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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27. 2016

[곶자왈] 사나운 겨울에도 푸릇함과 따뜻함 가득

제주는 그런곳이 아니야

                      

생명의 숲엘 들렀다. 우린 그곳을 곶자왈이라 한다.

 
바람 많은 섬 제주도. 겨울은 매우 차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가장 남쪽이니, 따뜻하겠거니 하면서 찾지만 큰일 날 생각이다. 제주도의 겨울을 한번 느껴봐야 한다. 눈이 날릴 때는 더욱 그렇다. 제주의 눈은 ‘소복’이라는 단어가 없다. 살포시 내려앉지 않고 마구 얼굴을 때린다. 사방팔방으로 얼굴을 때린다. 눈이 그러고 싶어서 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은 사람을 강하게 때린다. 그래서 제주의 겨울은 춥다. 특히 북서계절풍이 강하게 밀려오는 제주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곶자왈은 다르다. 제주라는 섬의 겨울이 사납도록 춥더라도 곶자왈에 가면 찬 겨울과 대비되는 푸릇함과 따뜻함이 가득하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이라도 곶자왈에선 춥다고 말하지 않는다. 거리와 들엔 앙상한 가지를 남긴 나무들만 우릴 응시하지만 곶자왈엔 파릇파릇한 손을 내미는 나무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곶자왈 바닥에 푸른색을 고이 간직한 고사리 등 양치식물이 자리를 트고 있어 계절감각을 잊게 만든다.

곶자왈은 <제주어사전>에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곶자왈은 단순한 수풀이 아니다. 곶자왈을 밖에서 보면 평범한 숲을 닮아 보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크고 작은 용암에 의해 형성된 암석들로 움푹 파이거나 깊고 얕은 골이 나 있고, 굴곡이 심한 함몰지형의 연속이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풍경이다. 이런 곶자왈은 크게 *한경~안덕 곶자왈 *조천~함덕 곶자왈 *애월 곶자왈 *구좌~성산 곶자왈 등 4곳으로 나뉘며, 용암 흐름에 따라 10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곶자왈은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다. 돌밭이라서 목장으로도, 농지로도 쓸 수 없었기에 생명의 숲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살아왔지만 곶자왈을 쉽게 찾기도 힘들뿐더러, 대규모 벌목은 더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점차 곶자왈에 파괴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기계를 동원한 힘이 사람과 자연이 수백 년간 일군 그 땅을 밀어붙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기껏해야 땔감으로 쓴다며 나무를 자른 게 고작이었는데 말이다.


곶자왈은 그 자체가 생명이면서 제주인의 곁에 고이 숨쉬는 생명체다. 금산공원처럼 우리 조상들이 돌밭에 나무를 심어다 만들어둔 곶자왈도 있다. 곶자왈은 대부분 바위로 구성돼 있다. 상식적으로 흙이 있어야 생명이 자라지만 돌밭인 곶자왈에서 많은 생명들이 움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다. 돌 지형이기에 빗물은 밑으로 스며들고, 그 밑에 있던 수분이 올라와 이 곳 곶자왈을 따뜻하게 유지시킨다.

곶자왈의 식생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나무 밑둥이 잘린 그루터기에서 곁가지가 발달한다는 점이다. 1970년대까지 땔감으로 나무를 쓰면서 이들 나무를 벴으며, 이후 맹아림이 자라나 기묘한 형태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함몰지형이라서 외부와는 10도이상의 기온차이를 보이곤 한다. 그래서 따뜻하고 겨울철에도 파릇하기만 하다. 때문에 식생의 다양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2005년엔 곶자왈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인 ‘곶자왈사람들’이 출범하며 곶자왈을 지키는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만일 곶자왈에 간다면 지켜야할 게 있다. 무릇 예의가 있어야 한다. 옛 어른들의 숨소리를 우선 들어보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쓸모없는 땅이 ‘생명의 땅’, ‘생명의 보고(寶庫)’라고 불리는 이유들을 느껴보면 좋다. 더욱 중요한 건 눈으로 봐야지 손으로 마구 할퀴거나 해선 안된다. 코로는 곶자왈의 향기를, 귀로는 곶자왈의 숨소리를 들어야 한다. 곶자왈에서 1분만이라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으면 뭔가 가슴에 와 닿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곶자왈은 현재 파괴를 향해 한창 치닫고 있지만, 곶자왈은 파괴가 아닌 공존의 산물이었다. 곶자왈이 파괴돼야 하는 곳인지, 아니면 생명의 숲이라는 이름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돼야 하는 곳인지를 알려면 직접 눈으로 보면 된다. 이제 자신의 마음속에 곶자왈의 지도를 그려보자. 그리고 한 번 떠나보자. 찬 겨울이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곶자왈의 품으로.

※ 본 연재는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김형훈/ 나무발전소/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김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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