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16일차)
볼로냐와 작별하는 날 오전 9시 25분. 사람이 아닌 도시 같은 것과 작별한다는 표현은 오그라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중년생이지만 오늘만큼은 이 표현이 정말 절절히 공감되는 날이었다. 올라가 있는 ‘천하장사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이웃 건물들의 지붕과 그 위로 덧댄 듯 새파아란 하늘. 테라스와 이어지는 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 바람때문에 살랑이는, 얇게 비치는 새하얀 커튼. 나갈 준비로 씻고 있는 사회의 물 소리. 신선한 공기. 정면으로는 보기 힘들 정도의 눈부신 햇살과 새들의 소리. 호텔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조식 냄새. 이 모든 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쉬움이 극에 달하며 ‘작별’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라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진에 담고, 마음엔 더 꾹 눌러 담고는 캐리어를 챙겨 체크 아웃을 위해 1층 로비로 내려갔다.
(2023년 4월 16일 일요일)
우리가 떠나기 위한 호텔 시티택스는 26유로. 지불을 끝내고 며칠 전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기차역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감정들. 정말 작별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Bologna Centrale 역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열차는 오전 11시 2분 출발하는 Frecciarossa(쾌속) 열차였다. 처음 와 본 유럽이어서 소매치기나 캐리어 분실 등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컸었던 탓에, 기차를 탈 때에는 돈이 들더라도 좀 더 넓고 한산한 등급의 좌석을 예매했던 사회와 중년생이었지만 이번 좌석은 Standard였다. 이제는 떠나는 도시에 정을 느낄 만큼 이탈리아에 적응되어 두려움이 줄어든 탓도 있고, 목적지인 Firenze S. M. Novella(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까지 37분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여정이어서 마음이 놓인 탓도 있었다. 출입문이 열리고 약간의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열차에 올라 객실칸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사람은 많았지만 예상 외로 자리는 쾌적하고 넓어서 캐리어를 놓을 공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음 편히 좌석에 앉아 창 밖을 감상하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깜빡 졸았었는지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에 눈을 떴다. 방금 탄 것 같은데 벌써 피렌체 도착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두근거렸다. 분명히 출발할 때 까지만 해도 볼로냐와의 작별에 마음이 가라앉았었는데 불과 40분도 안되어 내릴 때가 되자 피렌체라는 새로운 도시와의 만남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 것이다. 고작 40분만에 흔들리다니.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간사한 건 사람 전체의 마음이라기 보단 중년생 한 사람의 마음이지만.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나온 우리는 일단 호텔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 미안한데 화장실 좀 들렀다 가자.” 중년생이 급했는지 양해를 구했다. 화장실은 역과 연결된 지하상가에 있어서 한층 내려갔는데 제법 넓고 파는 물건도 많아 보였다. 휘-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보다 우선순위는 캐리어를 호텔로 가져다 놓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피렌체의 핵심 시내는 오밀조밀 붙어있어서 가까웠고 그만큼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붐볐다. 걸어서 20분 정도면 대충 어디든 갈 수 있는 구조여서 중심 방향으로 조금 걸었는데도 벌써부터 피렌체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는 두오모 성당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말도 안돼!!!!!” 사회가 감탄을 넘어선 경악에 가까운 소리로 외쳤다. 멀리서 봐도 정말 크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3차원 건축물 사이로 예쁘게 그려놓은, 하지만 너무나도 거대한 2차원 그림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두오모의 크기 보다 실제로는 훨씬, 훠얼씬 더 웅장했다.
