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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Aug 09. 2018

#10. 질투심은 생각보다 순수한 감정.



 내가 사랑하는 그 남자는 질투심이 많다.

 그건 단순히 연인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나는 본연적인 질투심이었다.

 어쩌면 그게 얼마나 사람을 의아하게 만드는지, 일을 하는 데에서도 상사가 다른 부하직원을 이뻐하면 그 이쁨을 자신도 나눠 받고 싶어 할 정도였다.

 그럴 땐 되려, 나는 왜 이쁨을 받지 못하는 건지, 고민을 한다고 했다.


 한 번은 그의 부하직원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온 적이 있었다.

 그 흔적을 손등에서부터 긁힌 자국을 발견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손등뿐만 아니라 팔뚝이랑 허리 쪽에도 손톱으로 긁힌 모양이 있었다.

"라쿤 카페에 가서 긁힌 거예요."

 그런 말을 했지만, 그렇기엔 너무나도 길고 허리까지 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직접 약을 발라주기도 했다.

 사실은 그 상처는 여자 친구와 싸우다가, 그 여자 친구가 화가 나서 손톱으로 여기저기 긁었던 거라고 밝혀졌다. 그 사실에 모든 직원들은 그 부하직원의 편이 되어 주며 다독여 주었다.

 귀염성이 있는 부하직원이라서 그런 건지 그렇게 온 직원들이 걱정을 했고, 그 사람은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이런 꼴 당하면 저렇게 걱정해 주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생각 자체가 질투심에서 난 것이었다.

 애초에 그럴 거면 왜 굳이 상처에 약까지 발라주면서 '오구오구'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평소에 정을 주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시기를 하는 질투심이 아니라 그저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후배나 자기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라곤 알려져 있진 않았다. 정이 많은 것도 있지만, 그건 자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애정만큼, 자신이 받지 못하는 호감을 자신의 호의로 받고 싶어 했다.

 본인은 그것을 자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질투심을 그렇게 정과 호의로 맞받아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뿐만이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관계에서까지 질투심을 품는다는 건, 사회생활은 물론 대외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후배의 건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가 아닌 그저 타인에게서 질투심을 품는다는 건, 나 자신조차도 뭔가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게 만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질투심이라고 하는 게, 자신이 받고 싶은 무언가를 얻지 못했을 때 느끼는 시기 하거나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인데, 그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이 아닌 타인에게서도 그런 다는 건, 그만큼 질투심이 강하거나 복잡한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질투심의 원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 사람에게는 3살 터울에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형인 그 사람과 남동생은 분위기도 다르고 외모도 형제 치고는 크게 닮지 않아 형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잘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남동생이 좀 둥글둥글하게 귀여운 편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좀 까칠할 듯한 시크한 편이었다.

 아무런 표정이 없으면, 차가운 느낌이 강하고 말 붙이기 어려울 것 같지만, 한번 발동하면 엄청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오빠는 동생하고 꽤나 다른 거 알아?"

"응 잘 알아."

"잘 알아?"

"응, 엄청 잘 알아."

 그 사람은 순순히 자신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단점을 짚어도 잘 받아들였기에 쿨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마냥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 점을 인정하는 건 어릴 적부터 워낙에 그런 비교를 스스로가 해왔기 때문이었다.




출처 pngtrre


 우리는 오랜 인연으로 인해 서로의 가족에게도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고, 부모님에 이어서 친한 사촌에게도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거의 결혼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한 번은 사촌 언니가 그 사람을 데려와 보라고 해서 같이 1시간 동안 이동하여 만나러 갔다.

 그 사람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일 텐데도 나름 따뜻하게 반응해 주었다.

 사촌 언니는 뱃속에 아이를 두고 있었고 20개월이 다되어가는 남자아이도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방문하는 게 꺼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에서 아이 돌보는 과정에 우울증이 염려되어, 오히려 방문해 달라는 형부의 말에 더 반갑게 찾아갈 수가 있었다.


