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려고 쓰는 판타지에 왠...?
그러니까 생각이 나는 게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주인공들은 한 세계에서
충분히 잘 나가는 사람들이 되었는데
왜 일중독자, 일에 치인 사람들이 된 걸까.
왜 재미없는 일이 되어버린걸까.
나는 왜 기쁘지가 않는 걸까.
모두 다 왜 식상하게 여기게 된 걸까.
이건 소설이 진도가 나가고 안 나고와는 다른
보다 본질적으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맞느냐에 대한 문제다.
아, '돈'!
돈에 허덕이게 하는 게 족쇄가 됬잖아!
그 족쇄를 풀려면 주인공한테 아예 돈 걱정을 안 할만큼
돈을 주던가, 돈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게 만들었으면!
그렇게 스토리를 가로막는 방향의 돈의 족쇄는
날려버렸다면!
뭐지. 내가 왜 돈에 쪼들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지.
아직도 왜 돈에 허덕이면서 사는
그런 모습이 된 걸까.
아, 맞다. 알겠다.
돈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요소를
나는 굉장히 안 좋은 방향으로
마치...회사원처럼 일하는 방향으로
넣어버렸구나.
그러니까, 판타지에서조차
돈이 없어서 우리 둘이 수익이 합쳐서
결혼할 수 있을 정도가 될까, 하는 고민을
남주나 여주들이 하고 있었지
전에는 그런 것들이 있지도 않았으니까!
맞다. 내가 판타지를 재미있게 쓰던 시절에는
주인공들은 돈 가지고 걱정하는 일은
일절 없었는데,
영지를 키우는 영지물을 쓰면서
빚 갚고 영지 키워나가는 영지물 판타지 쓰는 것도 아닌데
어줍잖게 현실성을 집어넣었다.
문득 어떤 단어가 떠오른다.
그 이름은, PC주의.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내가 걸려 있었던 함정은,
언제나
'상식적 올바름' 과
'현실적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상식적 올바름이란
'현실세계에서 상식적으로 바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생각.
현실적 올바름이란
'모든것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돈과 같은 것들은
결코 쉽게 얻어져서는 안된다 라던가,
결혼은 어떤 상황에서도 재앙이라던가.
남주와 여주는 현실의 커플들처럼 절대 다수의 시간을
질투하고 싸우면서 의심하면서 보내야 한다던가."
현실의 어두운 부분을 작품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등, '현시창'을 법처럼 떠받드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날리 없는 비현실적인 일'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생각.
아무튼 그런 거다. 이게 진짜 문제다.
위에꺼보다 더 문제다.
위에꺼는 사고의 식상함과 관련이 되어 있는 수준에 그치지만
아래꺼는 인간마음의 부정적인 사고의 총집합으로,
창의성을 말살하는 최고의 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