그래서 우리가 당연히 바로 두오모를 둘러봤느냐 하면 아니었다. 사회와 중년생은 두오모 옆에 난 샛길로 조금 들어가면 바로 있는 예약된 호텔로 먼저 향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묵었던 다른 곳보다는 가격이 조금 있었지만 두오모에 최대한 가깝게 머무르고 싶어서 결정한 호텔. 정말 코 앞일 정도로 가깝고 큰 호텔은 당연히 가격이 어마어마했기에 한 골목 뒤의 좀 오래된 작은 호텔로 정했었다. 입구로 들어서니 작은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타고 한층 올라가면 로비와 연결되는 구조였다.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비에 들어서자 금발 단발의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리셉션에서 통화 중이었다. 통화가 끝나길 잠시 기다리면서 작은 로비를 눈으로 한바퀴 훑어봤다. 낡았지만 깨끗하게 관리된,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호텔이었다. 통화가 끝난 아주머니는 기품있는 표정이나 여유로운 말투로 보아 단번에 치프 매니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시각은 12시가 살짝 넘은 정도. 호텔 체크인 시간이 원래 2시부터였기 때문에 혹시 청소가 완료된 방이 있는지 확인해본다고 했다. 전화로 연락해서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직 준비가 덜 되어 2시에 다시 오라고 알려주는 친절한 매니저 아주머니. 다행히 캐리어는 보관이 가능해서 우리는 짐을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산책할 겸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나서 처음 간 곳은? 당연히 두오모 성당이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흔히 피렌체 두오모, 두오모 성당이라고 하는 곳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으로 ‘꽃의 성모 마리아’라고도 불리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두오모라는 뜻은 원래 돔 형식의 성당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지금 이탈리아에서는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성당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두오모 하면 피렌체를 떠올리지만 사실, 밀라노에도 두오모가 있고 다른 도시에도 두오모는 하나씩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두오모라고 말하는,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두 주인공이 만나는 거대한 돔의 정식명칭은 브루넬레스키의 쿠폴라(Cupola di Brunelleschi)라고 한다. 사회와 중년생의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은 사실 전무하기 때문에 더 자세한 역사적 사실이나 의미는 다 전해드리지 못하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뻔뻔한 오리발이어서 죄송합니... 콜록 콜록.
쨌든, 우리는 드디어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 아래, 피렌체를 장악하고 있는 두오모를 바로 코 앞에서 마주했다. 방금 썼지만 장악하고 있다는 단어가 아주 적절했다.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실제로 카메라 렌즈 안에 한 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고, 사진 한장으로는 다 담을 수도 없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이름대로 분명 꽃처럼 아름다운 건물인데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까지 함께 느껴지는 모순적인 조화로움. 하얀색, 분홍색, 짙은 에메랄드색 등의 다채로운 대리석의 색이 어우러져 올려다 보는 사람의 입을 저절로 벌어지게 만들었다. 로마의 건축물이 한마디로 ‘힘’ 이었다면, 피렌체 두오모는 ‘아름다움’ 이었다.(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입니다만)
두오모 하나만으로도 피렌체에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 관람은 다른 날로 예약을 해두어서 그 때 보기로 하고 사회와 중년생은 건축물 주변을 한바퀴 돌고는 남쪽의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으로 내려갔다. 광장의 역사적인 의미에 앞서 이곳으로 간 이유는 카페 질리(Caffe Gilli) 때문이었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받았다. ‘FIRENZE DAL 1733’ 메뉴판 하단에 인쇄된 것처럼 카페 질리는 1733년 부터 영업해 온 명실공히 피렌체를 대표하는 카페였다. 베네치아에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면 피렌체는 카페 질리인 셈이었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물 한 병과 Caffe Doppio(더블 에스프레소), Caffe Gilli(에스프레소에 질리 특별 시럽, 휘핑크림과 코코아가 들어 있는 커피), Millefoglie(밀레폴리에/ 빵과 크림, 꿀을 층층이 쌓은 디저트)를 주문했다(총 25유로). 역사적인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커피에는 정사각형의 작은 초콜릿이 함께 나왔는데 진하고 부드러워 에스프레소와 정말 잘 어울렸다.