 서로 마주하자마자 인사를 나누고, 깊은 대화를 이어나간 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조카와 놀아주었고, 사촌 언니와 함께 그동안의 수다를 떨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너도 결혼하고 나면, 이제 옛날 생각 많이 나겠다."

 사촌 언니는 말했다.

"어떤 생각?"

"예전에 우리 사촌 형제들끼리 주말마다 만나서 놀고 그랬잖아. 이제는 우리 애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옛날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언니는 두 명으로 끝이야? 세명 낳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려고 했는데, 마침 남자애 하나 여자애 하나 딱 맞아떨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애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 진짜, 너무 힘들어."

 귀여운 아기들을 보면, 그런 점이 공감이 다 가는 건 아니지만, 역시 어린아이니까 더 신경 쓰이고 힘들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배가 불러온 언니를 보아도 내가 저렇게 배가 부르는 날이 올지, 역시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래도 운이 좋다고 생각해. 첫째 애가 오빠가 되고 둘째 애가 여동생이 되니까. 낭중에 좀 첫째 애한테 의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건 낭중에 가봐야 알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키도 크고 듬직하면 든든하잖아. 형부도 키 엄청 큰데."

"근데 날 닮아가지고, 키가 많이 클지 모르겠네."

"그렇기도 하겠네, 언니 동생들은 언니랑 달리 고모부 닮아서 키 작잖아. 신기해."


 그렇게 수다 속에서 사촌언니는 뒤늦게 그 사람에게 신경을 쓰기도 했다.

 워낙에 애를 잘 봐주는 덕도 있었지만, 사실 언니도 아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만큼,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신경 썼다.

"미안해요. 놀러 와서 애만 보고."

"아이랑 놀아주는 거 좋아해서요. 가끔 일부러 조카를 보러 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 정말요?"

"네, 조카만 9명이 되다 보니깐."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같은 날에 친가와 외가에 딸아이가 한 명씩 태어났다고, 쌍둥이 같은 조카가 태어났다며 실실 거리는 것을 기억이 났다.

"혹시 형제 관계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괜찮아요?"

"네, 남동생 하나 있어요. 세 살 아래로."

"아. 동생도 형 닮아서 엄청 깔끔할 것 같네요."

 갑작스러운 호구 조사 같은 질문에, 내가 신경을 쓰다 보니, 다른 말을 돌려서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다기보다는 까칠하고 날카로울 것 같다는 느낌을.

 그 사람은 말했다.

"아뇨, 동생은 저보다 훨씬 둥글둥글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더 좋아하죠."

"아, 동생인데?"

"동생이니까요. 저와는 달리 친척들도 동생하고 말을 거는 걸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꽃돌이 같이 생겨서 인기가 많았어요."

 왠지 분위기가 낯설어졌다.

 어째 동생을 싫어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자신의 스마트폰에 십 수년도 지난 옛날 동생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저렇게 보면 동생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 말 자체를 보면 싫어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싫어하는 동생을 사진을 챙기고 다닐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그 사진 속의 아이, 그 사람의 동생은 정말 피부도 새하얗고 여자 아이들이 줄지어 따라다닐 것 같을 정도로 정말 '꽃돌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렸다.

 나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간다는 동생에게서 질투를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어렸을 때, 제가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동생이 트럭에 깔려서 다리의 뼈가 부러진 적이 있었어요. 부서졌다고 말하면 어머니는 으스러졌다고 말씀하실 정도인데 다리에 핀인가, 무엇을 박아서 고정하고 몇 개월을 지냈어야 했죠. 집에 보면 겨드랑이 부근부터 발끝까지 반깁스를 한 사진도 있어요."

"어휴 어쩌다가?"

"저는 몰랐는데, 동생이 장난감을 사러 간 저를 따라오고 있었대요. 트럭은 어린애가 걷는 게 안 보였었죠. 동생은 그대로 트럭 타이어에 다리가 깔렸어요."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 같은 광경이었다.

