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Oct 04. 2016

'뜨거운 피'의 작가 김언수, 쿨함이 우리를 외롭게 해

  

있는 거라곤 바다와 건달뿐인 부산의 작은 바닷가 마을 구암. 바닷가를 밑천 삼아 장사를 하고, 사기를 치고, 또 밀수를 해서 겨우 살아가는 곳이다. 만리장 호텔 지배인 희수는 손영감의 오른팔로, 마흔이 다 되도록 혼자 달방에 산다. 구암에서 벌어지는 온갖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처리하며 그저 그런 건달의 삶을 살고 있지만 희수는 첫사랑과 결혼하고 싶은 꿈이 있고, 손영감과 동생들에 대한 의리도 있었다. 아직 뜨겁던 희수가 구질구질한 만리장 호텔을 떠나고 벤츠를 타면서 그의 삶은 어른들의 세계를 닮아간다. 희수는 그 삶이 행복했을까?

김언수의 신작 장편소설 <뜨거운 피>(문학동네)는 마흔 살 건달 희수의 짠내 나는 인생 이야기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서울 아주 작은 카페에서 소설가 김언수를 만났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 쉴 새 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이야기할 때 표정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어릴 적 시끌벅적한 동네에서 살던 추억부터 그가 생각하는 문학과 그리고 삶을 바꾼 경험까지. 그의 말투는 유쾌했고,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꾸밈이 없었다.

Q <뜨거운 피>는 구암이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건달들의 이야기예요. 주인공 희수의 삶이 너무나 생생해서 취재를 굉장히 자세하게 하신 줄 알았어요. 작가의 말을 보니 취재 없이 썼다고 밝히셔서 정말 놀랐어요. 이번 소설을 어떻게 썼는지 궁금해요. 

제 친구들이 깡패가 많아요. 친구들이 만날 하는 이야기가 그런 거예요. 고춧가루 빻아서 팔고 있다는 둥, 감옥에 갔다 왔다는 둥. 해변 마을은 한여름 장사로 1년을 먹고살잖아요. 동네 슈퍼 아줌마부터 다 건달의 삶을 사는 거죠. 바가지도 씌우고 도박도 하고. 1년살이 삶에는 건달도 있고, 밀수도 하고, 비수기에는 놀고, 또 서울대 가는 친구도 있고. 그 삶을 저는 본 거죠. 전 스무 살 때까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요.(웃음)

Q 부산에서 살다가 스무 살이 넘어 서울에 오셨는데, 처음 서울 왔을 때 기억나세요? 

그 얘기를 <뜨거운 피>에서 하는 건데요. 부산 구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바닷가 사람이에요. 뭐랄까, 아이 같다고 할까? 바닷가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내놓고 살아요. 서울에 와서 문화충격이 컸어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백화점 같은 웃음인 거예요. 그걸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는데, 허약한 거예요. 상처 받지 않으려고 상처 주지 않는 건,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에요. 서울에서 그렇게 한 20년쯤 사니까 아주 공허하고 피곤하더라고요.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소설 속 구암은 어릴 때 살던 동네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작가님 어린 시절이 궁금해져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어떤 풍경들이 떠오르나요? 

동네 집들이 아주 작았어요. 일곱 개쯤 되는 방에 열 가구가 살았어요. 열 가구! 화장실은 나무로 된 것 하나밖에 없고. 다방구라는 놀이 아세요? 동네에서 그거 한 게임 하려면 네 시간씩 걸려요. 게임이 끝나질 않아요. 놀다보면 해가 져서 애들 밥 먹으러 들어가고… 굉장히 가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동네였죠. 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서울에 사는 아이들 보면 노는 시간이 없잖아요. 아이들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게 공부인데, 학원 때문에 재앙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해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얼굴이 어두워요. 다 달리니까 일단 달려보긴 하는데, 뭣 땜에 달리는지는 몰라요.

"허영으로 쓴 소설, 결국 쓰레기통으로... 핵심은 정직함"

Q 경쟁하는 삶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사람들이 가진 따뜻한 온도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뜨거운 피>를 읽으면서도 그런 걸 느꼈는데, 주인공 희수도 결국 비정한 모습을 보여요. 건달뿐 아니라 우리 삶도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작가님에게 ‘뜨겁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해요. 

생명이 죽어간다는 건 차가워진다는 거예요. 실제로 체온 떨어지잖아요. '쿨'한 건 멋진 게 아니라 허약한 거예요. 제가 최근에 큰 수술을 했는데, 그러고 나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거예요. 사랑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사랑뿐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좋은 소설을 쓰고,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해요.

