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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an 12. 2019

독신주의자와의 연애. 그럼 나는 어떡해?

아래의 글은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담겨져 있지 않는 글임을 미리 알립니다.





 한 예능에서 거짓말 탐지기를 장착하고, 그런 실험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키우고 있던 아이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래도 결혼하실 수 있나요?”

 그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몰랐던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분명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한들, 마냥 평범한 사실은 아니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건 분명 1차적으론 미리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2차적으로 그 사실을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흔들리기도 한다.     

 그 장면을 보다 보니,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의 이야기가 떠올라졌다.          



 그와의 만남은 사촌관계임에도 거의 10년 만이라 놀랍기도 하고 반가웠다.

 평소에는 모르는 전화번호는 받지 않는 편이었는데, 어째 받은 걸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그 동생은 어릴 때부터 마른 체형이었는데, 얼마나 말랐는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커 보일 정도로 살집도 별로 없었다.


"뭐야, 뭐가 그리 바빠서 그동안 연락도 없었어?"

"내가 하는 일이 좀 그래."

 그는 산 안쪽에 자리하는 본가에서 질려했고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와서야 돈을 벌고자 서울로 나왔다. 

 그래서 이미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다른 친척 형을 따라 일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고, 최근에는 사이버 대학교를 수강하면서 생산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여자 친구를 만들어서 연애도 하고 있고, 자신의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그 동생을 만나는 것 또한 오랜만이지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이 녀석이 자신의 가족들조차도 잘 보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일을 아르바이트 식으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하는데, 뭔가 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게 있는가 보구나 싶었다.

 그 녀석의 팔이나 목에는 비싸 보이는 장식품이 있었지만, 그다지 치장에 신경 쓰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의 비싼 것도 아니었다. 

 뭔가 사정이라도 안 좋은 건지, 뭐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 나는 물었다.     


"어디 돈 필요한데라도 있어? 뭘 그리 돈 벌려고 열을 올려?"

 아직 25살인 동생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돌려 말하기 위해 말을 덧붙였다.     


"벌써 결혼 준비라도 하는 거야?"

 결혼하는 데 돈이 필요하니까. 여자 친구도 있겠다, 혹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었다.

 하지만 동생은 말했다.     

"나 독신주의야."

"…"

 25살밖에 안 된 녀석이 그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어 말했다.     

"근데 연애를 하는 건 좋아."


 나는 그 부분이 앞뒤가 맞지 않다고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독신주의라고 해서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연애 자체가 결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사촌 동생을 보면서 나는 답답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의 입장이 아닌, 그의 연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 동생에겐 여자 친구는 자신보다 두 살 어린 23살이고, 그 나이보다도 더 어린애 같은 여자라고 말했다.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는 데, 연인 사이인 만큼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그 여자 친구는 아는 걸까? 물론 나이가 어려서 결혼까지 생각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연애가 오래가다 보면 결혼까지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자신이 독신주의라는 걸, 최소한 알리지 않는다면 실례가… 아니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괜한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무언가를 묻기도 전에 사촌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걔는 진짜 애 같은 애야"

 라면서 실실 웃었다.

 좋기는 좋은 모양이었다.          


 독신주의자들은 왜 결혼을 기피하는 것일까? 이유는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준에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에 자신의 일상이나 자유를 뺏긴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연인 사이가 아닌 부부관계가 되면서 서로 도우면서 미래를 만들어야 하고 서로의 친정은 물론 자식을 낳아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결과가 많다.

 거기에서 자신의 자유를 뺏기기 때문에 기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눈앞에 있는 사촌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면 독신주의자는 개인주의나 냉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만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할 수 있고, 매우 보수적이며 계산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독신주의도 하나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며 논란이 되어야 하는 것도 물론 논쟁이 될 만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뒤늦게 “나 독신주의야.”라고 밝히는 것은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떠나 그냥 이기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눈앞에서 그냥 “너랑 결혼까지 할 생각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고, 이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 시기와 결혼까지 생각한 사람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큰 충격이다. 그만한 청천벽력도 따로 없을 것 같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지만 결혼까지 하고 싶지 않다.’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고 싶었는데,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건, 끝을 내자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 않나.’