"저는 원인도 모르게 비난을 받기도 했고, 모든 사람의 관심은 동생에게 쏠렸어요."

"뭘 알았다고, 뭘 뭐라고 했겠어. 그냥 속상해서 그런 거겠지."

 그 사람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 동생을 껴안고 급하게 택시에 타는 엄마의 모습도 기억하고, 돌아오자마자 이모에게 큰 야단을 들었던 기억도 있었고, 초등학생도 되지 않았던 그 어린 시절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처음 타고, 그때 타고 있던 아줌마 아저씨들 한테 한 명 한 명씩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말하고, 내리게 해달라고 스스로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서워서 도착하자마자 울었던 기억도 난다고 했다.

"그때 들었던 말들이, '형이면 동생을 잘 봤어야지', '엄마 아빠가 동생 간호를 해야 하는데, 혼자서 알아서 할 줄 알아야지.' 그런 말로 잣대 아닌 잣대를 받았고, 모든 관심이 동생에게 쏟아지다 보니, 그때부터 좀 소외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워낙에 어린아이가 큰 사고를 당해서 신경 써주지 못했던 거네요. 섭섭했겠어요."

"그때는 섭섭한 게 뭔지도 모를 나이였으니까요. 문제는 동생이 완전히 회복한 후였어요."

"완쾌가 되었는데?"

"아파했던 과거가 있으면, 안타까울 만큼 계속 기억에 남는 모양인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동생을 안타깝게 보면서 더 신경 써 주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건 어른들 뿐만 아니라 친척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정도 예상이 될 것 같았다.

 나의 조카 중 한 명이 교통사고가 난다면, 어린 나이인 만큼 생명에 위험이 더 클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더 신경 쓰이고 안타까워할 것 같았다. 그만큼 더 신경 쓰이고 그 주변의 또래 조카들은 눈에 들어올 일이 적어질 것 같았다.

'동생이 아프니까. 형이 신경 써야지.'

 단순히 그런 문제일지도 모른다.

 멀쩡한 형보다, 아픈 동생이 신경 쓰이는 건 누구라도 당연하다.

 그게 어른들의 시선이고, 다른 또래의 사촌형제들은 어떻지는 또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크게 다를 건 없는 모양이었다.


"저도 사촌 언니분처럼 주말이면 외가나 친가 쪽 친척 형제들을 만나서 놀기도 했어요. 그런데 누나들은 전부 제 동생을 데리고 놀았어요. 형도 있었지만, 형은 형 혼자 놀기만 했고 저는 혼자 노는 수밖에 없었죠. 그게 대부분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고, 나이를 먹고 최근에 사촌 누나가 아이를 가지면서 그때 일을 떠올리더니 그런 말 하더라고요."

"어떤 말을?"

"왜 그때 동생하고 놀아주지 않냐고 말이죠."

 그는 여전히 아이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잠시 숨을 골랐다.

"저는 동생하고 놀아주지 않은 게 아니에요. 누나들이 동생이 아파했던 걸 아니까, 그 안쓰러운 마음에 매번 데려가 놀았고, 그래서 저는 혼자 노는 거에 익숙해졌어요. 동생 또한 나와 형보단 누나들과 노는 게 익숙했기에 누나들만 찾았고, 그러면 누나들은 동생이 누나들만 찾는 모습에, 형과 제가 놀아주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결론적으론 누나들이 착각을 한 것이다.

 아마 그때의 일은 어렸었던 때인 만큼 자신들이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질책을 하니, 저는 동생이랑만 놀아주는 누나들과 동생에게 질투를 하게 된 거죠. 괜히 미워지기도 하고 말이죠. 동생이 다쳤을 때도 잘 데리고 있지 못했다고 비난을 받았고, 완쾌가 되어서도 놀아주지 않는다고 타박을 받고, 그랬죠."