예쁜 커피잔과 접시를 살펴보다가 또, 광장의 회전목마를 넋놓고 바라보다가 또, 커피 한모금 마시고 또, 이번엔 광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강아지를 쳐다보고 하다보니 벌써 볼로냐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쉰 우리는 나온 김에 좀 더 남쪽의 시뇨리아 광장까지 갔다가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비에 2시 조금 못되어 도착하니 리셉션엔 직원이 아주머니 말고 2명이 더 있었고, 그 앞으로 손님 몇몇이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자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아는 척을 하며 우리 방 키를 준비한 듯 바로 주셨다. 310호. 어딘가 낯익어서 생각해보니 볼로냐에서도 310호 였었다는 게 생각났다. 운명의 310호 인가! 이유는 없지만 예감이 좋았다. 키는 작은 터치식이었지만 함께 달린 둥근 열쇠고리가 엄청 크고 묵직했고 크게 310이라는 호수가 호텔 이름과 함께 적혀있었다. “이러면 절대 분실할 일은 없겠네.” 사회가 말했고 중년생이 크게 동의했다. 방에는 카펫이 깔려있고 침대에는 고풍스러운 무늬의 커버가 씌워져있었다. 테이블에 의자 두 개. 자그마한 TV 한 대와 에어컨. 양쪽으로 문을 여는(옛날식 열쇠로 잠그도록 되어 있는) 고풍스러운 옷장 하나. 그리고 넓은 화장실과 샤워실. 안뜰 쪽으로 난 창문 두 개. 한 바퀴 둘러보고 간단히 짐을 풀었다. 사회와 중년생 모두 아늑한 느낌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정리하고 잠시 쉬다보니 벌써 3시였다. “그러고 보니 커피말고 우리 하루종일 거의 먹은 게 없네.” 중년생이 운을 띄웠다. “나가서 뭐라도 먹자!” 사회가 덥썩 물었다.
작은 골목길들 사이로 돌아다니다 보니 눈에 띄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딱 봐도 상당히 오래된 분위기였고, 사람들도 많이 들고 나는 것으로 보아 맛집의 향기가 났다. 우리는 그 집이 제법 궁금했고, 더이상 돌아다닐 힘도 없어서 과감히 들어가 봤다. 한 쪽에는고풍스러운 바에 각종 주류가 놓여져있었고, 다른 쪽에는 진열대 안에 작은 피자와 각종 샌드위치 류가 가득했는데 모두 맛있어 보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피로도 풀겸 일단 스프리츠부터 한 잔씩 주문했다. ‘너희가 뭘 좀 아는구나.’ 라는 흡족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스프리츠와 메뉴판을 가져다 주시는 금발의 멋진 미소를 가진 아주머니. 메뉴판도 전부 손으로 적은 것이 친근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살루미와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하나와 햄, 토마토 듬뿍에 블랙 올리브가 올라간 작은 피자 하나를 주문해서 먹었다(총 25유로). 배고픈 와중에 시원한 스프리츠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벽에는 커다란 직사각형 거울이 걸려있었는데 마릴린 먼로가 코카콜라를 마시는 그림이 있는 거울이었다. 그리고 거울 주변에는 각종 액자와 신문기사들이 무질서한듯 보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걸려있었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우리는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내려와 아까 잠시 들렀던 시뇨리아 광장을 거쳐 더 밑으로 내려가니 멋진 강이 나왔다. 그 유명한 아르노 강(Fiume Arno)이었다.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건너지는 않고 앞에서 서쪽의 산타 트리니타 다리(Ponte Santa Trinita)까지 햇살을 즐기며 걸었다. 여유롭게 카페들이 늘어서 있어 특히 아름다운 이 산책길을 지나 다시 시내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이번엔 피렌체의 명품거리가 나타난다. 사회와 중년생은 그런식으로 크게 시내 한바퀴를 돌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우리는 저녁에 피렌체 야경 투어를 예약해두었는데 아무리 시간을 보내도 그때까지 밖에 있기는 무리라는 판단에 호텔에서 잠시 쉬다 시간 맞춰 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로비에서 맡겨둔 키를 받아 방에서 얼마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서 약속 시간인 7:30분 보다 10분 일찍 약속 장소인 시뇨리아 광장에 당도한 사회와 중년생. 아직 약속 시간 전이라서 그런지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를 찾는 듯 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이드는 없었다. 