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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Nov 04. 2021

달까지 가자

어느 작은 개미 직장인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 장류진
공감이 콸콸콸~
대박을 꿈꿔본 직장인이라면 추천!





한탕 꿈꿔보지 않은

직장인이 있을까

직장생활로 스트레스가 머리에 한 가득일 때 가끔씩 로또를 산다. 그리고 결과 발표를 하는 그 순간까지 로또 1등에 당첨되면 그 돈을 어떻게 쓸지 계획을 세워본다. 일단 1등이 되면 당첨자가 많이 겹쳐도 10억(정도?)은 넘을 테니 지금처럼 매달 나가는 고정비 걱정이 당분간은 없어질 거고, 그러면 매달 나가는 돈 때문에 회사를 다녀야 하는 상황도 사라진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업무 스트레스를 반납한 기분이 든다. 로또를 사야 이런 상상이 조금 더 정당하다. 진짜 이루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으니 로또에 지불한 돈은 좀 더 현실감 있게 즐기는 행복한 상상 값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음을 합리화 한다..

 코로나 이후로 주린이가 되었다. 코인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손톱 정도 담근 상태다. 주식은 손가락 한마디 정도 담근 상태다. 우연히 투자한 기업이 300%가 올랐다. 하지만 내 시드는 너무나 작고 소중해서 외식 몇 번 하면 끝날 정도다. 이런 경험치를 보유한 나에게 한 문장 한 문장이 짜릿하게 공감되는 소설이었다.

 이 책은 찌든 일상을 보내던 중 우연히 코인투자로 투 더 문(익절)에 도달한 세명의 직장 동료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위태위태한 그녀들의 코인 투자 방식에 분명히 언젠가는 떡락하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겠지..라고 멋대로 결과를 확신하며 읽다가 실제로 달까지 도달한 반전덕에 짜릿함과 대리만족을 느꼈다.

 코인을 주도한 은상 언니는 33억. 화자인 다해는 3억 2천만 원, 뒤늦게 합류한 지송이는 2억 4천만 원을 벌었다. 은상 언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꼬마 건물주에 차를 샀다. 지송이는 사업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다해는 일단 회사를 다니기로 했다. 회사를 관둘 만큼 큰 액수도 아니고, 회사를 관두면 또 무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앞섰다. 아마 나였어도 일단은 회사를 계속 다녔을 것 같다. 그녀들의 익절을 바라보며 부러움 속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달까지 가자]는 코인 용어에서 유래됐다. 급등한 일봉 차트가 달나라를 향해 치솟는 로켓과 같다는 맥락에서 급등을 기원하는 '투 더 문(TO THE MOON)에서 따온 제목이다.

참 쓸데없지만 코인 용어를 설명한 관련 기사도 하나 추가해본다.. (직장에서 돔황치고 싶네)





직장인 공감

주관적 책갈피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 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 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나 또한 돌이켜보면 분명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젊음은 짧고 인생이 나아지는 속도는 더딘 기분이다. 조금 더 여유 있고 자유로운 환경에 이 젊은 시기를 방치해보고 싶다. 달까지 간 그녀들이 참으로 부럽구나..



지난 몇 년간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는 같은 회사에 다녀도, 비슷한 월급을 받아도, 결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이에는 투명한 선과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하나하나 캐치해서 추측하고 재배열하고 그 아래에 내 자리를 만들었다. 일부러 그려려고 한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랬다. 어느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출퇴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같은 것들. 강남 주민, 유학파, 교수 딸, 의사 아들. 그런 걸 알고 난 후에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속에서 무언가 이상하게 작아졌다.

 겉으로는 나랑 같은 처지인 것처럼 보여도,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 다른 세계를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갑자기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가 하염없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감이 멀어지는 느낌을 나 또한 받았다. 기계처럼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니 동료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러면 알게 되는 소소한 정보들을 토대로 나 또한 내 위치를 체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여유롭지 못한 열등감에서 오는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었고, 더욱이 어쩌다 보니 한국 소설보다는 유명한 외국 작가의 소설에 먼저 손이 갔던 것 같다. 사실 장류진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과 동일한 제목을 가진 그의 단편집이 우연히 검색되어 읽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인만큼 한국인의 정서를 잘 이해하는 존재는 없을 텐데.. 그동안 왜 나는 외국 소설에만 관심을 갖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뒤늦게 한국 소설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장류진 작가의 글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그래서 너무나 공감이 된다. 뼈저리게 공감시키는 멘트가 참 센스있다. 공감을 한다는 사실이 이리도 마음 속 힐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작가를 통해 느꼈다. 앞으로도 이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항상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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