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태민은 제과점의 입구 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간밤에 내린 눈이 미처 다 녹기도 전, 다시 그 위를 눈발이 덮고 있었다. 지금쯤 올 때도 됐는데? 여름부터 갈망해 오던 담배를 난생 처음 꺼내 물었다. 누가 뭐래도 이제부터 난 어른이다! 제법 그럴 듯하게 폼도 잡아 보았다. '뻐끔 담배'도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되나? 그동안 진선과의 데이트 장소가 되어 주었던 이 제과점이 낭보(朗報)를 전달받는 행운의 장소가 될 것인가, 아니면 비보(悲報) 앞에 통곡하는 눈물의 현장이 될 것인가?
그것은 오직 머지않아 나타날 진선, 그녀의 입에 달려 있었다. 중, 고등학교 합격자 발표장을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처지로서, 오늘만큼은 용기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대입 발표장을 향해 떠난 사람은 진선, 그녀 혼자뿐이었다. 그때가 벌써 두 시간 전. 그 지긋지긋한 패배를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운명의 사슬을 끊고 창공을 향해 비상(飛上)할 것인가? 진선과의 교제가 신이 내린 축복으로 해석될 것인가 아니면 악마가 조장한 저주로 평가될 것인가?
올 여름. 가마미 해수욕장을 다녀 온 일이 있었다. 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모처럼 가족끼리 다녀오자'는 이씨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무라리 집에서 짐을 꾸리며 김씨가 하는 말.
"경희허고 향순이, 느그덜이 고상해야제, 밸 수 웂는 갑이다. 우리도 오늘 해지기 전에, 올 틴 게. 알았지야?"
본래 말이 없는 향순이는 언제나처럼 묵묵부답. 하지만 ‘범띠’인 왈가닥 경희가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하이튼. 우리는 사람도 아니란 게."
"저년이 또 무시라고 구시렁댄 디야?"
"어째 밤나 우리만 떨쳐놓고 간 가?"
"야이 년아! 누가 느그덜을 데꼬 가기 싫어서 그러냐? 식구대로 다 가 버리먼, 점빵은 누가 볼 것이냐? 그러고 낮밥 때에 누가 돼야지 밥은 줄 것이며, 달구새끼 모시는 또 누가 주겄냐? 저년이 저러코 속창아리가 웂단 게에..."
"어째서 우리가 남어야 허간 디? 노순이 년도 있넌 디."
"저년, 즈그 언니보고 말허는 것 조까 봐라 이. 느그 언니도 지금까정 한 번도 해수욕장 안 가 봤은 게, 이참에 데리고 가야제. 어째야?"
"우리도 안 가 봤넌 디?"
"그래도 저년이. 주데이를 칵 찢어 버릴란 게. 시방 점빵 볼 사람이 느그덜 말고 누가 또 있냐? 느그 아부지 보고 집에 있으락 허겄냐? 글 안 허먼 아들들 집에 놔두고, 느그 가시네들을 데리고 가리?"
"가시네는 사람 아니간디? 어메도 여잠시로, 항시 여자들만 무시헌단 게."
"고로코 억울허먼, 너도 머심애로 생개나제. 그랬냐?"
"누가 내 맘대로 났간디? 어메가 요로코 났음시로?"
"뭇해야? 히히히... 나 차말로, 시석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이."
뿌루퉁해진 둘을 남기고 영광읍에 도착한 가족은 다시 법성행 완행버스를 갈아타고, 험한 산길을 따라 굽이를 돌아야 했다. 번갈아 바다가 나타날 때마다 태민은 진선을 떠올렸다. 언제 단둘이 이곳에 올 수 있을까. 8월 8일까지만 만나자고 한 약속은 진작에 깨졌다. 그것도 태민이 졸라서. 하지만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탓하지 않았다. 도리어 굽힐 수 있었음이 다행이라 여기는 중. 어느새 그녀는 ‘운명’이 되어 있었다. 가족끼리의 시끌벅적한 잔치보다 그녀와의 호젓한 여행을 더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쪽빛 물결 위에 하얀 고기잡이배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모처럼 맞이한 가족 나들이, 그것도 해수욕장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온통 광주 쪽에 쏠려 있었다. 해 질 녘에야 돌아온 식구들이 평상에 앉아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덕에서 보리밥을 퍼내던 김씨가 땀을 훔치며.
"그나저나 점빵문, 낮밥 먹고는 안 열었지야?"
"아침에 쪼까 열어 났었넌 디, 사람들도 밸라 안 오데."
"날이 언칸 더와서, 돌아 댕길 심도 웂는 생이다. 아따! 근디 해수욕장에는 징허게 사람들도 많드라. 시상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누구 뱃속에서 나왔으끄나 이."
"씨잘 디 웂는 소리 그만허고, 냉큼 밥이나 갖고 와. 고것 쪼까 보고 많닥 허먼, 차말로 서울 갔다 노먼 정신 못 차릴라고?"
