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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Nov 24. 2018

사랑에 능력은 필수조건일까?


 학창 시절, 가까운 같은 학교나 같은 학원에 다니는 이성을 좋아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쟤도 나를 좋아할까? 나를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

 그때는 외모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를 찾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누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설레기도 했고 굉장히 마음이 흔들리기 쉬운 때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그보다도 더 나이를 먹으면서 경제력이란 존재를 체감하고 배우게 되었다. 더 이상 대학생이나 고교시절만큼 마냥 서로를 좋아하면 돈이 없어도 만족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호감이 가는 사람을 보게 되면 문득 나의 통장의 잔액이 떠올리곤 했다. 

 그런 생각과 버릇은 곧.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할까? 좋아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아닌.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해도 괜찮을까? 내가 저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을까?"

 라며, 나 스스로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마음을 얻는다는 것에 허락의 조건 같은 것을 세웠다. 그런 생각처럼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의식하고 있었다.     


 연애를 하기 위해선, 정말로 돈이 필요했다. 결혼에는 무조건이다.          


 사랑에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그 마음을 주며 전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보답이 돌아오진 않는다.

 그 사람이 나를 반드시 좋아해 주진 않는다. 그 사람은 이미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이미 임자가 있을 수도 있으며, 아예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출처 pgntree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게 나이를 먹을수록 기적 같은 일은 더 기적 같이 느껴진다.     


 그저 그 사람만을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다면 정말 기적 같은 일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능력'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은 늘 미래를 걱정하고, 순간 감정에 휘말려 행동을 하더라도 결국엔 냉정하게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그저 지금 한 순간만을 바라보고 사랑할 사람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연애, 사랑은 그만큼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불처럼 뜨거운 감정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냉정한 보수적인 감정이기도 한 것 같았다.     



     

"카톡!"

 나의 친구는, 내가 조만간 다른 지방에 일을 하러 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 메시지를 보냈다.     

"야, 너 여자 소개받을래?"

 나는 바로 거절하지 못했다. 타 지역에 두 달 정도 있어야 했기 때문에, 소개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자주 만날 수 없었고 후일로 미뤄야 했지만, 사실 그만큼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들곤 하는 시기였다. 나는 답변했다.     

"어떤 사람인데?"

 그런 말을 하자마자 친구는 답변했다.     

"30살에 간호사"

 내가 말한 '어떤 사람'이란 것은, 나이와 직업이 기본으로 취급을 받고 있었다.


 나는 딱히 그대로 나이나 직업을 물은 건 아니었다. 그저 확답을 주지 못해서 어정쩡하게 물은 질문에 불과했다. 그저 나는 관심은 있다는 것을 표현한 질문에 나이와 직업이 툭 튀어나왔다.           


 소개팅을 그리 많이 하지도 않았기에 그런 생각을 안 해봤지만,

 20대 후반인 나와 주위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람'의 취급 기준에 '능력'은 기본으로 포함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 쓰였던 건 그녀의 나이였다.


 그녀의 나이 자체에 신경 쓰인 게 아니라, 결국 서로의 조건의 문제였다.

 딱히 조건이라고 할 건 없지만, 서로의 환경과 기준이라고 할까?

 일방적인 나의 생각으론 이러했다. 

 

 첫 번째는 나보다 연상인 만큼 결혼을 좀 더 서두르게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남자는 아직까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일절 없었다. 그건 솔직히 그녀의 입장을 알아보지 않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거기도 하지만, 부담이 가기도 했다. 

 이건 나의 매우 일방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그때의 나는 일을 하고 입장도 아니었다. 즉 수입이 없었고 얼마 안 있으면 다른 지역에 잠깐 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만날 사람을 원할 텐데, 타 지역에 있어서 보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기도 했고, 내가 직업이 따로 있다고 한들, 지금 돈벌이를 하지 않는 이상,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떳떳하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제가, 원래 ~~~를 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잠시 ~~~를 한다고 쉬고 있어요."

 결국 그런 말은, 내 기준에선 그저 일을 하지 않는 사람과 다를 게 뭐가 있나 생각하고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을 수도 있겠지만, 한참 자존감이 낮아지면 자기 자신까지도 낮추게 보는 법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했다.



 그렇듯 나는,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임에도 괜히 결혼을 서두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간호사라는 직업에 괜히 자신과 비교를 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역시 급료에는 위아래가 있다.     

 만약에 20대의 간호사라면, 나는 적극적으로 소개를 받으려고 했을까?

 물론 좋아서 다가가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더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더 조건이 좋은 사람이 다가오려고 할 테니.     


 그럼 반대로는 어떨까?

 직업이 아직 없고 아르바이트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남자는 적극적으로 호감을 가질까? 아니 그 이전에 그 사람이 남자를 만나려고 할까? 그 사람이 남자를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렇게, 사람에게 호감을 주기 이전에 그 사람의 '능력'을 알게 되면 상대의 자존감을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와 만남을 갖는 것이, 그런 '능력'이 필요한 건지. 그렇게 중요한 건지, 그저 그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게 되면 연애를 하고 사랑해서 결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이가 들어감으로써 그런 이상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환상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는 평창으로 이동을 했다. 작년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라 분위기가 꽤나 바뀐 상태였다. 그 전년도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그 동네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기 때문에, 외로움을 정통으로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그 기간 동안 알게 된 사람도 그리 없진 않았다. 기껏해야 다섯 명 정도이긴 하지만. 

