오작동 수리 도중 열차 사고로 숨졌다. 2015년 11월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이후 '2인 1조' 작업규정을 마련했지만, '인력 부족'을 이유로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사람이 죽었다.



시민들은 사고현장인 '구의역 승강장 9-4 스크린도어'에 추모 메시지를 쓴 메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숨진 김씨의 가방에서 컵라면과 숟가락이 발견됐기 때문일까. 사고현장에 컵라면과 즉석밥, 봉지김치와 생수를 갖다놓은 사람들도 있다. 청년에 대한 애도의 마음은 청년의 노동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는 상황. '일상이 되어버린 추모'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 현실을 똑바로 들여다봐야 한다. 하청으로 대표되는 비정규노동과 청년노동의 현실을 담은 책들. 더 이상 죽어가기 전에, 책 속의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할 때다.



부려 먹기 쉬운 존재들 <십 대 밑바닥 노동>



우리 속담 중에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싶은 것이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사서도 하는 고생'이기 때문에 온갖 위험과 불법, 인격적 모멸과 과도한 노동강도 등은 합리화된다. 구의역 사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십 대 밑바닥 노동>이다. 세상의 위험은, 비정하게도 지금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먼저 찾아온다. 전 사회적으로 불어닥친 불안정 노동의 바람이 가장 먼저, 가장 위험하게 찾아온 곳이 바로 청소년 노동. <십 대 밑바닥 노동>은 그 현실을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1부에서는 호텔 서빙, 택배 상하차, 이벤트 피에로, 배달 대행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을 통해, 더 불안정하고 위험해진 청소년들의 노동 현실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탈가정 여성 청소년, 기초생활수급가정 청소년, 탈학교 청소년 등 성별이나 가족 형태 등에 초점을 맞춰 청소년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봤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현실이 이렇게 참담해진 이유를 다시 묻고 변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점검했다. 저자들은 '예비 노동', '용돈 벌이', '일탈' 같은, 청소년 노동에 대한 편견과 오해부터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때 청소년 노동의 대표 얼굴이었던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음식점, 주유소 등지를 둘러봐도 더 이상 청소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그     곳들은 생활고에 내몰린 이십 대 청년들이나 장년들로 채워지고 있다. (줄임) 남은 일자리들은 이제 책임을 물을 고용주가 누구인지도 알기 힘든 간접 고용, 내일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일 고용, '사업자'가 되었으나 노동법의 적용조차 기대할 수 없는 특수 고용 등 불안정한 일자리들로 대체되고 있다. 더 적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일해야 하는 노동의 시대, 그야말로 '근로 빈곤'의 시대가 청소년 노동도 덮치고 있는 셈이다. - <십 대 밑바닥 노동> 중에서



청년을 괴롭히는 나쁜 기업들 <블랙기업을 쏴라!>



'블랙기업'이라는 말을 아시는지. 블랙기업은 주로 젊은 노동자에게 불법·편법적으로 비상식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악덕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시행하는 유행어 대상 순위에 오를 만큼 파급력이 크고, 국내에서도 청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블랙기업 퇴출운동'을 벌이는 등 점차 알려지고 있는 용어다. 사실 블랙기업이라는 용어는 낯설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도 손쉽게 블랙기업들을 발견할 수 있다. <블랙기업을 쏴라>는 일본 블랙기업의 실태와 함께 블랙기업 규제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투쟁을 다룬 책이다.



2014년 일본저널리스트회의(JCJ)상을 수상한 취재 보도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금기 없는 보도로 잘 알려진 '신문 아카하타'가 유니클로, 롯데리아, 와타미 등 일본 유명 기업의 불합리한 행태를 실명으로 고발했다. 일하다 '버려진' 청년, 자녀를 '과로사'로 잃은 유족, 우울증을 얻은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직접 나서서 블랙기업에서 일어난 일들을 증언했고, 이와 더불어 블랙기업에 대항하는 일본 사회의 움직임을 소개했다. 아울러 블랙기업 근절의 구체적인 방안 및 규제 법안과 이를 제출한 의원단의 좌담 내용도 함께 담았다.



8090세대 세대성의 기록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텔레비전 심층보도 프로그램에서 가끔 본 적이 있다. 대학 안의 '보따리 장사'인 시간강사들의 팍팍한 삶 이야기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청년 시간강사인 저자가 직접 자신의 삶과 노동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지방대'와 '시간강사'라는 두 단어가 더해져,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제목. "나는 서울대 정교수다"라는 문장과 비교해보면 더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직면하고 있는 차별의 두 가지 '결'을 이 열 글자의 책 제목이 모두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것을.



1983년생 저자 김민섭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동안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겪은 실제 이야기들을 담담한 어조로 펼쳐냈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시대. 이 청년의 이야기는 8090세대 청년들에 대한 세대성의 기록으로 값어치가 있다. 저자 김민섭은 '309동1201호'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냈다. 그것은 저자가 살았던 집의 주소로, 그 공간은 '저자의 젊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자 '이 책의 시간을 묵묵히 감내하며 지친 저자를 언제나 위로해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강의하는 학교의 강사료는 시간당 5만 원이다. 그러면 일주일에 20만 원, 한 달에 80만 원을 번다. 세금을 떼면 한 달에 70만 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오는데, 그나마도 방학엔 강의가 없다. 그러면 70만 원 곱하기 여덟 달, 560만 원이 내 연봉이다. (줄임) 전화가 오면 앞자리가 '02-1588'로 시작하는지 확인한 후 전화기를 돌려놓는다. 밀린 카드 대금을 독촉하는 전화일 것이다. 이런 생활이, 몇 년째고,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학생들에겐 허울 좋은 젊은 교수님이다. 그들은 내가 88만 원 세대보다 더 힘들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까.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중에서



비정규 체제를 넘어서 <비정규 사회>



구의역 사고로 숨진 청년 노동자 김씨는 서울메트로 소속 노동자가 아니었다. 스크린도어 시설관리를 맡은 하청업체 소속. 조선소에서, 제철소에서, 화학공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산업재해 사망사고 소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김씨와 같이 하청업체나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 더럽거나, 힘들거나, 위험한 일들부터 비정규직의 일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정한 노동으로 지탱되는 이 사회는 불안정 사회, '비정규 사회'가 된 지 오래다.



<비정규 사회>를 쓴 저자 김혜진은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등장한 초창기부터 비정규직 운동을 해온 1세대 비정규직 운동가다. 2000년 '파견철폐공동대책위원회'에서 비정규직 운동을 시작해 지금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비정규직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으로 시작해, 비정규직에게 필요한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정규 체제'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제안하는 것으로 끝난다. 현장성과 전문성을 함께 갖춘 운동가만이 쓸 수 있는 이 시대의 '비정규직 교과서'다.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기사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며느리는 모르는 '고수'의 영업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