이씨의 경우, 요즘 부쩍 서울 나들이가 늘었다. 공화당 당원 교육을 받았다고도 하고, 어떤 국회의원을 만났다고도 하고, 무슨 나이트클럽에 가서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는 소리도 했다.
"그런 게 말이요. 나도 새끼덜 많이 난 년이제마는, 아따! 겁도 안 납디다. 어디서 왔는가는 몰라도, 가시네들 살이 꼭 아픈 사람들같이 히커기도 허드라. 그런디 또 뭇헐라 해수욕장까정 와갖고, 역불러 살을 태울락 허는가 몰르겄드라. 우리 따라서 땅콩 밭 한나절만 매먼 금방 시컴해질 턴디.”
"애팬네도 무식허기는. 그것 허고 이것 허고 같간디?"
보리밥에 찬물을 부었다. 막 퍼낸 뜨거운 밥을 목구멍에 빨리 넘기기에는, 이 방법이 제일이려니. 반찬이라야 급조된 '생김치'와 고추, 된장뿐. 그나마 집어 가는 손이 많다 보니, 생김치는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파란 고추를 된장에 찍어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매운 냄새가 코를 찌르며, 핑 눈물이 돈다.
"아이고! 느그 큰오빠 빨리 물 갖다 주어라. 잘못 먹으먼 큰 일 나는디. 어찌끄나? 괜찮허냐 어찌냐? 내가 골라 줄 턴 디."
"머심애가 매운 것도 먹을 줄 알아야제. 아이! 그나저나 테레비 소리 조까 키와 봐라."
이씨의 고함소리에 경희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가겟방 문 앞으로 달려갔다. 구슬픈 곡조와 함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급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괴한의 총탄을 맞은 영부인께서 끝내 서거하셨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슬픔과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삼가 고 육영수 여사의 명복을 빕니다.”
"엉? 이거이 문 소리디야?"
민주공화당 영광, 장성, 함평 지구당의 수석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씨. 그는 숟가락을 든 채, 얼이 빠진 듯 했다. 언젠가 ‘당 교육’을 받고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따!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간 게, 이북에서 어쭈코 허는지 세밀허게 사진으로 다 나오드라. 하니나! 누구한테 말허지 마라마는, 개미새끼 한 마리 돌아 댕기는 것까장 다 비치는디, 차말로 기가 맥히드라."
"..."
"좌우간 우리나라는 박대통령 같은 분이 웂으먼 안 되아야. 어뜬 사람들은 독재헌다고 무시락 허제마는, 이 사람 말 들어주고, 저 사람 말 들어주고 허먼 은제 경제개발 헐 것이며, 또 어쭈코 고속도로를 놓겄냐? 우리가 시방 새마을운동이라도 해서 요로코 밥줄이나 먹게 되얐제, 글 안허먼 진작 다 굶어 죽었다. 말인 게 그러제, 여그 무라리도 그전 같으먼 보리 고개 한 번 냄길라먼 참 심들었다."
".........."
"요 맘 때쯤, 이 보리밥이 다 뭇이디야? 죽도 못 먹는 사람이 수두룩해 갖고, 얼굴이 누렇게 떠 갖고 댕긴 사람 많앴다. 부황기 났다고 안 그러디야? 또 그 양반 웂었으먼 전쟁이 나든지 난리가 나든지, 진작 절단 나 버렀을 것이다. 키는 짤닥막 해도, 군인같이 야물게 안 생갰디야? 그런게 김일성이도 함부로 못 넘어오는 것이여어. 또 지금까정 업적이 을마나 많냐? 촌에서 보릿고개도 몰아냈제, 사채도 정리했제, 또 부정부패가 을마나 웂어졌냐? 그런 줄도 모르고, 야당 놈들은 끄떡허먼 독재를 허네, 장기집권을 허네 난린 디, 그 양반 아니먼 누가 허겄냐?"
".........."
"그러고 묘헌 것이, 한 번 반대헌 것들은 끝까지 반대만 헌다 이. 그런게 한 번 야당을 헌 사람은 평생 야당배키 안 헌단다. 느그덜은 하니나! 그런 뽄을 받으먼 안 된다 그 말이여어. 알았냐? 그러고 그것들이 국민들 앞에서만 야당 허제, 밤만 되먼 여당질 허니라고 실은 바쁘다 거. 느그덜은 정치를 잘 모를 것이다마는, 말을 안 들으먼 돈 양씬 맥애 버리는 디, 즈그덜이 안 넘어가고 바운 디야? 그래 갖고도 정 안 들으먼, 중앙정보부에 끌고 가 버러. 거그 지하실이 어뜬 딘 지나 아냐?"
"..."
