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내가 얼마나 일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차마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아는 데에는 Meistertask 라는 도구로 중요도를 나누고,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서른 가지가 넘었다.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살아있어야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답답한 이야기를 털어 ㅁ놓을 때는 없고
가족에게는 차마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털어놓고 나서는 그렇게 책을 써서 돈을 벌어놓는 걸 가족이 아니면
누구에게 자랑을 하냐는 말을 들었지만,
떵떵거리면서 자랑할, 수익이 회사 월급과 같은 수준이어서 회사 없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고
애써 변명을 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잘못한 건 있지만 가족에게 내가 밖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말해봐야 공감이나 그런 거 하나도 못할까봐 말 못하겠습니다.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활력 없는 사람으로 찍혀서 걱정덩어리, 잔소리의 대상이 되고, 학교에서는 부적응자 취급을 받은 기억이 너무 많아서, 믿을 수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에 오히려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없습니다. ’
라고 생각하면서 꾹꾹 숨기면서, 명상을 하면서 알게 된, 친해진 친구에게는 또 열심히 털어놓았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는 울면서 가족에게 내가 이런 걸 하고 있다는 걸 밝혔다.
그러면서 집안에서는 운동가라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밖에서는 내 자랑을 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도 되었다.
소문나고,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게 싫었다.
정작 그 대상이 되면 유연하게 대처를 잘 하거나, 뻔뻔하게 잘만 나가면서 말이다.
운동을 가지 않으면 몸이 망가질 거라는 건 스스로 알고 있었다.
작가는 체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몸도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운동에 대해서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자랑하는 사람들과, 친척들 중에서 살을 쫙 빼고서 멋있어진 사람들을 나열하면서
저렇게 살 빼면 얼마나 좋니?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비교가 혐오스러웠다.
살을 빼면 자신감이 생긴다.
모르는 건 아니다.
분명 자신감이 생겼다.
살을 빼면 편하겠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을 받지 못하고,
위로를 받지 못한 채 사업을 지속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공감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남에게 보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게 행복 아니겠니, 하고 말하는 건 혐오스러움이었다.
저렇게 살 빼면 좋니, 하는 건 딱 본질만 집어내면 저거였는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거였다.
포기가 잘 안되지만 가장 토가 나오는 것중 하나였다.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싶었다.
만만한 건 사절이었다.
착한 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철저하게 독설을 퍼붓는 독설가라서
함부로 내게 오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냥 나로 살고 싶었지, 남이 붙여주는 꼬리표에 따라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