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라는 게 없는 삶

내가 언제 쉬었더라.

by 김케빈

블로그 서점을 시작한 이후 쉬는 것과, 일하는 것 노는 것의 경계가 거의 없어져 버렸다.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어느 정도 일하면 좋을지,


그런게 정해지질 않았으니 일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다 쏟아붙고


정작 나 자신은 아침에 한두시간 운동갈 시간조차 없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부담감을 게임으로 풀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서는 게임만 한다고 하고, 운동 좀 가라고 하고.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한달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사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어떻게든 빨리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작품을 빠르게 써서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이루려면 이룰수록 마음의 벽이 높아져만 갔다.


맞춰줘야 하는 사람은 많아졌다.


내가 힘들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면서 일하다가


지쳐서 슬럼프에 빠져 있으면


일단 가족부터가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무게감이 어떤지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집에서는 일하지 않고, 집에서까지 내 일을 가지고 오면서 하기는 싫어서 밖에서 돈을 써가면서


일을 했었다.


하루의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가는것 조차 나에게는 겁이 나는 일이 되었다.


가족에게 뭘 해달라고 말하는 것 조차 겁이 나는 일이 되었다.


작은 돈이 드는 것도 그랬고, 정서적인 거라면 바랄 수가 없었다.


정서적으로는 내가 충돌을 하지 않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슬럼프에 빠진다는 건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아서,


아니, 가족부터가 내가 무슨 말을 하던 이해라는 걸 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대충 아무데나 일을 하면서 딴짓이나 하는 걸로 비춰지는 걸로 보였다.


다 싫었다 다 때려치고 싶었다.


식단을 조절해서 다이어트를 해서 10키로 이상을 감량했지만,


약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네 노력으로 한 게 아니라면서


미친듯이 운동을 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게임을 하고 있냐는


속편한 짜증섞인 잔소리가 돌아왔다.


그냥 오해하게 두고 싶었다.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쳐 있었으니까.


책을 쓰기 위해 식단을 조절했다.


배가 너무 부르면 책이 쓰여지지 않아서 결핍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배고픈 상태에서, 극한상황에 나를 몰아놓고 책을 썼다.


소설을 쓸 때 특히 그랬다.


내 몸과 머리를 가볍게 하려고 마음을 절박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변의 상황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힘든 상황이 올수록 나는 쉬기는 커녕 나를 더욱 가혹하게 몰아붙였고,

일에 지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치고

'갖추어야 할 것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일종의 체면치레나 위신을 위해


갖추어야 할 것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나를 배려하는 것에서 멀어지고


고통스러워도 이것만 하면 될거야,

이것만 하면 될거야.


이것만 넘어가면 쉴 수 있어. 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되뇌었다.


게임을 하면서도 그냥 즐기는 게 아니라 남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일이 늘었고


그러다가 지치기 일쑤였었다.


회사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는 저들과는 같은 곳에 있을 수 없는'

그런 특볋한 사람이 당장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끊임없이 일 속으로 몰아갔다.


벌리는 일은 늘어갔지만,

완료를 하는 일은 없었고


매주 한권이라도 냈던 책은


강의를 한 이후로 오히려 쓰는 게 줄기 시작했었다.


남들에게 책을 팔기 위해 무언가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애써 맞추고 고개를 숙일 때마다


무언가 자꾸 시선이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그렇게 가기 시작했었다.


그냥 지금을 살면 됬었는데

시선이 자꾸 남에게 비춰지는 나를 잘 가꾸는 쪽으로


있어보이는 나를 또 만들기 위해

힘을 주고 위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만두고 싶지만, 그게 습관처럼 이어졌다.


마치 사업가들이 역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꾸 포장을 하고 포장을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정신과 약을 달고 다니는 것처럼

나도 그런 지경에 이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싫었었다.

쉬질 못하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 없는 시간 와중에 약속을 잡아야하고

고정적으로 잡아야 하는 시간들은 그냥 고통 자체였었다.


이것도 가야 하고, 저것도 가야하고, 그러는 게 짜증이 났었다.


왜 나만 이런 힘듦을 겪어야 해? 하면서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는 쓰더라도


현실세계에서서는 그냥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일을 하기에 바쁘고


가장 힘든 걸 이야기하고 싶은 가족은

내가 한달 가까이 슬럼프에 빠져있는지 어쩐지는


말을 하지 않아서 모르고


내가 뭐 비춰지기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라서

설령 사업을 해서 매출이 나도, 책이 팔리더라도


그 액수가 월급만큼 크지가 않으니까 공개도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책을 쓰고 집필 활동에 몰두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쉴 시간도 없었으며


한 달에 생활비로 나가는 유지비는 늘어만 갔다.

게다가 월급의 1/3을 집에다가 주고 있는 상태였었다.


취업을 위해서 열심히 자격증을 공부하면 열심히 뭔가라도 한다고 여겼지만

창업을 하고 나서 매출을 내고 있는데 그게 취업을 해서 월급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면


뭐 인간 취급도 못 받는 것 같았다. 아니, 명함을 내밀 수가 없었다.


원망도 들었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뭘 하고다니는지 알지만 가족은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를 몰랐다.

내가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족은 가족이니까 믿고 털어놓으라고 했지만

도저히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돈을 받아가면서라도 집에 같이 살게는 해줄지언정

전혀 믿고 기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꾸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최악의 상황만 펼쳐질 뿐이었었다.


연애 역시 하고 싶지만, 일이 많아서 혹시 연애를 하면서

내 성향이 변하거나 설득을 당해서 지금의 사업을 하는 걸 포기하고


고분고분한 회사원으로 살면서 사업 같은 힘든 거

뭐하러 하냐는 그런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당장 아빠만 하더라도, 회사의 임원으로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입장이었지만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기에 힘이 빠졌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같이 지내는 사람일수록 믿기 힘들어졌다.

태클을 걸테니까.


그래서 적당히 먼 사람과, 혹은 여행지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게 훨씬 편한일이 되었다

한 번 보고 말거나, 그런 사람이었지, 내 삶에 파고들어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게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엇다.


거기에서 빠져나가고 싶어서 조직생활 자체를 탈출하고 싶어서 1인 창업을 시작했고, 거기에 매달리게 되었다.


'조직생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네 뜻대로 되는 게 어디있냐.'


너무 듣기 싫은 말이었었다.


내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때가 되면 이루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런 부정적인 말로 비아낭거리는 시선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게임에만 미쳐있다고 소리를 지르는 부모가 싫었을 뿐이다.

내가 무엇에 지쳐있는지 알리고 싶지만, 적어도 그걸 알리고 싶은 대상에


내 부모는 포함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포함을 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워서


돈을 벌면서 남들보다 적은 쉬는 날을 쪼개서 이것저것 하는 데 써 버린 것이었다.


그만두고 싶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포장하는거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뭘 하고 있고 무슨 결과를 냈으며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악을 써서라도

귀를 막으면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내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은 기분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다고 확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그저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만나면서 친해져야 한다고 하는 말에 귀를 틀어막으면서


차마 남 앞에서 못한 말들을 이렇게 글로 써 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위안이라도 삼고


말로는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알려지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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