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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Oct 27. 2020

쇼코의 미소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시선



편하게 술술 읽혀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추천하는
잔잔한 단편 소설집.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그들의 삶과 인생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성공하지 못한 어른, 베트남 전쟁과 한국 역사의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시한부 인생, 알 수 없는 인간관계, 남겨진 사람들.

시대가 만든, 혹은 어쩌다 상처 받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담백하게 풀어나간 이야기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처음부터 절절하진 않지만 가랑비에 옷깆이 젖듯 서서히 느껴지는 슬픔과 쓸쓸함이 여운을 더 길게 남기는 느낌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세상을 잘살아서 아직 저런 슬픔이 없는 걸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여자라서, 단지 그때 거기 있었기 때문에 아파야 하는 사람들이어서 더 먹먹했던 것 같다.









1. 쇼코의 미소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온 쇼코. 주인공 소유의 할아버지와도 친해져 일본에 돌아가서도 그와 펜팔을 한다. 하지만 주인공과 할아버지 모두와 연락이 끈기고..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소유는 캐나다로 유학을 간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무작정 쇼코의 집에 찾아가지만, 대학생활을 하는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우울해진 모습으로 살고 있는 쇼코에게 실망해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온다. 도쿄에서 일하고 싶다던 쇼코는 쇼코 할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며 고향에 계속 남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소유도 커리어가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도 건강이 안 좋아져 2년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다. 시간이 흘러 쇼코에게 연락이 오고 할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를 받는다. 쇼코와 함께 할아버지의 납골당에 간다.

어린 시절 풋풋했던 두 소녀, 이렇듯 시간이 흐른다는 건 뭘까.



2. 씬짜오, 씬짜오

어릴 적 독일에서 만난 베트남 가족. 친절한 응웬 아주머니, 친구 투이. 놀러 간 베트남 가족의 집 한편 서재에서 한 가족의 제단을 보고 묘한 기분을 느낀다.

어느 날 같이 식사를 하다 전쟁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어요.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지만, 응웬 아주머니는 어릴 적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인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붉어진 식사시간 이후 두 가족은 뜸해졌다.

33살이 되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다시 독일을 방문하여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응웬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줌마에게 모든 사정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머니의 안부를 묻는 말에는 거짓으로 답할  없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바라본다.




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어릴 적 만나 친했던, 엄마의 먼 친척인 순애 언니. 어려서 친하게 지내던 순애 언니는 시간이 흘러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애 언니 집에 난리가 난다. 전쟁을 간신히 넘기고 어지러운 남북 상황, 순애 언니 남편이 북한과 내통했다며 잡혀갔고 간신히 사형은 면했다. 같이 잡혀간 다른 이들은 죄 없이 순식간에 나라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 후로 순애 언니의 삶은 바닥을 친다. 그 아픔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 배려와 태도가 점점 순애 언니와 엄마를 멀어지게 했다. 그 둘이 의도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다.

많은 시간이 흘러 나이 든 엄마의 병실로 순애 언니가 찾아와 빛처럼 사라진다. 꿈이었지만 꿈이 아닌 것 같다. 순애 언니의 유품을 전달하러 온 순애 언니의 딸이 찾아왔다.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유품인 지갑 속 두 소녀의 사진을 보며 속삭인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4. 한지와 영주

프랑스 수도원에서 만난 나이로비 남자 한지와 한국 여자 영주. 그 둘은 수도원에서 급격히 친해지지만 이내 영문을 알 수 없이 멀어진다. 한지가 떠나기 전날 영주의 일기장을 전달하려 하지만 한지는 거절하고 고향으로 떠난다. 영주는 일기장을 파낸 얼음 안에 넣어 물속으로 떠나보낸다. 이 둘은 왜 멀어졌을까. 각자의 세상에서 없었던 일인 듯 살아가겠지. 가끔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멀어지고 사라지는 관계들.




5. 먼 곳에서 온 노래

소설 공부를 위해 러시아로 유학을 간 미진 선배. 그녀는 학생 운동의 막바지인 시대, 꼰대 문화에 젖어있는 선배들에게 당당하게 맞서던 멋진 선배였다. 그의 흔적을 따라 도착한 러시아. 폴란드 친구 율랴와 이야기를 나누며 옛 대학시절 추억에 젖는다. 당차서 적이 많았던, 꽤 노래를 잘하는 미진 선배는 32살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고통 없이 죽었을 거란 의사의 말이 위로로 느껴질 만큼 그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죽은 자와 함께 한 시간을 추억하며 생기는 미련과 아련함이 느껴진다.




6. 미카엘라

가난했던 집, 어릴 적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생활전선에 뛰어난 엄마는 억척스러움이

몸이 베었다. 천주교인 엄마는 미사 행사를 위해 서울로 올라와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딸 미카엘라를 찾았다.

딸을 만났지만 엄마는 반찬만 전달한 채 집으로 내려가는 척 모텔로 향한다. 딸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을까. 하루 7만 원인 모텔비가 아까워 찜질방으로 향하는 엄마. 그곳에서 한 할머니를 만난다. 그 할머니는 성당에서 친해진 자매 할머니의 손녀가 세월호로 사망했고, 광화문 집회를 떠난 자매 할머니를 찾으러 서울에 왔다고 말했다.

한편 딸은 사라진 엄마를 찾다 우연히 뉴스 배경으로 등장한 엄마를 발견한다. 광화문이다. 그렇게 엄마를 찾아 광화문으로 갔다. 그리고 알게 된다. 세월호로 죽은 그 할머니의 손녀 이름도 미카엘라라는 것을. 그렇게 말해 준다. 그 누구도 아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7. 비밀

의사 말대로라면 칠 년 전에는 죽었어야 할 목숨이었다. 암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말자,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손녀 지민이 있다. 남편은 딸 영숙이가 5살일 때 죽었다. 영숙이는 고생을 해서 손녀만큼은 철없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영숙이는 서른둘에 자궁적출 수술을 했는데, 시댁이 그런 딸에게 혹독한 말을 하는 걸 듣고 분노로 온몸이 타는 것 같았다. 지민은 중국 시골 마을에서 선생님을 한다며 떠났다. 손녀가 그리운 말자. 말자의 암세포는 다른 쪽으로 전이되어 버렸다.

세월이 흘러 변해버린 몸. 늙어가는 딸. 그리운 손녀에게 편지를 쓴다.










주관적 책갈피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씬짜오, 씬짜오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도 더 이상 그 관계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한지와 영주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미카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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