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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22. 2016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답하다

리얼리즘 산증인 이시영 시인 작가 인터뷰

"시인의 상상력이 나한테 주는 신선한 충격,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맛보지 못하는 의외성, 이런 것들이 시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인 것 같아요. 나를 팍 하고 쳐주는, 마치 불교의 깨달음, 선(禪)적 직관 같은 거죠. 음악적으로 보더라도 시적 구조가 우리한테 주는 즐거움이 있죠. 탄탄한 음악적 언어구조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은 산문문학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시만의 특성 아닌가 해요."


시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시영 시인의 위와 같이 대답했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와 월간문학 신인작품공모를 통해 등단한 이시영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우리 시단의 거목이다. 1980년대부터 20년 이상 창비(옛 창작과비평사)의 편집장과 주간 부사장 등을 맡아 일한 그는, 평생 시를 쓰고 시를 읽으며 살아왔다.

그동안 15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낸 이시영 시인. <시 읽기의 즐거움>은 그가 1995년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 이후 21년 만에 낸 산문집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가 읽은 시와 그가 사랑한 시인들에 대한 진솔한 고백들이 담겨 있다. 7월 28일 서울 서교동 창비 서교사옥에서 만난 그와 함께 '시 읽기의 즐거움'과 우리 시의 오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여 년 만에 나온 산문집.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부터 물었다. 그는 "시인에게는 시적 자아와 함께 비평적 자아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비평적 자아가 너무 앞서면 시적 자아가 죽기 때문에 되도록 비평적 자아를 잘 드러내지 않아왔지만,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시를 읽어온 경험을 겸손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그동안 쓴 글들을 묶어 낸 것이다.


시를 읽으며 즐거움을 느끼려면 그저 한 글자 한 글자를 해석하는 것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이시영 시인은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 읽기 방법으로 "날 것 그대로 느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느낌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해석이나 비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이 주는 날 것의 생생한 감성과 맞부딪혀서 교감하는 것이 시를 읽는 첫걸음"이라며, "주어진 해석 체계에서 탈피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교과서에서 잘못 배운 상투적인 시 읽기에 갇혀 해석에만 급급하는 것은 시를 죽이는 일"이라고 강하게 말하기도 했다.

"교과서에서 잘못 배운 시 읽기, 시를 죽이는 일"

그러면서 시를 읽는 초심자들에게 가장 좋은 텍스트로 김수영의 시를 꼽았다. 김수영의 시라, 너무 어렵지 않을까? 이시영 시인은 오히려 어렵기 때문에 도전해보는 맛도 있고, 김수영 시에는 비애의 느낌, 생활에 뒤처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적 자아의 슬픔 같은 것들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어떤 도그마를 가지고 시를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김수영 시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수영의 위대함은 일상어로 시를 썼다는 점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전까지 감히 시어가 되지도 못한 일상어들을 시로 받아들이면서 "언어의 혁명"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시영 시인은 '김수영을 누가 극복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아직은 그 대답으로 내놓을 만한 시인의 이름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김수영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우리가 도전해야 할 대상"이다.

김수영의 시에 대한 그의 평가를 듣고, 그러면 좋은 시는 대체 어떤 시인가 궁금해졌다. 사실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우선 요란을 떨지 않아야 되겠죠. 진짜 좋은 시는 여백으로 꽉 차 있는 시죠. 더 이상 깎을 말이 없고 더 이상 덜어낼 말이 없는 꽉 차 있는 시. 그리고 그런 여백이 있어야 음악성이 나오거든요. 과감한 생략 속에서 음악이 발생하지, 산문화 시켜버리면 음악이 끼어들 수가 없죠."

이 말을 들으며,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가 생각났다. 아래는 그의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창비, 2007년)에 실린 '시인이라는 직업'의 전문이다.

금강산에 시인대회 하러 가는 날, 고성 북측 입국심사대의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 군관 동무가 서정춘 형을 세워놓고 물었다. "시인 말고 직업이 뭐요?" "놀고 있습니다." "여보시오. 놀고 있다니 말이 됩네까? 목수도 하고 노동도 하면서 시를 써야지……" 키 작은 서정춘 형이 심사대 밑에서 바지를 몇번 추슬러올리다가 슬그머니 그만두는 것을 바다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시영 시인이 말하는 '요란 떨지 않는 것'이란, 이 시의 마지막과 같지 않을까. 이 시의 마지막에서 "바지를 몇번 추슬러올리다가 슬그머니 그만두는 것"의 의미나 감상에 대해 주절주절 또 말을 늘어놓았다면, 시가 주는 재미와 감동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저 '꽉 찬 여백' 속에 시를 읽는 사람의 즐거움이 깃들 수 있다.

나는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으며 "살아 있는 시를 더욱 살아 뛰게 하는 '생물 비평'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39쪽)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흔히 시집 맨 뒤에 실리는 '해설'이라는 글이 오히려 시의 재미를 뚝 떨어뜨리는 경험을 나도 여러 번 해봤기 때문이었다. 시 읽기의 길잡이가 돼줘야 할 비평이 오히려 독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답답한 경험.

이시영 시인은 시 읽기의 즐거움을 키워줄 제대로 된 비평의 중요성을 ‘생물 비평’이라는 단어로 강조했다. "살아 있는 작품에 살아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라"는 말이다. 생물 비평이란 곧 "섬세한" 비평. 그는 "기계적인 비평", 즉 "시를 자기 식으로만 쭉 해설하고 말아버리는 비평"이 너무 많다며 짧게 혀를 찼다. 좋은 비평이란 시인이 못 본 것들을 찾아내고, "제각각의 방식으로 훌륭한" 시의 가치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평가에게는 자기 지식체계 속으로 시인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작품이 갖고 있는 고유한 구조에 감응하는 섬세성이 필요한 것이다.

