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독서가의 세상읽기
지붕을 때리고 마당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또렷하다. 창밖을 보니 지리산은 푸르고, 산에 걸린 운무는 하얗다. 비릿하면서도 상큼한 숲의 냄새가 방으로 밀려온다. 장마철, 지리산 피아골에는 선명한 것들 투성이다.
빗소리, 산빛, 풀내음이 그렇고, 아랫집 엄니가 맛보라며 들고 온 삶은 햇감자의 냄새가 그러하며, 엄니의 몸에서 풍기는 시큼한 땀냄새도 그러하다. 난방 보일러를 작게 틀었는데, 방바닥의 온기마저 비 오는 날엔 더 따숩게 느껴진다.
방바닥에 등과 엉덩이를 붙이고 누워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쓴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를 펼쳤다. 젊은 기자 조갑제가 발로 뛰어 찾아낸 사실로 엮은 이 책(1986년 최초 발간)은 탐사보도의 좋은 예로 평가받으며 약 30년 동안 판사, 검사, 변호사, 기자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사랑받았다. 책 초판 머리글은 이 문장으로 출발한다.
어느 사회의 양식을 가늠해보는 한 기준은, '그 사회의 소수파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라고 한다.
중학교 중퇴 학력의 오휘웅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일가족 세 명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대에서 죽었다. 한국 사회의 소수파였던 오휘웅은 경찰에게 고문을 당했고, 억울하다는 그의 목소리는 묵살됐으며, 검사-판사-변호사는 그의 목숨이 달린 일을 가볍게 처리했다. 강자의 외면과 다수파의 오해 속에서 죄 없는 오휘웅은 사형대에서 소수파의 삶을 마감했다.
오휘웅이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내 머리는 축축하게 젖은 어느 살인범의 손을 계속 떠올렸다. 불과 약 일주일 전의 일이다. 6월 16일 광주고등법원에서는 일명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 1차 공판이 열렸다. 지난 16년 동안 택시기사를 죽인 살인범으로 살아온 최성필(가명)과 악수하며 덕담을 건넸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이젠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무척 당황했다. 미지근한 물에 푹 담갔다 뺀 듯한 그의 축축한 손바닥 감촉 때문이다. 식은 땀은 손바닥만 적시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으로 춥기까지 한 법정 안에서 그의 얼굴 역시 식은 땀으로 젖었다.
그는 살인범이 아니다. 최성필은 나이 열다섯 살에 택시기사를 죽였다는 누명을 썼다. 드디어 모든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법정에서 그는 긴장하며 떨었다. 그뿐이 아니다. 기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익산경찰서에 체포됐을 때 어떻게 맞았나요?"
"……."
"16년 만에 재심이 열렸는데요. 바람이 있나요?"
“…….”
"현재 심정이 어때요?"
"……."
너무 답답해 내 억장이 다 무너지는 듯했다. 경찰에게 뺨을 맞고 몽둥이로도 맞았다는 말을, 이제라도 누명을 벗어 당당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는 심정을, 살인사건 조작의 책임자들이 이제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을, 왜 시원하게 못 하는가.
조갑제의 책을 읽으며 가슴이 뜨끈하게 달아오른 까닭
조갑제 역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오휘웅의 사건기록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워한다. 오휘웅도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했던 인물이다. 책에는 누명 쓴 이들의 '침묵'에 관한 조갑제의 견해가 나온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오씨가 왜 좀 더 대차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느냐고 짜증을 부리는 것은, 16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주로 경찰서 출입을 했고, 한 번도 경찰이 두렵다는 것을 실감해 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의 세상물정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에 수도검침원이란 직업을 가진 한 서민이 경찰, 검찰, 법원이란 막강한 조직과 부딪혔을 때 느꼈을 공포감과 무력감을 모르고 내뱉는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40년 전 오휘웅처럼, 최성필도 무섭고 떨렸을 것이다. 그 탓에 살인누명을 썼고,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솔직한 심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때면 반대로 입이 닫히고 만다.
어디 오휘웅, 최성필만 그러하겠는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침묵을 강요받았고, 심지어 학교에서는 공부 못하는 아이에겐 발언권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산 사람이 경찰, 검사, 판사에게 할 말 다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다.
조갑제의 책을 보면서 내 가슴이 장마철 방바닥처럼 뜨끈하게 달아오른 건, 40년 전 오휘웅이 겪은 일들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분노 때문이다.
조갑제는 머리글에서 "한 세대 만에 수천 년간 이어오던 고문의 악습을 휴전선 남쪽에서 거의 근절했다는 점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라고 미화할 만하다"라고 썼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나는 '거의 근절했다'는 안도감보다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가 된 김신혜, 전북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3인조 등은 오늘도 누명을 썼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들은 모두 경찰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최성필 사례 포함해서 이들 사건과 사형수 오휘웅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1. 사람이 죽은 끔찍한 사건이지만, 경찰-검찰은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할 물적 증거를 찾지 못한다.
2. 물적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도, 피의자들은 모두 자백을 한다.
3. 이들의 자백은 경찰-검찰-판사 앞에서 계속 달라진다.
4. 수사과정과 재판에서 제대로 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한다.
5. 물적 증거가 없는데도 판사는 중형을 선고한다.
6. 오휘웅, 김신혜, 최성필, ‘삼례 3인조’는 모두 가난하고 많이 못 배운 사람들이다.
증거는 없지만, 자백은 존재한다? 그 자백은 조작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백의 구체적인 내용이 계속 달라지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자백이 진실된 것인지, 거짓인지를 가리는 기준으로 흔히 '비밀의 폭로'란 말이 쓰이고 있다. 즉, 진실된 자백에선 수사관도 미처 몰랐고, 현장에서도 드러나 있지 않았던, 범인만이 알고 있는 새로운 사실이 반드시 폭로된다는 것이다. 이 비밀의 폭로가 없는 자백은, 일단 그 신빙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논리다.
오휘웅은 자백만으로 사형을 당했다. 자백만 존재하는데도 김신혜는 무기수가 됐고, 최성필은 1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판사, 변호사는 왜 존재하는가?
괜히 몸에서 열이 올라 몸을 뒤척인다. 방바닥이 뜨거워서만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조갑제는 ‘보수우익의 아이콘’이 됐지만, 한 시절 그는 좋은 기자로서 한국 언론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가 그 증거다. 정치성향과 이념을 떠나, 과연 나는 조갑제처럼 할 수 있을까? 흐릿한 세상에서 선명한 진실을 길어올리는 제대로 된 기자 역할 말이다.
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