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겐 온 마을이 필요하다

- 2장 가족과 식인

by 북다이제스터




18세기 이전 많은 지역에서 아이는 가족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겨졌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그 지역에만 한정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근대화 이전 유럽에서도 가족 간 애정보다 공동체 유대가 더 중요했고, 부부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 특별한 애정이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가족애보다 공동체 중심의 생활이 강했습니다. 가정 밖 긴밀하고 따뜻한 공동체가 애정의 공간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근대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족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공동체보다 가족 간 사랑이 중요해졌습니다. 이웃 간의 관계가 약해질수록, 가족애가 더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사생활이 강조되면서 가족 관계는 한층 내밀해졌습니다. 가정은 이제 부부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 꽃피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가족 간 사랑은 공동체에 따라 달라져 온 역사입니다. 공동체가 개인에게 충분한 버팀목을 제공하면, 개인은 가족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반대로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면, 가족은 더욱 긴밀해졌습니다. 공동체가 위축되면 가족은 확대됩니다. 따라서 ‘가족애’를 유독 강조하는 미국 같은 곳은 공동체가 건강하거나 안전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런 곳에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은, 가령 영화 <미나리>의 가족 구성원들처럼, 공동체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로움과 고통을 오롯이 감당해야 합니다.


정치경제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95)는 공동체와 가족이 ‘대립’ 관계에 있으며, 개인이 더 자유로워지려면 가족보다 공동체가 먼저 발전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공동체와 가족은 서로 보완하지 않고 대립한다. 가족이 강화되면 공동체 유대는 약해지고, 때로는 해체된다. 반대로 공동체가 형성되면 가족 유대는 약해지고, 구성원은 더 자유로워진다. 구성원이 가족에 흡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애는 공동체 소속감의 최대 적(敵)이다. 공동체가 발전하면 가족을 해체하고 흡수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가족은 더 나은 조건에서 새롭게 조직될 수 있다.”


가족은 과거에도 그랬듯 사회가 변함에 따라 함께 변하게 될 것입니다. 가족은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모성애나 가족애 같은 진리[眞] 여부나 코르셋이나 전족과 같은 아름다움[美]조차 단지 모두가 옳다고 믿는 ‘상호주관적인 실재’라면, 옳고[善] 그름[惡]의 문제는 어떨까요? 이 물음에 가장 적합한 사례는 흔히 악의 극단으로 여겨지는 식인(食人) 문제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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