"문학권력 논쟁은 반성적 계기… 생산적으로 진행됐으면"

이시영 시인은 비평가들에 의해 "의외의 소외"를 당하는 시인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문단의 권력지도 등에 의해서 과대평가된 시인도 많고, 반대로 과소평가된 시인도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의외의 소외"를 당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서정춘, 김종삼, 천상병 등을 꼽았다. "소위 영향력 큰 출판사에 소속되지 않은 시인들은 좋은 시를 쓰면서도 저평가되고 있다"며, 반대로 "한번 좋은 시인으로 평가되면 허명(虛名)에 의해 계속 대단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문단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올해 초 창비 5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한국문학의 70년대는 르네상스 시대, 80년대는 군웅할거의 분할기, 90년대는 침체기’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문학은 어떤 시기를 건너는 중인 걸까.

“2000년대 이후의 시들은, 나는 그냥 감각파의 시라고 하고 싶어요. 후기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공통적인 근거를 잃고 해체된 거죠. 단일한 대오나 단일한 과제로 묶일 수 없는 시민들의 각자도생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이성은 배제돼야 할 것으로 반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고, 남아 있는 건 감각밖에 없는 것 같아요. 분해와 분열을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들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물론 존중해야겠지만 언제까지 해체만 하고 있어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시영 시인의 이름 앞에는 흔히 '리얼리즘 대표시인'이라는 말이 붙는다. 그의 평가처럼, 오늘날 우리 시의 '주류'에는 공동체적 경험보다는 개개인의 감각과 세계의 해체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이른바 '리얼리즘'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시영 시인의 입에서는 송경동 시인의 이름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는 "끊임없이 현실에 가로놓인 벽과 부딪히면서 자기 몸으로 시의 길을 열어나가는" 송경동 시인의 시가 하나의 작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아울러 손택수 시인이나 박성우 시인 역시 "리얼리즘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그와 함께 오늘날 우리 문학의 현실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그 사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딱 1년쯤 전인 것 같다. 표절 논란에서 시작해 '문학권력' 논쟁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 말이다. 그가 오래 몸담은 창비 역시 문학권력으로 지목돼 곤혹을 겪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소회가 궁금했다.

"부정적인 사건이었지만, 한국문학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깨우쳐준 것 같아요. 반성적 계기가 된 거죠. 지금 아쉬운 것은, 논쟁이 조금 더 생산적으로 진행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출판사들에게 자기폐쇄적인 요소들이 있거든요.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이성적으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요란하게 끓다가 중단된 듯한 이것이 한국문학의 고질인 것 같아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상 받으니까 마치 한국문학이 세계성을 쟁취한 것처럼 요란하게 다 그쪽으로 갔다가 금방 또 잊어버리고. 끓는 냄비 같아요. 자기고독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한두 해 사이에 우리 문단에서 발견되는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새로운 문예지의 출현이다. 젊고 대중적인 겉모습으로 단장하고 조금 더 가벼워진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나타난 문예지들. 그에 대해 이시영 시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고은 시인의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이 시대의 울음으로 울어야 한다." 그는 '악스트', '더 멀리' 등 문예지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자기 시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비평을 축소하는 최근 문예지들의 경향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의 분명히 하기도 했다.

"헬조선 현실 질문하는 시 많아져야… 너무 감각으로만 도피"

이시영 시인을 만나기 하루 전인 7월 27일, 창비시선의 400번째 책이 나왔다. 기념시선집으로 기획된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박성우, 신용목 엮음). 창비시선은 1975년 신경림 시인의 <농무>를 시작으로 40년 이상 이어져온 한국의 대표적인 시집 시리즈다. 시인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창비시선을 직접 만들어온 출판인으로서 그가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았다.

그는 창비시선을 "시에서의 리얼리즘, 한국시의 건강한 현실의식을 굳건하게 지켜나간 기둥"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정체성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라며, "헬조선의 현실에 대해 질문하는 시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너무 감각으로만 도피하는 것 같다"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창비시선의 방향성에 대해 "이 세계와 끊임없이 통화를 시도하려는 시집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더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나온 놀라운 말 한마디가 있었다. 바로 "은퇴를 선언하는 용감한 시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는 판에 박힌 시집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다고 꼬집으며, 관성에 젖은 시를 쓰며 계속 익숙한 포맷으로 익숙한 세계만 노래하는 것보다는 자기 시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시인도 은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시력(詩歷)이 47년을 넘어가는 이시영 시인. 과거의 명성과 관성에 젖어 '쓰나마나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렸다.

인터뷰의 마지막은 기자가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가장 '간절하게' 묻고 싶은 질문으로 마무리지었다. 한 가지 냉정한 사실은, 지금 사람들은 시를 '거의' 읽지 않는다는 것. 리얼리즘시의 산증인으로서 이런 시대에 대해 그가 품고 있는 "대안적 고심"을 듣고 싶었다.

"자본주의 시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고독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 시대 속에서, 어떤 계기로 시가 막 확산될 거라는 환상을 갖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정한 독자들을 확보해나가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 500부 팔리던 시집이 갑자기 1만 부 팔리는 세상은 오지 않아요. 와서도 안 되고. 예술가의 모험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 카프카는 '어떤 예술은 시계보다 앞서서 온다'고 말했어요. 예술가가 오지 않은 세계를 꿈꾸고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 주변부터 한 사람 한 사람 시와 함께 사유하는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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