넓은 광장 가운데 위치한 유명한 청동기마상은 사람과 말이 분리 된 채 수리중이었고 유명한 리스토란테와 카페, 명품매장 들이 광장을 감싸듯 돌아가며 들어서 있었다. 7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대낮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그러고 보니 웅장한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의 시계탑의 바늘은 7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은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예감. 중년생은 빠르게 예약 페이지를 찾아 현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고 바로 확인 후 답을 주겠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2분이나 지났을까? 모르는 아이디로 카톡이 왔다. 오늘의 담당 가이드였다. 어디냐고 묻길래, 중년생은 약속장소인 시뇨리아 광장 명품매장 앞이라고 했다. 안 오셔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당황하는 가이드. 원래 약속장소는 두오모 광장인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중년생은 순간 ‘어, 내가 잘못 알았나?’ 하고 바우처를 찾아봤지만 거기에 표시된 약도는 분명히 지금 사회와 중년생이 서 있는 장소였다. 중년생은 바로 그 약도를 캡쳐해서 톡으로 보내서 확인을 요구했다. 톡으로 우선 죄송하다는 답변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저 쪽에서 한 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걸며 다가왔다. 가이드였다. “저, 오늘 투어 예약하신 중년생 님이시죠? 죄송합니다!” 당황함에 얼굴이 살짝 상기된 채였다. “괜찮습니다. 근데 약도는 어떻게 된거죠?” 묻는 중년생. 가이드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가이드의 잘못도 아니었다. 가이드가 정한 약속 장소는 두오모 광장이 맞는데 회사 쪽에서 우리에게 보내준 바우처의 약도가 다른 것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지났지만 왜 먼저 연락이 없었는지도 궁금했는데, 우리가 구입한 유심 칩의 번호가 영국 번호여서(유럽 번호에 대해 전혀 감이 없어서 몰랐었다.) 우리가 국번을 제외하고 제출한 번호로는 아무리 걸어봐도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쨌든, 이제 모든 오해는 풀렸고! 가이드와 사회와 중년생 이렇게 세 사람은 야경 투어의 시작점인 두오모 광장으로 이동했다. 풀렸다고는 해도 첫 만남이라 걱정했는데 피렌체 중심가를 걸어 다니며 역사와 문화 등을 설명해주고 중간중간 좋은 사진스팟에서 사진도 찍어주는 알찬,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만 듣는 투어여서 시간이 흐를수록 서먹함이 사라져갔다. 나중에는 가이드와 다소 친밀해져서 약간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눌 정도가 되었다. 해가 떨어져 어둡고 추워지자 중간에는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잔 씩도 했고(3잔 총 3.9유로), 투어가 다 끝날 때 쯤에는 얼마간 와인 이야기도 나누었다. 우리의 대략적인 투어 코스는 두오모 광장을 시작으로 단테의 생가를 지나 시뇨리아 광장, 우피치 미술관 쪽으로 걸어내려가 베키오 다리를 건너 야경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언덕까지 갔다가 다시 두오모 광장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다비드 상이 왜 머리가 크게 조각되었는지부터 단테의 생가 위치를 어떻게 추측해냈는지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고, 1966년 일어난 피렌체 대홍수이야기, 메디치 가문과 베키오 궁&다리이야기 등은 그 역사의 현장에 직접 와있다는 생각에 흥분되었다.
우리의 투어는 원래 예정은 7시 30분부터 10시까지였지만 무려 1시간이나 지난 11시에 종료되었다. 매끄럽지 못했던 첫 인상을 만회하고도 남을, 도리어 우리가 미안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주신 가이드 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제 와서 생각해봐도 첫 날 저녁 투어를 예약하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멋진 예술품, 웅장한 건축물, 가슴 벅찬 도시라고 할지라도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이니까.
호텔로 돌아와서 씻기만 했는데도 밤 12시였다. 몸은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몇시간 동안 계속해서 눈으로는 피렌체의 아름다운 경치를 담고, 귀로는 농축된 역사이야기를 듣고, 머리로는 옛날 이곳에서 펼쳐졌을 모습을 상상해서인지 정신만큼은 너무나 또렷해져서 바로 잠들기는 힘들었다. 사회와 중년생은 앞으로 펼쳐질 ‘피렌체의 열흘’에 대한 기대감으로 늦은 밤까지 수다를 이어갔다. 어? 작별한지 하루도 안지났는데... 볼로냐야 정말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