 이런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합의점은 어떤 설득과 납득일까.          

 미래를 함께할 사람보다 자신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연애까지 욕심을 내다니, 차라리 비독신주의자끼리 만나면 모를까.               


"뭐야? 무슨 계기라고 있어?"

 나는 물었다.

 그리고 동생은 바로 말했다.

"나는 말이야. 누군가를 그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싫어. 뭐 하러 그래?"

"아직 겪어 본 일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싫다는 거야?"

"그냥 싫어. 그렇다고 연애가 싫은 건 아닌데, 결혼을 하면 그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 반대편, 아내의 사람들에게 느낄 책임감도 싫고, 자식을 낳으면서 생기는 책임감도 싫어."

 동생은 그저 자신의 이름 그대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지, 아내를 위한, 자식을 위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요즘 생활이 어렵다 보니 생긴다는 ‘다포기 세대’처럼 결혼을 포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혼자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 멋을 부리거나, 나 자신한테 투자하는 게 좋아. 거기에 만족을 해. 그냥 나는 내 삶을 즐기는 거야."

 그저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것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낀다는 이 녀석.

 그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뿐일까?

 나는 물었다.     

“그럼 네 여자 친구는 너 그런 거 알고 있어?”

“아니? 어차피 결혼할 생각도 없고, 계도 아직 결혼할 생각도 없을 건데, 뭐 하러 그러나 싶었는데.”

“그건 네 입장이고, 듣자 하니 내 엄마 친구 분 딸 중에서도 21살인데 결혼 한 사람도 있던데.”

“그럼 뭐, 연애할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매번, 나 독신주의자에요. 라고 말하고 다녀야 한다는 거야? 난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쩌면 이 녀석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독신주의자라고 칭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pngtree


 그 자리에서 동생의 독신주의가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애초에 그렇게 가릴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동생의 기준에서는 내 말은 그저 다른 사람의 가치관일 뿐이었다. 그도 자신의 삶을 살면서 내린 결정이고, 그 결정을 고집하는 만큼 내가 억지로 바꿀 필요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에 연인이 독신주의라고 한다면, 설득해 보면 알 것이다. 독신주의자는 결코 자신의 뜻대로 설득당해주지 않을 것이다.

 개인주의가 강한 만큼 자신의 생각, 의지가 강한 편이고 남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옳다고 믿고 나아가는 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런 사람에게 독신주의에서 벗어나 자신과 함께 결혼하자고 설득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독신주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부정받고 있다고 거부감을 느끼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독신주의자의 마음을 돌리는 건 어렵다. 단기간에 그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건 더 어렵다. 아마 나긴 싸움이 될 거다.     

 나로서는 나의 애인이 독신주의라고 한다면, 첫 만남에서부터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자신과 함께 연인 관계를 유지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입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쪽이든 쉬운 선택은 없었다.                         




 나도 한때는 혼자로 살아가는 미래를 상상한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양쪽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는 가정이 있는 반면,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은 안 계시는 경우도 있고, 도중에 헤어져서 따로 살게 되는 집안도 있으며, 성인이 되기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나 버리시는 경우도 있다.

 자식의 입장에선 부모님이 서로 화목하지 못한 만큼 답답하고 괴로운 게 없다.


 그러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가정을 꾸리지 않는 경우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고 한들 한 순간에 박살 나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타협하고 납득하지 않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게 ‘관계’라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포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건 상당한 극단적인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음에도,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해 나가는 미래를 바라면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걸 다 바쳐서라도 그 사람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뭔지 느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두근거리게 하고, 공기처럼 소중한지 알게 되니까, 없이는 못 살겠더라.     

 그 동생과 나의 차이점은 그런 게 아닐까?     

 라고,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렇다면 독신주의자의 연애 상대방은 결국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어 버리는 거니까.     

 하지만 독신주의자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선택한 삶인 만큼, 상대방에게 피해가 있으면 안 된다. 그건 정말 이기적인 게 맞다.

 내 행복을 위해서 남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그런 것을 어떻게 사촌 동생에게 전할 수 있을지, 아직까지 생각해 보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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