"아마 타박까지 한 건 아닐 거예요. 상황이 아쉬웠던 만큼 그저 형으로써 안타까워서 그런 걸 거예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의 나이가 10살도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의 기억을 하는 것을 보면 꽤나 상심이 컸던 모양이었다. 사실 어린 그가 잘못했다고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동생의 사고.

 그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시선.

 알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비난.

 안타까움에 동생에게 쏠린 시선으로 생긴 외로움.

 그 어린 시절에 감당하기 그리 가볍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걸 그 어릴 때에 느낀 거예요?"

"당연히 아니죠. 낭중에 저도 저희 사촌 누나랑 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왜 질투심이 강한 건지 다시 알게 된 거고, 사실 그래서 동생이 미웠던 적도 많긴 했어요. 동생이 사고로 인해 받은 관심으로 인해, 당연스럽게 저에 대한 시선과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동생이 같이 웃는 모습에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아니 아마 그랬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 감정이 질투심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기도 했고, 그렇게 받아들이다 보니, 이미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그렇다고 제 누나들을 원망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뭐, 제가 동생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죠."

 그는 살짝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곤 무안한 지 조카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장난을 쳤다.

 그렇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얻고 싶어서 정을 주기도 하고, 나에게 온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요. 그 사람들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더 관심을 준다는 게 생각보다 많이 씁쓸하게 느껴지거든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나와 잠깐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건 질투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연하게 느낄 감정이기도 했다.

 어쩌면 질투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은 일찍이 그걸 강하게 느껴왔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질투심은 그저 시기와 부러움으로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만큼 더 사랑받고 싶어하는, 그런 질투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저도 이렇게 자식이 두 아이가 있다면, 두 아이에게 애정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럴 수가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서로 성격이나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감안하고 애정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 아이라고 해서, 좀 더 큰 아이라고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강하게 두들겨 맞을 것이 동생 대신해서 더 맞고 견딘 게 많아 더 견딜 수 있을 뿐이지. 아프고 사랑받는 느낌은 똑같아요. 결국엔 '애'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사람만큼 내 주위의 사람들 중 아이를 소중하게 여길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질문에 No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날 그렇게, 형부까지 집으로 돌아오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어째 보면 두 부부가 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왠지 예비 신부가 아닌 예비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언니는 도중에 끝까지 잘해보라며 옆구리를 찔러댔다.

 생각이 깊어 보이는 점에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질투심이라는 게 단순하게 보면 사람 귀찮게 만들기도 하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생기기도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애초의 그의 이야기를 듣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질투심을 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의 질투심이 지금의 그를 만든 거나 다름없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뒤늦은 귀갓길,

 돌아가는 길은, 평소의 출퇴근 길과는 다르게 앞 뒤에 달리는 차가 없이 고요했다.

 그리고 우리만 달리고 있는 한 다리를 건널 때쯤, 다리 옆을 넘어, 바다에 비추는 가로등 주홍빛 조명이 괜히 분위기 있어 보였다.

 그렇게 조금 들뜬 건지 보조석에서 나는 물었다.

"나랑 결혼하고 아이 가지면 두 명 낳을 거야?"

"갑자기 왜?"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그는 닭살 돋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

"아기 낳으면 애기한테 질투할지도 모르니까. 안 낳을지도 모르겠다."

"흐아아아아악. 징그러워."




 질투심은 보통 너무 과하다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많다.

 남을 시기하게 되고 부러워하게 되는 만큼 뺏고 싶고 관심받고 싶어 지는 마음도 강해지고, 그만큼 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자신의 것이 아닌 만큼 빼앗아 오려는 마음은 더 화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남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내가 가질 수도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있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도 각자만의 특별한 사람이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을 안다면, 얼마나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이 소중한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질투심,

 그것 만큼 사랑이나 관심을 받고 싶은 게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어찌 보면 그런 마음이 강하게 보이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보이는 만큼,

 투명한 감정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질투심이 왜 저리 강해서 거슬리는지가 아니라, 왜 저리 질투를 하는 건지, 그 부분을 열면 서로를 더 알아갈 수 있는 단계 중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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