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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22. 2016

여름과 청춘 사이, 소설가 박솔뫼의 뜨거운 질문

                                       


'청춘'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여름이 떠오른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검붉게 익어가는 포도송이나 초록빛의 매끈한 올리브 열매가 생각나기도 하고, 살갗에 닿는 뜨거운 볕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이름에는 엄연히 봄이라는 계절이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소설가 박솔뫼의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가 주는 느낌도 비슷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말간 하늘에 시원하게 펼쳐진 수영장, 스프링 보드에서 푸른빛 수면 아래로 도약하는 청년의 옆모습이 그려진 표지가 그랬다. 박솔뫼 작가가 꺼내놓은 오늘날의 청춘은 과연 어떤 여름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소설가 박솔뫼는 최근 한국문단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 중 하나다. 1985년생인 그녀는 지난 2009년 경장편소설 <을>로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지금까지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이는 모두 등단 이후 5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신인작가로서는 굵직한 행보를 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증명해온 셈이다.



책에 실려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꾸밈없는 천진함이 엿보였다.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때묻지 않은 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그녀는 성숙하고 차분한 여인에 더 가까웠다.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 답이 돌아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우리 사이엔 여러 가지 얼굴의 침묵이 놓였다. 호기로운 자세로 조약돌을 던지면 물수제비가 되어 수면 위를 통통 튀다가 이내 건너편 수면 아래로 푹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그녀의 머리칼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바람결에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박솔뫼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는 청춘의 단면을 날것으로 드러낸 소설이다.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수면 위에서 조금씩 떠밀려 가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혼수상태에 빠져 속리산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아버지를 둔 나, 불의의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병준, 병준을 돌보는 그의 옛 연인 우경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여름이라는 계절 아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마치 꿈처럼 자유자재로 흘러간다.


젋은 작가 박솔뫼의 네 번째 장편… '특유의 실험성'이 미덕


이 소설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는 독특한 서술에 있다. 과거와 현재가 함부로 뒤섞인 것처럼 시제가 엉켜 있고, 문어체와 구어체 역시 일정한 규칙 없이 섞여 있다. 평이하게 서술되다가도 급작스레 인물들의 생각이나 대화가 끼어들기도 한다. 인물들의 무의식과 의식을 덩어리째 옮겨놓은 것 같다. 시가 삽입되기도 하고 주술관계가 완전하지 않은 비문도 등장한다.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적어내려 간 듯한 느낌이다. 매끄럽고 단정한 문장을 기대했거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원했다면 자못 실망할 수도 있겠다.



"소설의 범위라는 게 굉장히 넓잖아요. 그런데 소설의 영역 자체를 굉장히 한정 지어놓고 '너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쓰냐'고 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안 쓸 이유가 없다'고 말하죠. 끊임없이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선택이기도 했고요. 어떤 작가를 구분 짓는 특성이 있다고 했을 때, 그 특성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제가 유려하게 쓰는 걸 못해서 이렇게 쓰는 것일 수도 있고요.(웃음) 그래서 저의 이러한 특성은 어느 정도는 의도됐고, 어느 정도는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무의식으로 되는 것 같아요."
 


처음 이 소설을 썼을 때가 2010년이라고 했다. 박솔뫼 작가는 몇 년간 생각이 날 때마다 고쳐 쓰기를 반복했다. 퇴고를 여러 번 한 탓에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 초고와는 인물도 달라졌고, 내용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녀는 소설을 하나의 형태로 생각했다. 소설을 쓰면서 어떤 것이 특별히 더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어떤 식으로 드러낼지에 대한 관심은 늘 갖고 있다. 그래서 장편을 쓰고 나면 내면 깊숙이 특별한 장소가 하나씩 더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부산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번 소설 역시 그랬다.   



