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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e Jun 24. 2020

오르막을 못 가는 자동차

가난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글은 브런치 작가로 임명받고 나서 쓰는 첫 번째 글이다. 이전에 올라간 글들은 브런치 작가 심사를 위해 저장만 해 두었던 글들을 발행한 것이다. 네 가지 글들의 주제는 결혼, 가면, 가난, 소비였는데 그중 마이웨이 소비를 폭로한 글에 가장 많은 라이킷이 달렸다. (https://brunch.co.kr/@booke/3) 아, 우리 독자님들 이런 글 좋아하시는구나! 그렇다면 나에게 안성맞춤으로 유리하다.


이전 글, '제 소비를 소개합니다.'에서 물질과 소유에 연연하지 않는 나의 소비 습관을 소개했다. 1000원짜리 겨울 코트를 사고 7년째 한 샌들을 신는. 여러분은 특히 상표 없는 물건에도 만족감을 느끼는 내가 신기했을 것이다. 나라고 처음부터 상표에 연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 상표가 대문짝만 하게 그려져 어디서 샀는지 묻지 않아도 알만한 운동화를 신는 친구들이 내 운동화의 출처를 물어봤을 때. 신발가게 이름을 선명히 떠올리면서 '엄마가 사다 줘서 몰라'하고 얼버무렸을 때. 한 소녀의 개성 넘치던 세계가 무참히 철거당하는 기분을 잠시 상상해보기 바란다. (일동, 묵념.)


나도 친구들로부터 튀지 않기 위해 상표에 연연했고 다만 집 형편이 연연하는 마음을 끝내 지탱하지 못한 것뿐이다. 어쩔 수 없이 상표 없는 신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나름 나쁘지 않았고, 상표가 품질을 100% 보장하지는 않음을 배웠으며, 이제는 물질에 기대지 않는 내 소비에 익숙해지고 애정이 생긴 것이리라. 그러나 물질과 소유에서 꽤나 자유로워졌다고 자부하는 나 역시도 가끔 속상할 때가 있다. 특히 이 물건 앞에서는 마음이 저릿하다. 오늘의 글은 나 조차도 여태껏 속상하게 만드는 우리 집 한 물건에 대한 고백이다. 유쾌하게 써보도록 노력하겠다.





(이미지 출처-eHOW)


우리 집 자동차는 오르막을 오르지 못한다. 아예 오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올라갈 거면 못 오른다고 하는 게 맞다. 내가 올해 29살이고, 5살 때 자동차와 첫인사를 했으니, 자동차는 5살 적은 24년 산이다. 그렇다, 한 자동차를 24년 탔다!!!!! 오르막을 오르지 못할 뿐일까. '나 혼자*다'에서 레트로 취향을 담당하는 이*언님이 아직도 이런 게 있냐며 감탄한 회전식 손잡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추억이 되어야 하는 그 손잡이. 나에게 유년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몽글몽글한 동심의 세계로 인도해야만 하는 그 손잡이가 아직도 우리 차에 매달려 있다!!!!! 누군가는 '레트로'로 부르는 것이 나에게는 '아직도' 현실이다. 레트로, 그것이 속상할 때가 있다. 레트로를 '즐긴다'는 건 누군가에겐 사치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전 국민 필수템이 된 내비게이션도, 블랙박스도, 핸드폰 연동 기능도 우리 차엔 없다.


엄마에게 이제 그만 차 좀 바꾸자고 말한 지 5년은 족히 된 것 같다. 그때마다 엄마는 정기 검사도 통과했고 주행거리로만 보면 거의 새 차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친다. 그러니까 우리 차는 몇 번 켜보지 않은 삐삐와 같다고나 할까. 몇 번 켜보지 않았으면 무얼 하나, 폴더블 폰이 나오는 시대에 삐삐인 것을!! 사실 주행거리 논리도 크게 믿을 만한 것은 못된다. 어렸을 적 차 안에서의 기억들이 꽤나 떠오르는 것 보면, 주행거리도 어느 정도 묵직할 것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나는 우리 차를 기피하게 됐다. 엄마가 차로 데리러 오는 것도 기쁘지 않고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80%는 창피해 서고, 20%는 무서워서다. 혹시 피치 못하게 엄마 차를 타야만 하는 사정이 생기는 날엔 일부러 직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기다리시라고 한다. 차에 탈 때는 최대한 뒷모습을 유지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요원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아무도 나인지 모르게. 그래 봤자 선팅이 안되어있어 창문으로 훤히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온몸으로 창피하다고 외치는 딸래미 때문에 속이 상해버린 엄마도 훤히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무조건 엄마를 탓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엄마가 희생해서 때때로 내가 나이키 신발을 신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나이키 신발을 신느라 미처 차를 바꾸지 못했다고 치자. 30대를 바라보는 이 나이쯤 되면 차를 바꾸는 주체가 꼭 부모는 아니더라. 장성한 자식들이 그동안 고생하신 부모님을 위해 차를 바꿔드리는 장면은 흔하진 않아도 꽤 일반적이다. 그러니까 24년 동안 차를 바꾸지 못한 데에는 내 지분도 껴 있는 것이다. 나 때문에 못 바꾸는 걸로.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하다.


신기하게도 엄마와 동생은 차에 대해 별 유감이 없어 보인다. 동생은 요즘엔 흔치 않은 수동 기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남성적 매력에 끌려 빨리 엄마 차를 물려받고 싶다고 했다. (아, 이게 돌려 말하기 권법인가? 똑똑한 자식.) 엄마도 차에게 그동안 큰 사고 없이 실어 날라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나만 창피했던 건가? 나만 예민하게 굴었나? 하고 정을 붙여볼래도, 여태껏 이런 걸 보면 정 붙이기는 완전히 실패다.


이 글은 유쾌 통쾌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상처를 들추는 이야기에서 묻어 나오는 텁텁함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생활에 짓이겨져 여차저차 소비와 물질에 초월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나 역시도 차 앞에서는 내 멋대로 당당할 수가 없다. 24년 된 차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차가 고맙고 예뻐! 하고 마무리되면 깔끔하겠다만, 나는 브런치에서만큼은 가면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나는 끝끝내 차와 화해하지 못했다. 화해하기를 실패했다.





" 중요한 것은 고난에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


온 가족이 오랜 세월 아등바등 가난 퇴치 의식을 치러왔음에도 불구하고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걸 보면, 가난은 나에게 정복될 정도로 손쉬운 상대가 아니다. 벗고 싶다고 벗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가난 퇴치 의식은 계속되겠지만 갑자기 핑크빛 미래가 예고되진 않을 것이다. 열심히 사는데 왜 나아지지 않냐고 우울에 빠지는 날들도 있었다. 이제는 가난하고 서글픈 여주인공 말고, 가난해도 갈 길 가는 여주인공 하고 싶다.


오랜 시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은, 이제는 가족이 되어버린 것 같은 가난을 용인하려고(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가난이 분명히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가난은 끝까지 삶의 애환을 되뇌이게 한다. 그러니 가난을 포장할 생각도, 가난에 굴복할 생각도 없다. 다만 가난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우리 차는 끝끝내 30살 생일을 맞을 것이다. 은퇴하고 싶어도 은퇴하지 못하는 차를 보니 그래, 너도 고생이 많다. 내 미움까지 받느라 참 고생이 많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편이 아니었을까. 마치 한 편인 것 같은 동질감을 약간 느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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