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나, 다소 수정으로 인해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과 중학생 시절에는,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친구를 만날 때마다 담임선생님이 각자의 번호순으로 앞으로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게 만들었다. 50분이라는 한 교시 동안 진행되곤 했는데, 가끔은 그 시간이 모자라서 일부만 자기소개를 하고 시간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다가 생략되는 경우도 있었던 경우가 있었다.
"제발, 내 차례는 오지 마라."
그중에서 나는 나의 소개를 하는 시간이 없기를 바라면서 시계를 쳐다보곤 했다. 그저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를 얘기하는 거에 익숙하지 못했고, 그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나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를 주어지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르고, 괜히 무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나의 소개'를 하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나를 소개한다는 게, 그게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일인지. 그때는 알 리가 없었다.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는 것. 그것은.
내가 어느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든,
누군가와 만나고 싶어서든,
언제 어떻게, 어떤 인연이 될지 모르는 관계의 시작에 필수적인 일이다.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고 깊게 남는다는 말처럼, 처음 본 사람에게 또는 어떠한 형태로의 첫 만남이든 나를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중요했다. 그건 어디에서나 똑같이 시작되는 것이고, 어디에서든 예외 되지 않았다.
잠깐 사이 일을 하게 될 아르바이트도 면접을 보기 위해서 이력서를 챙기기도 하며, 더 세밀하게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어떤 지식을 가졌는지 알기 위해서 1차, 2차, 3차 등 수차례의 면접을 보는 회사도 있다. 그런 직장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타인이든, 흔한 소개팅 자리에서도 자기소개는 필수다.
이제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새로운 만남을 원해서 '나의 소개'를 하고 싶을 지경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장점을 가진 사람인지 알려 준다는 것은, 누군가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어지게 된 셈이니까.
언젠가 면접을 보면서 그런 질문을 자주 받곤 했었다.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자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장점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자신의 장점에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의 장점이 정말 장점인지 확신을 못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본인의 단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단점을 말해도 괜찮을 걸까?’
질문자는 정말 나의 솔직한 단점을 알고 싶은 건지, 거기에서 단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추려내려는 건지, 애초에 단점이 말 그대로 ‘단점’인데 마음에 들 리가 있는지, 온갖 생각이 한순간에 지나가면서 수초에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을 보여주고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단점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 또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거부를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 또한 일찍이 다 보여야 하는 건지, 생각을 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그만큼,
나를 소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누구든 항상 시간을 주어주는 것도 아니며, 자신을 소개한다고 하여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기만 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해야 나를 잘 보여줄 수 있을까.
나의 첫 데이트는 그러했다.
고등학생 시절,
고민과 고민 끝에 버튼을 눌러 보낸 문자 메시지로 주말에 영화를 보자는 말을 전했다. 상대는 장난인 줄 알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특별한 감정으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게 낯설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멀뚱멀뚱 길거리에 당황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만나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고, 게임 센터에서 게임하는 게 전부였다.
도중에 그런 말을 들었던 게 신경 쓰였다.
“나, 이렇게 어쩔 줄 모르게 서 있는 거 싫어.”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기에, 뭘 하든 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이것을 하자. 저것을 먹자. 이걸 보자."가 아니라 "이걸 할까? 저거 먹을래? 이걸 좋아하려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주춤거리다가 들려온 말이었다.
그건 반드시 무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주었고, 좋아서 하다기보다는, 좋아해 주길 바라며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에게 나는, 지루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애로도 남고 싶지 않았다. 분명 그 아이에게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계속 얻고 싶기 때문에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면이 싫다는 말에 급하게 반응을 하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대체 그 아이랑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엔 그 아이는 문자 메시지로.
[재미있었어. 다음에도 같이 놀자.]
라는 식의 문자를 받았지만, 정작 나는 뭐가 재미있었던 건지, 어째 그 아이의 말이 괜히 나를 위로하는 거짓말 같이 느껴졌었다.
좋아서 만나고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건데, 뭔가 해줘야 된다, ‘해줘야겠다.’라는 생각만 앞서니, 이게 데이트가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10대의 첫 데이트였다.
그때는 분명, 나는 나의 그대로의 모습도 아니고, 나의 장점이나 매력을 어필해서 함께 했던 건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다. 그게 실망감으로 이어져, 용기도 잘 나지 않았었고 그 아이와 단 둘이서 두 번 다시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그때가 풋풋하고 말들 하는 때의 일이었고, 지금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또다시 같은 과정을 이어가고 마무리할 것 같았다.
그래서 풋풋하다고 할 수 있는 건지, 그런 계기로 뭔가 더 생각하게 되는 건지 20대가 돼서는 달라졌다.
"나 내일 소개팅하러 나가는데,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 밥 먹고 영화 보고, 뭐 그런 거 말고 다른 건 없나?"
소개팅을 준비하려는 한 남자는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남자도 생각하기에, 첫 만남에 밥 먹고 영화 보는 아주 정석적인 데이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답을 했다.
"개인적인 거지만, 첫 만남에서 서로에 대해서 알려고 해야지, 술은 첫 만남에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어디 잘 아는 단골 카페 같은데 없어?"
"그런 건 따로 없지."
"그런 게 있으면 편하긴 한데."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말했다.
"그러면 그냥 식사부터 시작해. 거기에서 대화를 많이 해야지.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어떤 성향인지 알고 서로 맞춰서 '이걸 하러 가는 건 어때요?' 하고 제안을 해봐."
"그게 잘 될까?"
"소개팅이라는 게,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 계속 만날지 말지 하는 자리이지, 의무적으로 커플이 되려고 가는 자리가 아니잖아."
아마 그런 생각을 10대 때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다.
20대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10대처럼 둘이서 무언가를 보고 먹고 놀려고 하기보다는, 이젠 그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생각.
물론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할 순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집중해야지 대화를 하면 주변 사람에게 민폐이고, 그렇게 까지 영화를 볼 이유도 없다. 게임센터도 마찬가지, 둘이 하면서 즐길 수 있지만, 둘이서 게임에 집중할 뿐이지,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사람은 ‘만남’이라는 관점의 기준은 다르다.
10대를 보아도 그저 ‘남소’,‘여소’라는 표현을 하면서 가볍게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소개를 받고 사귀고 말고 하며 ‘만남’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도 있고,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2,30대는 만남 자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게 반대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애초에 단순히 나이나 시대의 차이는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만남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있는 가 반면, 만남 자체가 어렵고 무겁게 여기는 10대들도 있다.
그건 인연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또는 쉬운 지 서로 방법도 다르고 과정과 결과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하면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싫어하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10대 시절에 최선이었고, 지금은 가볍게 은은한 분위기를 내는 곳에서 대화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과 무엇을 하면 분명 재미있기도 하겠지만, 상대방을 알아가고, 나를 소개하며 대화를 하는 게, 서로를 알아가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물론 대화는 서로가 하는 것이기에, 상대방도 좋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만큼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건, 정말 상당한 행운이다.
그렇기에 항상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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