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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17. 2016

쓰러지기 일보직전, 종로 골목에서 '별'을 만났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 순수하고 기발한 아이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메시지, 아이 그림을 명화처럼 감상하며 '아이 그림 읽어주는 여자' 권정은의 해설을 들어봅니다.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 내 자신, 그리고 세상과 다시 나누는 이야기. 이 연재는 권정은 'Art Centre 아이' 원장의 책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 편집자 말


하늘의 별을 올려다본다. 아…… 별들! 정말 신기하다. 내가 보는 저 별을 이순신 장군도 보았을 것이고, 옥 속에 갇혔어도 만세를 부르던 유관순 언니도 보았을 것이고,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보았을 것이다. 역사 속의 유명한 사람들, 혹은 저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 내가 지금 보는 저 별들을 그들도 보았고, 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신기한가.


별은 동서고금을 넘어 모든 인류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끈과 같은 것이다. 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서 각자의 생활을 각 시대마다 다르게 해나가도 모든 인류는 한 곳을 바라본다. 별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서로 달라도 사실은 같은, 인간이기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마음들이 별처럼 생겨나는 것 같다. 


'별 밤 아래 달리는 말' 유정원 작품


언젠가 캐나다의 로키 산맥을 간 적이 있다. 높은 산인데다가 추운 밤이라 다들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데 나는 수영복을 입고 야외온천을 즐기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온천에 몸을 담근 나의 두 눈은 자연스럽게 밤하늘로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서울의 하늘에서 보던 별과는 다르게 너무도 크게 빛나며 마구 쏟아질 것만 같던 찬란한 그 별들! 내 머리 위로는 북두칠성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일어서서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수많은 별들의 숫자에도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던 그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별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축복처럼 내 머리 위로 내려앉는 듯했다. 그러자 저절로 세상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축복의 기도가 터져나왔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웠다. 혼자 저 별을 보는 게 정말 아까웠다. 이 벅찬 아름다움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내가 바라보는 저 별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바라보고 있을까? 내가 지금 보는 저 별을 내일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나처럼 바라보겠지. 


'눈 속의 별' 박리엔 작품


이십 대 후반 무렵 영화 세트 디자인 제안이 들어와 영화 촬영장에 간 적이 있다. 종로의 한 골목,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반복의 반복을 거듭하고 조명을 바꿔가며 회의하고 반복해서 촬영하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밤 12시를 훌쩍 넘어 새벽 3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날은 우선 현장분위기만 스케치하러 간 것이라 나는 한두 시간 후에 자리를 떠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열정적이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자리를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벽에 갑자기 여름비가 거세게 내리쳐 모두 골목길 처마 밑에서 간신히 비만 피한 채 촬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내 인내심도 어느덧 한계치에 이르러 다리도 너무 아프고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스태프들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찬 빗속에 별들이 보였던 것이다. 거세게 쏟아지는 빗속에 스태프들의 눈동자에 보였던 별들이 총총 떠 있었다. 나는 전율이 일었다. 그 눈빛의 진지함, 열정의 빛. 지쳐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모두 지친 기색도 없이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별과 같은 빛을 뿜어내며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생기 있게 빛나는 눈동자는 로키 산맥에 떠 있던 별들과 차이가 없었다. 그 열정의 별들로 영화는 탄생되고 있었고 세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별을 간직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삶이 고되도 가슴 안에 소망이 있고 열정이 꺼지지 않은 채 꿈을 현실로 만드는 추진력이 있는 이라면 그는 분명히 별과 같은 존재이다. 가슴 속에 간직한 별은 두 눈으로 그 빛이 뿜어져 나와 별 눈이 되고 또 그 빛은 옆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힘이 된다. 그 빛으로 주변을 비추면 별을 간직했던 사람은 별 자체가 되는 것이다. 


'별' 최지은 작품


지은이에게도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지은이는 물이 담겨진 컵에서도 별을 보고, 자기 손톱의 반달을 하늘의 달 삼아 별들과 놀이를 한다. 그 별들을 뜨개질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우주와 맑은 영혼에 대한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는 삶을 산다. 별처럼 맑은 삶을 꿈꾸는 지은이는 벌써 별이 된 것일까. 그 마음이 지은이가 그린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져 내게도 그 고운 빛이 닿는다. 


'별 아래 잠자는 고양이' 오수민 작품


우리는 언제 별이었던가! 그 빛을 잃어버린 우리는 그저 걸어 다니는 생명체일 뿐. 진정한 인간의 가슴 속에는 별이 떠 있어야 한다. 두 눈은 두 개의 별이 되어야 한다. 그 별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지구를 돌게 한다.


글 : 칼럼니스트 권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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