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일상. 초능력. 슬픔. 그리고 다시 일상.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인생 곳곳에 묻어있지만
그럼에도 잔잔하게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
이번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여자 ‘사쿠미’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어머니와 초딩 남동생 '요시오', 어머니의 소꿉친구 '준코 아줌마'와 사촌동생 '미키코'이렇게 다섯 식구가 한 집에 살고 있다. 초등학생 남동생은 아버지가 다른 이복동생이다. 남동생 위로 배우였던 친 여동생 마유는 약물 과다복용 후 운전을 하다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 현재는 여동생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연애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에게서 기이한 능력이 발현된다. 꿈에서 미래를 보거나 영의 기운을 느끼는 것. 그 기운을 따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주인공 사쿠미와도 친구가 된다.
고등학교 동창인 에이코의 추천으로 사이판 여행을 갔다. 사이판에 별장이 있으니 무료로 쉬다 오라고 했던 것 같다. 지내다 보니 너무 좋아 애인과 남동생도 사이판으로 초대해 짧지만 긴 여행을 함께 한다. 거기서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낸 한 부부도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겪은 기이한 사연도 듣게 된다.
...
시간이 지나 남동생은 중학생이 된다. 몸이 자라는 만큼 초능력적인 요소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죽은 여동생의 애인이었던 현 남자 친구는 프랑스에서 바람을 피웠다. 하지만 여전히 사귀고 있다. 생활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간다.
이 책은 ‘멜랑꼴리아, 암리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3개의 챕터로 되어있다. 하지만 단편이 아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이며 중간에 있는 2번째 암리타 편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소설에 나오는 굵직한 사건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여동생의 죽음
머리를 다쳐 수술 후 기억을 일부 잃음
동생이 오컬트 꼬맹이가 됨
불륜인 동창 친구가 내연남 와이프에게 칼로 맞았지만 살아남
함께 사는 엄마 친구 준코 아줌마는 남편의 친구와 사랑에 빠져 이혼함
죽은 여동생의 남자와 연애를 함
사이판으로 여행
아르바이트하던 바가 갑자기 문 닫음. 주인이 이민을 가버림
프랑스인이 주인인 빵집에서 새 아르바이트를 시작함
기억이 하나씩 돌아옴
남동생이 장애아동들이 있는 아동원에 가기를 희망하여 입학함
준코 아줌마가 800엔을 훔쳐 도망감
남동생이 우연히 만난 초능력자 커플과 친구가 됨
마지막에 주인공 ‘사쿠미’도 자신이 겪은 일들을 나열하며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신기해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며 마무리 된다.
잔잔하지만 격렬한 사건들을 보며 모든 인간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나 평범하게 살지만 그 평범한 삶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쇼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벌어지고 나면 또 일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순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역자 후기를 보면 바나나는 비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생각을 암리타라는 소설로 풀어낸 것 같다. 번역가 김난주는 암리타를 통해 ‘신비주의자’인 바나나 자신을 구현했고, 그녀가 가장 목말라한 테마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물론 지금도 아는 사람이 죽을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탄식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반면.
그래도 지금까지 거기에 존재했다는 기적에 비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하고 생각한다.
인간은 매일 밥 먹고, 똥 싸고 오줌 누고, 털이 자라고, 사실은 절대로 멈출 수 없고, 지금을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옛날 일을 기억하고 앞날을 걱정하기도 하잖아.
애당초 백 퍼센트 건강한 사람 따위 있을 리 없다.
나의 고독은 나의 우주의 일부이며, 제거해야 마땅한 병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기준은 무엇일까.
한 밤 중의 식욕은 악령이다. 개인의 인격과는 전혀 별개로 기능한다.
안전한 집 안에만 있으면, 인간은 집에 동화되어 가구처럼 돼버린다.
오늘은 한 번밖에 없다.
쌓아 올린 행복이 무너진다면 나 역시 불행해질지도 모르죠.
잃어버릴 게 생겨야 비로소 진정한 두려움도 생겨날 테니까.
그렇지만 그게 행복이에요.
자기가 갖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아는 것.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