"부산은 재미있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대도시인데 바다가 있는 것도 좋고요. 어떤 길을 가보면 일본 같기도 하죠. 살아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보면 그냥 좋더라고요. 지금까지 제 소설 속에 부산을 너무 많이 써서 이제는 그만 써야 하나 고민할 정도예요.(웃음) 1년에 한두 번은 꼭 가보는데 얼마 전에도 다녀왔어요."
 

그녀가 이번 소설 속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인물은 '도미'다. 물고기에서 빌려온 이름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입에서 발화되는 소리가 좋게 느껴져 붙인 이름이라고. 미발표 소설 중에도 도미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있다는 사실도 살짝 귀띔해주었다.



소설 속에는 인물 이외에도 전구나 침대, 의자가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직접 말을 하는 장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에 박솔뫼 작가는 "어떤 장소를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하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너무 강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물체들이 자기 얘기를 하나쯤은 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라고 전했다. 



박솔뫼 작가의 <머리부터 천천히>는 독자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는 힘을 가진 소설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향해 가는지 되묻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현재 삶을 반추해보게 한다. 사실 바쁜 일상에 이러한 고민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그래서 이 소설은 나무 하나하나의 생김새를 들여다보듯 읽기보다는 그저 숲을 관망하듯이, 혹은 강물에 떠내려가는 종이배를 쳐다보듯 읽어 내려가면 좋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특유의 실험성에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추구하며 독창적인 개성을 구축한 점이 그렇다.

"<머리부터 천천히>를 계기로 어떤 문을 연 것 같은 느낌"

"최근에 쓴 소설들이 쌓여서 이번 장편을 계기로 어떤 문을 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어떤 어려움은 해결이 되고, 또 어떤 어려움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로 책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쓰면서 재미있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껏 소설을 쓸 때 습작이라 생각하고 쓴 적은 없어요. 습작이라는 말 자체도 싫어하고요. 등단하기 전에 쓰면 다 습작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자신의 위치를 지망생이라고 생각하는 식의 태도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주변에서 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굉장히 잘 들어요. 납득할 만한 이유라고 생각할 때에는 잘 고치기도 하죠. 장편소설을 읽어주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잖아요. 특히 나은 방향으로 수정사항을 얘기해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요. 그런 걸 잘 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갖기 어려운 능력이죠. 성실해야 하고."

 

<머리부터 천천히>는 인물과 사건을 엮어 인상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통념을 배신하고 낯섦을 주었다는 점에서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은 분명하지만 독자와의 소통까지 거머쥐었냐는 점에서는 의문이 들었다. 독자의 이해가능성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이야기의 모든 것을 명명백백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서사의 조밀함을 희생시키는 듯한 태도를 불편하게 여길 독자가 많을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사건의 나열을 난해하게 여길 가능성 역시 농후했다. 문학적 성취가 뚜렷한 가운데에서도 이 소설이 자신의 논리를 독자에게 얼마나 잘 설득시켰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문학의 미덕 중 하나가 허(虛)와 실(實)이 공존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실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둔 것이 아니었을까. 박솔뫼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문단의 테두리 안에서만 소비되고 있는 듯한 아쉬움도 들었다. 



박솔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그림이 있다. 미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추상주의 화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그림이었다. 그는 그림과 낙서 등을 장난스럽게 결합하는 독창적인 양식을 선보여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가다. 서투른 글자체와 상징적인 숫자들을 조합시켜 독특한 예술세계를 내세운 바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로부터 멀리 비켜나 있다는 점에서 박솔뫼 작가의 소설과는 꽤 닮아 있다.



오늘날에는 추상표현주의라는 예술의 큰 흐름을 만든 주역으로 꼽히지만 그 역시 이전에는 비평가나 대중들로부터 혹평을 받거나 외면을 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 박솔뫼 작가의 소설 역시 아직까지 일반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기에는 쉽지 않은 지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한 곳에 고여 있지 않고 자신의 세계관을 더욱 견고히 만들 수 있기를, 치열한 고민을 통해 독자들과의 소통에도 능숙한 명민한 작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취재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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