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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Dec 15. 2018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잘해줘도 부족하다.


https://brunch.co.kr/publish/book/2216


본문의 글은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담겨져 있는 글이지만, 다소 수정이 거쳐져 일부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나에겐 두 번째 엄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 한 명 있다.

 어릴 적에 가정의 혼란으로 할머니와 동생, 셋이서 지내야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엄마의 역할을 다 해주셨다.

 그렇기에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시기에, 할머니는 사고로 인해 거동이 많이 불편해졌었다.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으면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리를 쓰지 않을수록 더 힘이 약해지는 건 당연했었다.

 걷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었다.

 그건 누군가가 없다면 화장실을 갈 수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며, 누군가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집에서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할머니의 사고는 이러했다.

 할머니는 예전에 다들 일 나가고 학교를 간 사이, 집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적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 가족 중 아버지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 발견할 때까지 방치된 상태가 되었었다.

 그 사고로 후유증을 앓고 계셨다.

 그렇기에 혼자 무리하다가 그런 일이 생길까 하는 걱정을 시작으로, 재차 큰일을 당할 일이 없도록 요양사를 고용하게 되었다.


 그 요양사 분은 다른 친척 분들도 만족할 만큼 친절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 요양사 분이 오래 곁에 있어주면 있어줄수록 신뢰가 쌓였다. 그건 좀 더 긴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해 줬으면 하길 바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매번 할머니의 곁에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할머니는 손주들이나 자식에게 화장실을 데려가 달라는 말을 하기 부끄러워하셨던 것 같았다. 그래서 늘 집에 찾아오시는 요양사에게 부탁했었고, 그날은 마침 그 요양사가 오지 않았고 할머니는 참지 못해 바지에 실수를 하셨다. 그리고 숨긴다고 하시지만,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모습을 동생이 발견했는데 동생은 어쩔 줄 몰라했고, 조금 늦은 타이밍에 귀가를 한 아버지가 그 모습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눈동자가,

 자괴감에 무너져 모든 걸 잃은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아버지는 할머니는 위로했지만, 할머니는 많이 괴로워했었던 것 같았다.     

 그 이후 고등학생인 동생이 뒤처리를 하는 모습을 본 아빠는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이 때는 내가 대학생이 된 시기였다.


 할머니와 같이 사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이전에 있었던 일도, 우리가 할머니를 제대로 살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었고, 그런 미안함에 전문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생겼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 요양사를 믿었던 만큼, 요양병원을 믿었던 게 큰 오산으로 돌아왔다.

     

 부산 어느 한 요양병원.

 자주는 아니더라도 할머니를 자주 보러 가려했고, 아버지는 이틀의 한 번은 보러 갔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집에 가면 안 돼?"

 아버지의 속은 타들어갔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가족들 중 누구나 알 듯이 가족에게 희생, 그 자체를 하신 분이었고, 지금도 다름없었다. 그래서 왜 요양병원에 맡겨졌는지도 스스로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 집의 여건상 어렵다는 걸 알고서도.     

 그걸 알면서도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계속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집에 가면 안 되냐?"

 그건 어째,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테니, 다시는 어렵게 만들지 않을 테니, 집으로 데려가 달라는 말 같았다.     


 할머니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전에 집으로 오셨던 요양사 분은 이미 고용된 입장이 아니더라도, 할머니를 자주 찾아왔다.  

 집으로 찾아오셨을 때도, 할머니에게 "엄마~"라고 말하며 할머니에게 잘해주셨는데, 이렇게 병원까지 찾아오면서 얼굴까지 비춰주는 게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돈을 받고 일하시는 만큼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정 때문에 할머니를 찾아오는 것을 보면 요양사는 정말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요양병원에는 병실마다 할머니들을 챙겨드리는 요양사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또한 잘해주실 거라는 생각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할머니를 찾아온 아버지가 본 광경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정적인 의미로.     


 아버지는 할머니를 보러 찾아왔고, 앉아 있는데.

 한 요양사가 할머니들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것도 아버지가 그 병실 안에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아버지의 말로는 그러했다.

"그 병실 안에 할머니들이 저녁 식사를 많이 하면, 병실 안의 요양사가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하더라, 체중이 늘면 그만큼 할머니를 옮기는 자신이 힘들다고."

 그건 그냥 간과할 게 아니었다.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농담으로도 하면 안 되는 말들이다. 그 안에 있는 어르신 분들은 가족들이 싫어서 요양병원에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가, 아니 병실 안의 할머니의 보호자가 보고 있음에도 다른 할머니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건, 보호자가 없을 때에는 우리 할머니에게도 그런 말을 했을 거라는 말이었고, 더 심한 말을 할지도 모른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여러 상황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집에 가면 안 되냐?"

 나는 할머니의 그런 말이 떠올렸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었고, 견딜 수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는 말을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 혼자 계시는 것에 다른 가족들이 걱정을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분명 할머니는 그런 걸, 본인이 힘들어도 감수하시는 분이면서도 말이다.     

 할머니는 혼자서 모욕적인 취급을 받으면서 쓸쓸하게 버티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들이 찾아오는 걸 더 기다렸던 것이었다.      

 정말,

 할머니에겐 미안함만 가득 차고 있었다.

 정말,

 잘해주고 싶었고, 편안하게 모시고 싶었고, 서로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도록 노력을 한다고 했지만, 매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결국 우리는 부산의 그 어떤, 어느 지역의 요양병원이든 믿을 수가 없었고, 결론적으로 막내 고모가 할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할머니는 딸의 곁으로 갔고,

 약 3년을 병원 침대에서, 매번 가족들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그곳도 요양병원이었지만, 바로 옆에 고모네 집이 있었기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찾아가셨다고 했다.               


출처 pngtree


 그리고 2018년 3월 말에

 할머니는 우리들의 곁을 떠나셨다.     

 누구도 할머니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조금 더 할머니에게 잘할 걸 하면서 후회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잘했다고 한들, 결국엔 어떤 후회만을 할 것이라고.

 모두가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분명.

 모두가 할머니를 사랑했기에,

 보내기 싫었기에,

 더 잘하고 효도할 테니, 잠시라도 다시 돌아와 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있을 때 효도하고, 잘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분명 더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더 잘할 것이고, 받은 애정만큼 돌려주려 사랑할 것이다.

 그건 당연한 것이기에,

 이미 할머니에게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까지고 후회만 남을 것 같았다.


 좀 더 잘할 걸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잘해주려고 한들, 항상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니까.

 나 스스로가 납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잘했다고, 충분히 했다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게도 다독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저 다음 생에는 이번 생보다 더 많은 축복과 사랑을 받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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