"이북만 아니라, 이남에서 움직이는 것까장 다 보고 있단 게. 특히 야당 국회의원들은 일거수일투족 다 사진으로 찍어 버러. 호텔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어뜬 여자허고 커피 마시는지... 내가 시방 문 말 허고 있디야? 좌우간! 걸어 들어갔다가 뿍뿍 기어서 나오는 디라 그 말이여어. 입만 살아갖고 나불대든 것들이 거그서 하롯밤만 자고 나먼, 대번에 말이 틀려진다 거. 막상 말로 대가리에다 총 들이대고 죽인닥 헌 디, 즈그덜이 문 밸 수 있디야? 군인들이 뭇 있냐? 말 안 들으먼, 그 자리서 '빵' 쏘아 버러. 그런게 정치는 아무나 함부로 허는 것이 아니여어."
".........."
박대통령에 대한 그의 존경심은, 거의 신앙에 가까웠다.
"느그덜은 한 번도 안 봤지야? 나는 직접 봤넌 디, 키는 짝달막 해도 징허게 야물딱지게 생갰그든. 낯바닥은 쪼까 시컴헌 듯 헌 디, 따글따글허게 생긴 것이 비보통이여. 보통 사람들 허고는 생긴 것부텅 틀리단 게. 그런게 아무나 대통령 헌디야? 동네 이장도 지 맘대로 못 되는 것인 디, 벌써 대통령부터는 하늘이 내야 허는 것이여어."
그런데 오늘. 그의 부인, 대통령 영부인이 사망했다고 하니, 그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태민 역시 충격으로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김씨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시상에! 이것이 문 일이끄나 이. 그 양반은 참 한복이 잘 어울리고 허드라마는. 야당 허는 사람들도 그 양반한테는 문 욕을 안 했을 턴 디..."
"그것을 시방 말이라고 해? 국모(國母)란 말도 안 들어 봤간 디? 좌우간 조용히 조까 해 보란 게. 아이! 소리 조까 키와 보란 게 뭇허냐? 박대통령이 어쭈코 되았는가 알아야 쓸 것 아니냐?"
태민 역시 비로소 그 일에 생각이 닿았다. 맞아. 우리나라 안보를 위해서는 영부인보다 박대통령의 신변이 더욱 중요하다. 그의 서거는 곧바로 북한의 침공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공산주의자 문세광의 흉탄에 영부인께서 서거하셨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각하께서는 무사하십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순간. 마당에서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화면은 반복해서 사건 당시 행사장의 모습을 비춰 주고 있었다. 관중석 가운데서 갑자기 일어서 총을 쏘는 범인,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경호원들, 황급히 연단 아래로 몸을 숨기는 박대통령, 반듯하게 앉아 있다가 스르르 옆으로 쓰러지는 육영수 여사, 곧 상체를 일으켜 상대방을 쏘아보는 대통령, 그리고 영부인이 들려 나간 뒤에도 끝까지 경축사를 다 읽어 내려가는 그의 모습 등.
"커! 허. 저것 조까 봐라 저. 보통사람 같으먼, 총소리에 놀래갖고 도망치니라 정신이 웂을 턴 디, 역시 영웅은 영웅이여. 저 눈 봐라. 내가 무시락 허디야? 장군 출신이라 뭇이 틀려도 틀리단게."
이씨의 경우.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다는 사실보다도 구사일생으로 박대통령이 살아남았고, 또 그 와중에서도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더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반면, 김씨의 경우.
"이 일을 어찌끄나 이. 고로코 이쁘고 곱든 양반을 어째서 고놈들이 그랬으끄나? 어째 대통령을 안 쏘고 육여사를 쏘았으끄나?"
"애팬네가 문 말을 해도 꼭. 그러먼 대통령이 총이라도 맞었으먼 쓰겄어? 글 안해도 그 새끼가 대통령 먼첨 쏘았구만은..."
"시상에! 여자를 뭇 헐라고 쏘끄나? 고놈들이 간첩들이지야 이?"
".........."
대답 대신,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 이 대목에서는 이씨 역시 목이 메는 듯,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목청을 높였다.
"그 통에도 살아난 것 보먼, 아직 우리나라 운이 괜찮은 갑이다. 만약에 대통령이 죽었다고 해 봐라. 김일성이가 카마이 있겄냐?"
사실 태민 또래의 전후(戰後) 베이비붐 세대에 있어서 ‘박정희’란 이름은 ‘대통령’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 하면 박정희, 박정희 하면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당연했고, 그 이외의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대통령 선거 포스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출마하는 통에 후보의 이름과 얼굴, 구호를 훑어보는 데에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이 포스터들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아예 통째로 찢겨 나간 경우도 있고, 두 눈이 움푹 패거나 코가 떨어져 나간 사진, 입이 찢겨져 있는 포스터도 있었다. 험상궂은 수염이 그려지거나,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쓰여 있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깨끗하게 남아있는 포스터가 딱 한 장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박정희 후보의 것이었다. 코흘리개들조차 그의 얼굴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태민은 그가 반드시 대통령이 되리라 믿었고, 또 그러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사건이 생겼으니.
8?15 광복절의 총격사건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족들의 애국심과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한층 더 고양되는 듯 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랫말이 염원이 되고, '하면 된다!'라는 구호가 모두의 신념으로 굳어졌다.
by 강셩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