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편식 나쁜걸까?
프롤로그 : https://brunch.co.kr/@bookdream/33
어느 날, 지하철을 이동하려고 가는 김에 책을 한 권 읽으면서 플랫폼으로 들어서다가 아는 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 : "어? 안녕하세요!"
아는 분 : " 어? 이 동네 사세요?"
나 : "아! 몰랐네요.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지하철에서는 -"
아는 분 : "책을 많이 읽나 봐요. 한 달에 몇 권 정도 읽어요?"
나 : "저는 보통 10-15권 정도 읽는 것 같아요."
아는 분 : "우리 아이도 그렇게 책 읽으면 좋을 텐데 - 우리 아이는 소설만 그렇게 읽어요"
라고 시작된 대화를 쭉 들어보니, 아이는 '소설' 그중에서도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일본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코', 외국작가로 '댄 브라운'과 셜록홈즈 시리즈를 좋아한다고- 아이가 소설만 읽는 다고 걱정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와 책 취미가 비슷한 동지를 만나 기뻤고, 그리곤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책 편식", 나도 한 때는 그랬지만 점차 넓어져왔듯 - 아직 나는 그 아이가 입맛에 맞는 책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저는 이 분야 책만, 저는 이런 책만 좋아해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 다양하게 읽는 게 좋다고만 들어서인지 - 사람들은 책 편식하는 스스로를 왠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말을 들으면 "저는 만화책만 좋아했던 적도 있었는데요?"라고 이야기를 드리곤 한다. 지금 책 편식하는 건 충분히 괜찮다고! 아직 만나지 못하신 것뿐이라고 -
어릴 때는 집에 있는 책들은 나에게 장난감이었다. 집을 짓고, 건물을 만들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울타리 같은 존재였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일종의 교육만화 같은 거였다. 그림이 좋아서 글보다는 그림을 따라 그리고 또 다른 책을 찾아서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곤 했다. 동화나 큰 책 보다 그림이 많은 책을 좋아했다. 키도 작은 꼬마가 집에 없는 교육만화책을 빌리겠다는 의지로 1시간씩 왕복을 했다. 도서대출증을 2번째 다 채울 때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인 나는 여전히 그림을 쫓아다녔다. 학교에서 수업으로 책 읽는 시간외에는 만화책에 한창 빠져있던 시간이다. <명탐정 코난>, <도라에몽>, <소년탐정 김전일>, <따끈따끈 베이커리>, <탐정학원 Q>, <슬램덩크>, <드래곤볼>, <접지전사> 등 있는 용돈, 없는 용돈을 전부 만화책에 쏟아부었다고 느낄 만큼 많이 읽었다. 매일 10권도 넘게 빌려오면서 행복감에 가득 차 있던 것 같다. 만화책을 읽는 순간이면 하루를 다 가진 듯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엔 만화가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많이 읽었다. 나의 어린 시절 독서는 완전히 '편식' 그 자체였다. 하도 만화책을 읽어서 어머니가 혼낼 만큼, 어린 나는 "왜지? 이렇게 재밌는데?"라며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렇게 혼이 나자 나는 만화책방에서 읽고 오기 시작했다. 놀다 오겠다고 말하곤 만화책방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리곤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교 일정에 치이고 스트레스를 받던 시간들 사이, 나에게 학교도서관은 쉬는 공간이었다. 많은 책을 읽던 것도 아니고, 당시에 읽은 책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조금 읽었다. 그렇게 3년간 독서와 거리가 있었다. 영락없는 책 편식쟁이였다. 좋아하는 것만 - 주야장천 좋아하는 나는 편식이 심했다.
