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칼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Jul 19. 2016

[하이힐]어떤 멍청이가 전쟁터에서 하이힐을 신고 싸워?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

                 

요즈음은 하이힐(high heels)을 여성의 전유물처럼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성이 주로 신는 신발이었지요.


하이힐의 역사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단어의 어원부터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하이힐은 하이(high)와 힐(heel)의 합성어입니다. 힐은 고대 영어 헬라(hela)에서 유래한 말로 '발의 뒤꿈치'를 가리키지요. 15세기부터는 '신발이나 부츠의 뒷부분'까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해요.


하이힐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출토되는 무덤이나 신전의 벽화에 하이힐이 자주 그려져 있지요. 본격적으로 하이힐을 신은 사람들은 고대 페르시아의 기병으로 알려져 있어요. 말을 타는 기병은 뒤축이 높은 신발을 신어야 했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말을 타고 내리거나 달릴 때 발이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하이힐은 본래 남자, 그것도 말을 타는 건장한 남자들이 신는 신이었어요.


하이힐과 관련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여성 중 한 명은 16세기 카트린 드 메디시스입니다. 그녀는 결혼식에 신을 하이힐을 피렌체에서 만들어왔어요. 프랑스 귀부인들은 결혼식에서 그녀의 모습을 본 후 앞다투어 이탈리아식 하이힐을 신기 시작했다고 해요.


하이힐을 유행시킨 대표 남자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입니다. 태양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력이 막강했던 그는 키가 작아 늘 고민이었어요. 특히 대신들이나 귀족들과 함께 걸어갈 때 이러한 고민은 더욱 커졌지요. 키가 큰 신하가 자신을 내려다볼 때면 루이 14세는 거북함을 넘어서 수치감마저 느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는 한 제화공에게 자신만을 위한 높은 구두를 주문했어요. 이 제화공은 뒤축을 보통보다 훨씬 높이고 그 주위를 다양한 전투장면으로 화려하게 꾸몄지요. 이때 만든 구두 중에는 굽이 10cm가 넘는 것도 있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요. 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왕실복을 입고 있는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라는 그림을 보면 루이 14세가 얼마나 높은 하이힐을 신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요.


태양왕으로도 불린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절대 왕정을 유지했어요. 베르사유 궁전을 짓기 시작한 인물로도 유명하지요.

프랑스의 가장 빛났던 시기를 호령한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어요. 키가 작다는 것이지요. 하이힐은 그런 그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답니다.


'루이 힐스'는 곧 유행을 타, 프랑스의 귀족들은 남녀 구분할 것 없이 하이힐을 신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발이 크고 넓적한 남자 귀족들 중에는 불편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답니다. 반면 여자 귀족들이 그 유행을 계속 이어주어 오늘날 하이힐이 여성들만의 신으로 남게 되었지요.


하이힐과 관련된 또 하나의 사건은 프랑스 혁명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이힐을 부(富)의 상징으로 여겼지요.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다가 평민들에게 괜한 봉변을 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뒤축을 많이 낮추었다고 하네요. 공포스런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그 뒤축은 다시 높아졌지만 말입니다



[1분 세계사] 나일론이 실크보다 비쌌던 적이 있었다? 

하이힐을 신을 때는 나일론(nylon) 스타킹을 신는 경우가 많지요. 나일론은 비닐(vinyl)에서 뗀 닐(nyl)과 코튼(cotton)에서 뗀 온(on)을 붙여 만든 말이에요. 

나일론은 1935년 미국의 종합화학 회사 듀폰에서 일하던 월리스 캐러더스가 개발해 "비단과 같이 아름답고 철보다 강하며 물과 공기와 석탄으로 만든다"라고 선전한 합성섬유지요.

듀폰사는 이 합성섬유로 1935년 나일론 스타킹을 만들었고 그해 뉴욕 세계 박람회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박람회에 처음으로 선보였어요.(<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 2> 찰스 패너티, 자작나무, 1997년, 140쪽) 엄청난 인기로 이듬해 나일론 스타킹의 가격은 한 켤레에 59센트에 거래되던 실크 제품보다 훨씬 비싼 1달러 25센트였지만 무려 3600만 켤레나 팔렸다고 합니다. 나일론은 1938년 프랑스에 들어와 1945년부터 유행했는데, 이 해는 프랑스 여성들이 나일론 스타킹에 열광하던 때로 기억되고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일론은 농담거리가 되기도 했어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미국인들은 복수심에 불타 나일론의 첫 글자를 따 일종의 유희시를 지었어요. 그 시는 바로 "Now You Lose Old Nippon"이었지요. 이 말은 본래 일본이 실크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제 새로 개발된 나일론이 나왔으니 오래된 일본 너는 이제 진 것이다’라는 의미였다고 해요.



* 본 연재는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장한업, 글담출판사, 2016)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사진 : 글담출판사 제공

글 : 칼럼니스트 장한업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의 애우' 잊을 수 없는 그 살랑거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