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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02. 2016

[바게트] 법대로 안 만들면 처벌? 프랑스 '바게트법'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

1980년대까지 ‘빵집’ 하면 바로 ‘독일’을 떠올릴 정도로 우리나라엔 독일식 빵집이 많았어요. 그런데 1988년 서울 광화문에 문을 연 ‘○○바게뜨’라는 빵집이 인기를 끌면서 독일식 빵집은 하나둘씩 사라졌습니다. 이 빵집은 2014년 전국에 3000개 이상의 점포를 둘 정도로 급성장했지요. 요즈음은 군이나 면 소재지에서도 이 빵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니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어요. 적어도 빵에 관한 한 프랑스는 한국에서 독일을 물리친 셈이에요.

여기에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어요. ‘진짜’ 바게트(baguette)는 드물다는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진짜’ 바게트는 프랑스 바게트를 말해요. 한국 것과 프랑스 것 사이에는 크게 세 가지 차이점이 있어요. 첫째, 한국 바게트는 크기가 작아요. 한국 바게트는 45cm 정도지만, 프랑스 바게트는 65cm 정도 됩니다. 둘째, 두 바게트의 맛이 달라요. 프랑스 바게트는 겉은 딱딱하지만 안은 부드럽고 고소한데, 한국 바게트는 질기고 고소한 맛도 덜하죠. 셋째, 한국 바게트가 가격이 비쌉니다. 한국에서는 3000원 정도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1500원 정도예요.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난 프랑스에서 바게트가 이렇게 싼 이유는 뭘까요? 바로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바게트를 사먹을 수 있도록 가격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담긴 철학은 국가가 생필품의 가격을 통제해서라도 국민이 먹는 문제로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프랑스혁명의 정신과 프랑스식 사회주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요. 프랑스 정부는 바게트 외에도 포도주, 커피, 치즈 등의 가격을 통제하고 있답니다.

프랑스 바게트는 프랑스혁명의 산물이에요.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1793년 국민공회는 “이제부터 모든 프랑스인은 똑같은 빵을 먹어야 한다”라는 법령을 공포합니다.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프랑스 혁명으로 모두가) 평등해진 체제에서, 부자와 빈자의 구분은 없어야 한다. 따라서 부자는 최상품 밀가루 빵을 먹고 빈자는 밀기울 빵을 먹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모든 제빵사는 감방에 가는 게 싫으면 ‘평등의 빵’이라는 단 한 가지 빵을 만들어야 한다.

1856년 나폴레옹 3세는 이 ‘평등한 빵’의 크기와 무게를 40cm와 300g 정도로 규격화하려고 한 적도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도 현대화와 기업화 바람이 불었어요. 제빵업도 이러한 흐름에서 비켜갈 수 없었지요. 바게트도 기계로 만들게 되었고요. 이러한 대량생산으로 제빵회사는 해외로 진출할 수 있었지만 동네 골목에서 전통 방식으로 바게트를 만들던 제빵사들은 큰 타격을 입었어요. 참다 못한 제빵사들은 1980년대 말 전통과 자신들의 생존권을 내세우며 바게트의 기계화·기업화를 반대하고 나섰지요. 이에 프랑스 정부는 1993년 ‘빵에 관한 법령’을 제정해 제빵사들의 손을 들어주었어요. ‘프랑스 전통 바게트’를 만드는 규정도 생겼어요. 여기에 따르면 ‘프랑스 전통 바게트’에는 밀가루, 물, 효모, 소금만을 넣어야 합니다.

프랑스 바게트는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 하에 오늘도 그 전통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어요. 대기업이 소상인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한국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죠.

바게트의 어원은 ‘막대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쿨룸(baculum)인데, 이는 바게트가 마치 막대기처럼 길게 생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에요.

[1분 세계사] 이집트 노예의 실수가 맛있는 빵을 만들었다?

바게트와 같이 밀가루로 빵(bread)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600년경이라고 하니, 오래되었지요? 사람들이 빵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어요.

본래 이집트의 빵은 누룩을 넣지 않아서 납작했어요. 어느 날 한 이집트 노예가 반죽한 빵을 화덕에 넣고 잠시 졸고 말았어요. 잠에서 깬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화덕에 불이 꺼졌을 뿐 아니라 얇은 밀가루 반죽이 평소보다 두 배나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가 잠든 동안 화덕의 열기가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켰던 거예요.

노예는 불을 다시 지폈고, 열기가 부푼 밀가루 반죽을 다시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했어요. 그런데 밀가루 반죽은 납작해지기는커녕 더 커지고, 껍질은 딱딱해지면서 금빛을 띠었어요. 어쩔 수 없었던 노예는 ‘실패한’ 빵을 주인에게 건네주었는데, 크게 혼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주인은 그 빵을 매우 맛있게 먹었고 노예의 요리 솜씨를 크게 칭찬했어요. 앞으로는 빵을 그렇게 만들라고도 했고요. 참 재미있는 이야기지요.

참고로 빵은 포르투갈어 뻐웅(pão)이 일본어를 거쳐 한국어로 들어온 단어랍니다.

※ 본 연재는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장한업, 글담출판사, 2016)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사진 : 글담출판사 제공

글 : 칼럼니스트 장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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