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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11. 2016

미용실 파마 냄새는 왜 지독한가요?

사이언스하우스

          

도심지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지방의 읍 단위 정도의 마을에서나 간간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들이 있다. 과자나 공산품 심지어 비상약까지도 갖춘 OO상회, 유리창 안에 어느 집인지 다 알 만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던 사진관. 비디오 대여점.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이발소'다. 어렸을 적 머리를 자르기 위해 아빠 손을 잡고 이발소의 문을 열면, 어른들의 로션 냄새와 비누 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향기가 온몸을 감싸곤 했다.


큰 거울 앞에 있는 서너 개의 검은 가죽으로 싸여 있던 두터운 의자는 기능을 알 수 없는 손잡이와 버튼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키가 작았던 나는 의자 팔걸이에 걸친 빨래판 같은 나무 판때기 위에 앉아야 했었다. 하얀 가운이 목까지 감싼 내 모습을 반대편 거울을 통해 보고 있으면, 하얀 유니폼을 입은 이발사 아저씨와 키가 비슷해 보여 갑자기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깎은 후 작은 타일이 빼곡히 붙어 있던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면, 머리를 감겨주는 아저씨의 두터운 손이 느껴졌고, 바가지로 머리를 헹굴 때 얼굴로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제는 대형 사우나에서나 이발소의 명맥을 유지할 뿐, 대부분의 남성들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시대가 되었고, 미장원이나 미용실이라는 말조차 헤어숍으로 바뀌고 있다. 이발소와 지금 헤어숍에서 풍기는 내음은 확실히 다르다. 아들의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헤어숍에 들어가자, 이내 아들이 투덜거렸다. 

"아빠, 저는 미용실에서 나는 냄새가 별로예요. 미용실에선 고약한 냄새가 나요."

너도 그렇구나? 사실 아빠도 이 냄새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데 미용실 선생님들은 화학자나 마찬가지란다! 이 고약한 냄새들은 바로 화학약품으로 실험할 때 나는 냄새야. 

"에이~ 무슨 소리예요. 그분들은 헤어디자~이너예요. 과학자가 아니라."

진짠데? 아빠 이야기 들어볼래? '파마' 혹은 '펌'은 퍼머넌트 웨이브(permanent wave)에서 유래된 말이야. 머리를 영구적으로 만든다는 뜻이지. 그런데 이 펌 과정이 화학실험과 꼭 닮았어. 오늘은 파마에 대해 알려줄게. 혹시 우리 집 샴푸 이름이 뭔지 기억해? 

"아, 알아요! 엄마가 늘 같은 제품을 사거든요. '케라시O’죠? 사실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어요."

왠지 머리카락과 관련 있을 것 같지 않니? 머리카락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몸은 단백질로 구성되는데 아미노산(amino acid)은 이 단백질의 기본 구성단위란다. 아미노산이란 말은 아마 들어봤을 거야. 단백질이 가수분해(加水分解) 되면 암모니아와 아미노산으로 분리된단다. 

"가수분해가 뭔가요? 뭔가 분해되는 거 같긴 한데…."

가수분해란 말 그대로 물과 반응하여 분자가 몇 개의 이온이나 작은 분자로 쪼개지는 것을 의미해. 가수분해는 우리 몸에서는 아주 중요한 반응이야. 생명체 내에서 대부분의 분자결합들은 가수분해로 깨지는데, 가장 대표적인 가수분해 반응이 바로 밥을 먹고 에너지를 얻는 것이란다. 밥이나 빵, 고기 같은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먹으면 탄수화물 분자는 가수분해를 거쳐 당으로 쪼개지고, 단백질은 아미노산과 암모니아로 분리돼. 그 후에 장에서 흡수된단다. 고기를 많이 먹었을 때 방귀 냄새가 지독한 건 이때 생기는 암모니아 때문이기도 해.  

머리카락의 주성분은 단백질인데, 단백질은 아미노산 배열에 따라 종류가 무지하게 많아. 머리카락 단백질 이름은 '케라틴(keratin)'이란다. 케라틴은 동물의 여러 조직의 주요 구성을 이루는 단백질이야. 사람의 손발톱, 머리카락, 그리고 동물 뿔의 주성분도 케라틴 단백질이란다. 네가 샴푸 제품명을 기억하는 것을 보니 이 단백질 이름도 잊지 않겠구나.

"거의 모든 동물에 케라틴 단백질이 있군요. 대부분 단단한 부분들이네요.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시스'는 뭐죠? 합쳐야 샴푸 이름이 되잖아요."

케라틴은 단단한 편이지. 그런데 곤충에는 케라틴이 없어. 곤충의 딱딱한 피부 때문에 같은 단백질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곤충은 구조와 구성 성분이 전혀 다른 키틴(chitin)이란 물질이야.

"키틴이요? 이름이 전부 어렵네요. 이것도 단백질 이름인가요?"

갑각소(甲殼素)라고도 부르지. 그래서 새우, 랍스터를 갑각류라고 해. 키틴은 단백질이 아니라 'N-아세틸글루코사민(N-acetylglucosmin)'이 기다란 실처럼 사슬 형태로 결합한 다당류 중합체란다. 거미나 개미 같은 절지동물의 단단한 표피나 연체동물의 껍질, 균류의 세포벽 등을 이루는 성분이지. 일종의 '전분'이야.

"그럼 식물의 껍질은 케라틴? 아니면 키틴?"