에너지는 자극을 줘야 되는데, 싸늘하게 문을 닫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죠. '쿨함'이 깔끔한 삶이라는 건 오해예요. 그 오해가 우리를 불우하고 외롭게 만들어요. 외로워지면 차가워지죠. 그럼 우리가 꿈꾸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세계적으로 이야기의 힘이 약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도시에서 맺는 관계가 공허하다고 했잖아요. 소설가 모임에 나가면, 아무도 소설 얘기를 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계간지 안 보잖아요. 좋은 말만 써주기 때문이에요. 누가 주례사를 보고 싶어 하겠어요? 솔직하게 비판하고 전쟁을 벌여야 돼요. 그래야 서로를 알게 되고 악수를 할 수 있어요. 문학은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이고 악수를 하기 위한 행위고, 예술은 소통하기 위한 거예요. 창작자는 풍경을 이미 봤잖아요. 그걸 왜 언어로 옮기겠어요? 나누기 위해서인 거죠. 

Q '작가의 말' 마지막에 희수가 보기 좋은가, 이 삶이 보기 좋은가 물으셨어요. 저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요. 작가님은 차가운 어른들의 세상으로 들어간 희수의 삶이 어떻게 느껴지세요?

선과 악은 인간이 만든 이데올로기에요. 소설에서 희수가 작은 선을 베풀어서 다른 큰 악을 만들었죠. 삶은 굉장히 복잡한 거고 살아있는 건 그런 형태라는 거죠. 전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본 거고요. 

소설과 상관없이 제 관점을 얘기한다면, 뜨거워야 할 것과 차가워야 할 것들 앞에서 경건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건 아이가 되는 것과 같아요. 천진해지는 거죠. 천진하다는 건 화내야 할 때 마땅히 화를 내고 울어야 할 때 우는 거예요. 아이들은 금방 웃었다가 금방 화내고 그러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세상을 돌아보고, 바닥까지 내려도 갔다가 다시 올라왔을 때 천진해져요. 저요? 중2 때부터 이 모습 그대로래요. 철들겠어요?(웃음)


Q 작가님도 어린 시절 구질구질했던 삶이 지겨웠다고 한 기사를 봤어요. 지겨웠던 그때의 삶을 지금 소설로 쓴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소설가 천명관 형한테 부산 이야기를 왜 쓰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신파는 쓰기 싫었어요. 그때까지는 문학이 가진 관념이니 미학이니 이런 게 좋았어요. 지금은 그냥 살아 있는 게 좋아요. 살아 있는 건 뭐든지 가치가 있고 풍요롭고 심오하거든요. 예전에는 소설을 정교한 인공물처럼 만들었다면 지금은 만들지 않아요. 살아 있는 근사한 것을 들고 들어오는 거예요.

18세기엔 작가의 권위라는 게 작가가 세계를 꿈꾸고 평가하고 재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설이 사람을 계몽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움직이는 힘은 살아 있는 거예요. 주제가 뭔지 철학이 뭔지 안 물어봐도 살아 있는 것 안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안겨 있어요. 관념이니 주제 따위는 비평가들이 좋아하겠죠. 비평가들이 문학을 망치고 있잖아요. 저도 그런 게 문학인 줄 알았어요.(웃음) 

Q 살아 있는 것을 담는다는 게 어떤 뜻인지 좀 더 들려주세요. 주제를 먼저 정하고 주제를 드러내는 인물이 겪는 사건을 쓴다고만 생각했는데, 작가님은 어떻게 이야기를 담으시나요? 또 소설을 읽을 때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소설을 쓸 때 '이야기가 논다'고 표현해요. 삶에서 어떤 근사한 풍경을 보잖아요. 그때 아이디어가 생겨요. 그럼 그때부터 머리 한 구석에서 그 이야기가 계속 놀아요. 오래 놀다가 그림이 충분히 그려지면 문장은 그걸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해요. 문장이 아니라 삶 자체를 봐야 돼요.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를 때까지 풍경을 몸으로 흡수하는 거예요. 물론 잘 안 되죠.(웃음)

가끔 문학잡지 보면, 전공자인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감히 말하건데, 한국문학은 아직도 권위의 위치에 있어요. 저 밑으로 떨어져야 돼요. 허영과 거짓으로 소설을 쓰면 결국 그 소설은 쓰레기통에 가게 돼요. 핵심은 정직함이라는 걸 저도 쓰레기통에 버릴 때마다 조금씩 배우는 거예요. 비평가들이 말하는 허영과 난해함은 가짜고 우리 삶을 잡아먹어요. 독자는 소설에 나오는 풍경을 생생하게 보면 돼요. 거기서 무슨 주제를 찾으려고 하는 순간 망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책 읽을 때 아무 것도 찾지 말라고 얘기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기사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시의 계절이 왔다...한국인이 사랑한 시집 TOP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