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화폐
벤담의 공리주의가 가장 잘 구현된 조직은 기업입니다. 기업은 노동을 수량화합니다. 사회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69)가 말한 ‘동일성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노동자 고유의 질적인 가치는 무시되고, 계산 가능하며 대체 가능한 대상으로만 취급됩니다. 기업은 노동자를 획일적인 척도에 맞춰 강제하고 지배하며, 그 결과 노동자는 고유성을 잃은 채, 단순히 맡은 기능만 수행하는 부속품으로 전락합니다.
기업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기업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효용 중심의 인간만 남습니다. 임금은 노동자가 만든 산출물에 따라 주어지지 않습니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의 경쟁으로 결정됩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노동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습니다. 노동이란 노동자가 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본가가 노동력을 상품으로 사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 속에서 노동력 판매자는 비로소 노동자가 됩니다. 노동은 개인 활동이 아니라, 노동력이 거래되는 사회관계 속에서 정의됩니다. 회사에서 노동력은 곧 상품입니다.
그렇지만 노동에는 시장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질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노동자는 임금으로 자신 생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노부모나 가족을 부양하고, 미래 사회 구성원인 자녀를 양육합니다. 하지만 기업이 이윤을 우선시해 노동력을 단지 양적인 직무 가치나 성과로만 계산하면, 노동자의 질적인 삶은 임금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합니다.
능력에 따라 차별 대우하는 자본의 내적인 논리를 당연하게 여기면, 나이나 경력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서열보다 능력급이나 성과급이 선호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에 따라 많은 월급을 받는 이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부당한 일로 여깁니다. ‘근속연수를 채웠다는 이유로 자동으로 정규직이 되는 건 부당하다’는 비난도 같은 맥락입니다. 업적에 따른 차등 대우나 보상, 그로 인한 사회 불평등을 정당하고 당연시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결국 성과와 능력이 오직 개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회 지배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게 됩니다. 사실상 임금노동자의 ‘억울함’은 사회 전체 부를 어떻게 나눌지의 문제라기보다, 자본가의 횡포와 금융 자본의 ‘장난’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흔히 ‘인적자원’(HR: human resource)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원’이라는 단어는 인간을 수량화하고 금전적인 가치로 평가합니다. 이 표현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임금은 항상 낮게 유지되는 게 당연하고 심지어 바람직하다고 믿게 됩니다. 싼 노동은 마치 싼 기름처럼 좋게 여겨집니다. ‘인적자원’이란 표현은 객관적으로 들리지만, 맹목적으로 수용하면 노동자는 결국 노예처럼 취급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적자원관리(HRM: human resource management)나 인적자원개발(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민하지 않은 채 버젓이 쓰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자원으로 간주되는 순간, 기업 요구에 최적화되어 순응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경쟁은 당연해지고, 불평등은 타당하며, 심지어 규범처럼 여겨집니다. 결국 노동자를 ‘인적자원’으로 보는 순간, 동등한 대우는 사라지고 오직 승자와 패자만 남습니다.
사회가 인간을 자원으로 취급하면서, 개인은 마치 회사를 운영하듯 자기 현재가치를 극대화하고 미래가치를 높이려 자신에게 투자합니다. 노동자나 취업 준비생은 자본주의 기준에 맹목적으로 매달린 채,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환상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합니다. 이제 개인은 기업이 투자자를 모집하듯,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 가치를 전략적으로 포장합니다. 사장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조차 기업 경영이나 리더십 책을 탐독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기 착취가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자기 착취가 ‘자기 계발’이란 이름으로 끝없이 자행됩니다. 개인은 자신 노동력으로 생계를 꾸리는 ‘1인 사업가’가 되어, 성공과 실패를 온전히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자기 계발은 의무가 되고, 관련 서적이 쏟아집니다. 자기 계발서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속삭입니다. 자기 계발서는 성공 신화를 창조해 현실과 환상을 매끈하게 이어주며, 기분 좋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새뮤얼 스마일스(1812~1904)의 『자조론(Self-Help)』(1859)은 자기 계발서의 원조입니다. 누구나 근면과 ‘자조’(自助), 곧 자기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천한 노동자도 근면과 인내, 수양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가 각자 힘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낳아, 실패 시 스스로를 탓하게 만듭니다. 감탄스러운 성공 스토리를 반복해서 접할수록, 내 실패는 결국 ‘내가 부족해서’라는 자기 비난으로 귀결됩니다.
작가 라 로슈푸코(1613~80)가 지적했듯, “우리의 미덕은 대개 변장한 악덕”입니다. 자기 계발서는 살인적인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숨긴 채, 오직 노력의 미덕만 강조합니다. 그 결과 실패는 노력 부족이나 스펙 문제로 환원되고, 개인은 자책에 빠집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원래 다 그렇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도 전쟁 같은 삶을 이어갑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what must be, must be)는 체념 속에서, 세상은 바꿀 수 없고 대안도 없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자기 계발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자기 계발이 성공의 이치로 여겨질수록, 실패는 더욱 개인 탓이 됩니다. 실제로 많은 실패는 개인 문제라기보다, 주로 ‘사회적인 힘’ 때문입니다. 더욱이 구조적이고 공적인 문제를 사적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사회는 함께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화폐가 지배하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