 그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연락도 하지 않았었던 지인을 우연스럽게 편의점 안에서 마주했다. 하지만 나름의 작은 동네라서 그런지, 마냥 이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동생은 그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경찰 준비하고 있었잖아?"

 지인인 그 동생은 2년 반 동안 경찰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매번 필기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준비하고 있어요."

 딱히 위로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하는 줄 알기 때문에 함부로 위로해 주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서로를 위로할 겸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계속 합격할 때까지 준비하는 거야?'

"일단은 그러고 있는데…"

 동생은 끝까지 말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였다. 그 동생이 고민하는 게 뭔지 잘 안다. 나의 친구들 중에서도 30살이 다되어 갈 때까지 공무원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독서실에만 봐도 30살이 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고 시험을 치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만큼 공무원이 된다는 게 얼마나 긴 싸움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있다.     

 나는 그 동생을 격려를 한다고 했지만, 그리 큰 영향은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괴롭고 피로가 쌓이는 것은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처럼 쉰다고 회복되는 게 아닌 만큼, 그 동생 또한 괴로운 게 있었다.     


"공부를 하니까,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애가 수치스럽게 느껴지지?"

 그건 내가 이전에 느껴봤던 부분이었고, 누군가와 공감하던 말이었다.     

"그렇죠. 저는 아직까지 공부하고 그러는데, 다른 친구들은 직장도 구하고 돈도 벌고 그러는데…"

"흔희 말하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겠지."

"맞아요. 그거. 그런 거 때문에, 연애 같은 걸 한다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자존감=돈’은 정말 공식이 되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사랑을 한다는 게 그저 영화에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데에는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건 친구로부터 고민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이 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그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해도 실수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공부를 더럽게 많이 해도 점수 안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이도 저도 안 되다가 떨어질까 봐 하는 걱정이겠지."

 동생은 바로 공감했다. 


"제 기분이 지금 그래요. 그래서 공부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나이 먹을수록 더 겁이 생기기도 해요."

"그건 뭐, 오래 하면 할수록 유리한 것도 아니고, 더 독하게 한다고 해서 정말 보답을 받는다는 확정도 없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공무원 공부만 하고 나이만 먹게 되면, 그때는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헛고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자신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동생은 자기 주제에 자신이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만나는 게 죄를 짓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명 겉보기만 해서라도 소개팅에 나오면 1순위에 몰릴 거라고 확신이 드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공부 때문에 '연애도 하면 안 되는 놈'으로 스스로 박아 버리니 상당히 현실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분명 공부 잘하고 직장이 있어도 연애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아직 26살이잖아. 이미 되고 싶은 게 되면 좋겠지만, 아직 게임 중이라고 생각해. 누가 못 깰 게임을 하려 하겠어?"

"이상하게 비유하시네요."

"됐고, 정말로 저 다른 도시에는 너보다 나이 많고 배 이상의 기간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너무 자기 위로하려고 하지 마, 그게 더 스스로 자존감 낮추는 거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격려를 했다. 나를 한순간에 바로 반겨주는 녀석에게 간단한 조언이라도 아낌없이 도움이 되도록 퍼주어 주고 싶었다.          


"그래 다음에 보자. 아, 다음에 보면 안 되지. 합격해야 하니까."

"하하, 다른 곳에서 뵙길 바라야죠."

"그러면 경찰서 어딘가에서 볼 수 있겠네."

"저희는 만나서는 안 되겠네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비록 아직까진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 그런 과정을 이해하기에 늘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인데, 돈이 없고, 직장을 아직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 겁을 먹고 사랑할 수 없다고 철벽을 친다니, 그게 정말 현실이라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니까.          


 10대 때는 몰랐지만, 그 당시에 10대들의 연애를 보고 '풋풋하다'라는 말을 했다. 그 당시의 10대 커플은 그런 의미를 잘 몰랐다. 그리고 그건 분명 그 나이에 맞는 분위기의 연애였다.

 돈이 부족하면 엄마에게 거짓말을 해서 용돈을 구하기도 하고, 굳이 돈이 없더라도 서로 좋아하면 그만이었던 그런 때였다.     


 20대 때는 어떻게 했을까?

 데이트 비용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구하기도 했고,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그리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하기도 했고,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면서 현실적으로 사회에 다가갔고 그러기 위해서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서로 이해는 해 줘야 했다. 서로가 마찬가지의 상황이었고 이해해 주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했다. 20대의 연인과의 만남은 풋풋함보다는 진지함이 더 강해졌던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 때나 능력에 맞아야 이어지는 인연이란 게 정말 따로 있는 걸까. 왜 그렇게 있는 걸까.     

 풋풋한 사람들은 풋풋한 사람끼리.

 능력이 필요한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끼리.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건,

 그건 결국 서로 자신과 그 사람과의 사이와 관계를 수평의 저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쩌다 보면 고등학생과 연애하는 대학생도 있고 대학생과 연애하는 직장인도 있는데. 서로 연애하고 만나면서 그 저울의 기울기 수준은 언젠가 맞추어지진 않을까?

 그 가능성이 어렵다 보니, 미리 겁부터 기도 하고 자신이 먼저 선을 긋는 경우가 많았다.


 왜 굳이 자존감으로 사랑할 상대를 두고 미리 겁을 먹는 걸까. 그 사람은 사실 엄청 검소해서 씀씀이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자신이 찾는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사실, 그런 걸 알면서도 역시 스스로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무서워하는 게, 역시 자존감이란 녀석이 참…


 사랑은 정말, 열정보다는 냉정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글은 아래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지만, 수번의 교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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