식물 세포는 셀룰로스(cellulose)라는 키틴 같은 다당류가 세포벽을 형성해. 하지만 같은 다당류라도 키틴과 성분이 달라. 

"셀룰로스는 배운 것 같아요. 그런데 다당류는 또 뭔데요?"

좀 전에 탄수화물이 가수분해 되면 포도당 같은 당을 만든다고 했지? 포도당이 단당류이고, 이런 단당류가 세 개 이상이 모여서 큰 분자를 이룬 것을 다당류라고 해. 이야기가 조금 다른 데로 빠졌지만, 이렇게 동물과 식물의 구조를 구성하는 물질이 바로 단백질과 당이란다. 

"동물에게 단백질은 정말 중요한 것이군요."

네가 매일 반찬으로 먹는 고기의 주성분도 단백질이고 이 단백질은 여러 가지 아미노산 분자가 합쳐진 것이야. 인체의 조직 중 뼈 다음으로 질기고 강도가 센 조직이 바로 머리카락과 손발톱이야. 이 조직의 케라틴 단백질 덕분이지. 케라틴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중 시스테인(cysteine)(C3H7NO2S)이라고 불리는 아미노산이 있는데, 시스테인은 케라틴의 약 14~18% 정도를 차지해. 샴푸 이름의 ‘시스’는 여기서 따오지 않았을까? 

"오~ 말이 되는데요? 케라틴, 시스테인…."

왜 시스테인은 단백질을 단단하게 할까? 시스테인 분자식을 보렴. 분자식 끝에 ‘S’가 있지? 시스테인에는 황(S)(sulfur) 원소가 –SH 형태로 붙어 있어. 이런 시스테인의 황 원자는 옆에 있는 시스테인과 서로 결합할 수 있는데, 황과 황끼리 결합하여 이황화결합(disulfide bond)을 형성해. 두 개의 –SH 분자가 –S-S- 형태로 결합하지. 그래서 SS결합(SS-bond) 또는 이황화다리(disulfide bridge)라고 해. 이런 이황화결합이 단백질을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질기고 강한 것이란다. 이 -SH 부분을 '티올기(thiol group)'라고 부르는데, 시스테인은 22개의 기본 아미노산 중에서 유일하게 티올기(-SH)를 포함하고 있지. 

"그런데 케라틴, 시스테인이 파마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파마가 이황화결합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지. 파마는 약품으로 시스테인의 이황화결합을 강제로 끊고, 원하는 대로 구불구불한 머리를 만든 후에, 다시 끊어진 이황화결합을 연결시키는 과정으로 진행된단다. 머리카락의 단백질 기본 구조를 끊고, 모양을 만들고, 다시 연결하는 것이지. 

"헐~ 진짜 화학실험 맞네요."

미용실 화학선생님은 먼저 이황화결합(-S-S-)을 끊기 위해 머리카락에 시오글라이콜산암모늄(ammonium thioglycolate)이라는 화학물질을 발라. 이 화학물질에 암모늄이 들어 있어서 냄새가 안 좋은 거야. 게다가 황결합이 끊어지면 수소원자가 붙어서 다시 황과 수소가 결합한 -SH가 되는데, 이 –SH 구조인 ‘티올기’도 냄새가 좋은 편은 아니야. 물질에 황이 들어가면 대부분 향이 좋지 않아.

"그런데 티올기가 뭐예요?"

화학을 공부하다 보면 간혹 티올기처럼 어떤 OO기라고 부르는데, '~기(基)'는 영어로 그룹(group)이야. 예를 들면 아미노산 분자는 아미노기(-NH2)와 카르복실기(-COOH)를 반드시 포함해야 해. 이렇듯 분자의 공통적인 특정 분자구조들은 이 구조 때문에 공통적인 성질을 갖게 돼. 그래서 이런 분자구조 그룹에 이름을 붙였단다. 티올기의 경우는 황과 수소가 결합한 -SH라는 구조를 지칭하는데, 티올기를 가진 분자 대부분은 공통적인 성질을 가졌지.


그러면 티올기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알아볼까? 한동안 휴대용 부탄가스가 불량 청소년에게 환각제로 사용된 적이 있었어. 요즘엔 부탄가스에 일부러 역한 냄새가 나는 물질을 넣어 팔기 때문에 이젠 그런 용도로 이용되지 않아.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질 대부분이 티올기를 가진 물질이야. 지난번에 휴대용 부탄가스가 새어 나와 맡기 힘든 묘한 냄새가 났었지? 썩은 달걀, 시궁창, 양파, 스컹크 방귀 같은 냄새가 모두 이 티올기 때문이야. 그리고 손톱, 머리카락이 탈 때 나는 냄새도 티올기에 포함된 황 때문이지.


티올기는 주로 알코올(ROH)의 산소(O) 대신 황(S)이 들어가서 RSH 화합물을 만들어. 이 RSH 화합물을 티올(thiol)이라 하는 거야. 이 RSH 계열의 화합물이 '수은(mercury)을 잘 잡아(capture)'서 머캅탄(mercaptan)이라 이름 붙였지. 스컹크의 방귀 냄새는 부틸머캅탄 때문이야. 또 도시가스가 누출되면 약간 구린내가 나는데, 이것은 도시가스 자체 냄새가 아니라 누출을 알아채기 위해 메탄과 티올기가 결합된 메테인머캅탄(methanmercaptan)을 넣었기 때문이지.


글 : 칼럼니스트 김병민, 김지희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미용실 파마, 냄새는 왜 지독한가요?]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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