수능이 끝나고 남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하자, 다시금 이런저런 취미들을 시도하던 중 "책"을 다시 만났다. 한창 애니메이션 및 영화에 푹 빠져있다가, 한동안은 게임을 하다가 그렇게 하나하나 취미들을 하다가 다시 만난 책은 왠지 생소하기도 했고 - 재미있을까 하며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당시 내가 좋아하는 책은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이야기 형식의 자기계발서였다. <청소부 밥>, <마시멜로 이야기 2> 등 눈에 띄는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다시 읽게 되었다. 중학교 때 처음 보고 마음이 많이 갔던 책이었는데, 다시 만나니 새로웠다. 총 8번을 읽었다. 그리고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만날 때마다 읽어나갔던 것 같다. 또 다른 책 편식이 시작되었다. 하나 만화책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간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많았던 나에게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내 이야기만 같았고 그렇게 책의 맛을 알자 - 이제는 만화 책보다 이 책들이 더 재미있다고 느꼈다. 마치 매일 풀 반찬만 먹다가 어느 날, 고기반찬을 먹게 된 것처럼! 새로운 맛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내가 가지고 있던 책 편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다른 책도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을 안다는 것은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경험이 긍정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맛있는 음식점을 찾으면 생각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이건 맛없더라고, 안 먹게 돼 혹은 못 먹는 음식이야(알레르기 말고)"라고 말하면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맛있는 것을 먹어보지 못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고". 그처럼 책 편식도 그렇다 느낀다. 자신에게 알맞은 그 분야의 책을 아직 먹어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편식하는 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편식은 아직 만나지 못한 순간이라고 여긴다. 내가 커피를 편식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편식은 단지 아직 모르는 단계일 뿐이다.
22살의 나는 커.알.못이였다. 카페에서 나는 커피향도 좋아하지 않을 정도로 커피를 싫어했다. 쓰다고 생각했고,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카페를 가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굳이 가야해서 갔던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포도쥬스를 시켜먹었다. (물론 스타벅스에는 오렌지쥬스도 있다!!+_+) 그렇게 하루하루 커피를 모르는 시간들동안 나는 커피를 편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편의점 '스위트 아메리카노'사주면서 이건 "안써, 진짜 나 믿고 먹어봐!" 라고 하면서 아메리카노를 만났다. 생각해보면 그 날은 내가 생각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던 순간이였다. 스위트 아메리카노를 시작으로 커피와 친해졌고 - 이제는 원두를 골라먹고,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을 찾아다니는 1인이 되었다. 책도 비슷했다. 좋아하던 것을 쭉- 좋아하다가 조금씩 다른 부분도 좋아졌고, 그러다보니 다른 것들까지 좋아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향이 생겨났고 - 그 취향도 나를 말할 수 있는 하나가 되었다. 지금 나는 책에서는 편식하는 부분이 없다. 내 취향인 책과 내 취향이 아닌 책은 나뉘어지지만, 다른 책들도 쉽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간과하면 안되는 책 편식이 있다. 좋아하는 것만 골라 먹고 싫어하는 것은 먹지 않는 편식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편식에도 문제 있는 편식이 있고, 문제없는 편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채소를 아예 먹지 않거나 고기를 먹지 않는 등 먹지 않는 음식이 많은 편식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왜냐면 이 때문에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하나 다 잘 먹는 데 오이만 싫거나, 콩은 싫지만 두부는 좋아하는 것처럼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는 편식은 나쁜 편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책 편식에도 물론 나쁜 편식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계발서는 쓸데없는 책이고, 인문고 전만 치켜세운다던지, 독립출판물은 순전히 본인 이야기만 써서 매력 없다고 평가한다던지 - 자신이 읽는 책만 좋은 책이고 타인이 읽는 책에 대해서 폄하한다면 이는 나쁜 편식이다. 이는 골고루 볼 수 있는 통합적인 시선을 갖는 데는 어려움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책도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싫어하는 분야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열린 마음으로 한쪽을 탐닉하듯 깊이 좋은 편식해보는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도 책을 만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좋은 책 편식이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더 깊이 있게 만들길 바라봅니다.
책 먹는 코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