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글은 위의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이지만, 다소 수정이 되어 책에 담겨져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짝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부끄럽다.
오히려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일방적인 마음이며, 너무 앞서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 바람을 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 사람 또한 나를 좋아해 준다면,
연애도 원활할 것 같았고, 사랑도 받을 것이고 내가 상상하는 대로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고 싶다 라고.
그런 바람은,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사랑에 의심은커녕 믿음만이 더 강할 거라고 생각했다.
상상은 거기까지였다.
그런 것이 마냥 쉽게 일어난다면, 짝사랑이란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누군가를 조용히 좋아한다는 건, 그 기간이 길수록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가 부정적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이 편하도록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길 바라면서, 그 사람을 바라본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는 건 행운이며 축복이다.
그건 내가 타인에게 그런 감정을 주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똑같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바라고 또 바라기도 한다.
그 사람이 내 마음처럼,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해 주기를.
오랜 친구가 있었다.
어떤 인연이냐면, 흔히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오랜 인연으로 이어졌다.
부모님들끼리 친구여서 자주 만나게 되다 보니, 동생까지 같이 노는 경우가 많았고, 일반적인 다른 친구와는 다르게 부모님들끼리 친근한 만큼 우리들도 더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매번 만나는 게 반가웠고, 만나는 게 기대가 될 때도 있었다.
어릴 적에는 내가 학교에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그 친구는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친구의 엄마는 나이는 같으니까 누나가 아니라고, 그 녀석에게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건 성인이 되어가는 나이가 될수록 더 강조하려고 하셨지만, 그것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사는 지역이 조금 다른 만큼 각자의 생활 또한 다르고 관여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들끼리 만나기 어려워해서 우리 둘이서 알아서 보자는 약속을 하지 않는 이상 얼굴을 보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리 서로 사는 지역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거리인데.
우린 그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밖에 하지 않았고, 그것조차도 점점 빈도수가 줄어감을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1년 학교 일찍 들어간 만큼,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그 녀석이 고등학생일 때 다시 만나게 된 적이 있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타이밍에 그 녀석이 먼저 연락을 준 것이다.
한 번 얼굴을 보자면서.
"오랜만."
그래도 그 녀석도 사내라고, 모든 골격 자체가 커져 있었고, 계속 자라던 키는 결국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개를 올리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심장박동은 없었다.
주위에 동급생 남자라도 없어서 그런지, 내가 아는 남자라곤 그 녀석밖에 없었고 그 녀석과 하는 것이라면 뭐든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부터 앞서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부터 특별한 심장 박동은 뛰고 있었고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심장박동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익숙한 심장 박동이었다.
그런 것을 느낄 때마다, 내 마음을 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서로 친구사이였기 때문에, 나의 고백으로 인해 미묘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나, 우스갯소리로 잡담을 할 모습을 상상하니 망설여졌다. 오히려 그런 상상을 하는 시점에서 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사실 그건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하는 게 싫어서 고백을 하지 않으려는 변명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면서 사실, 이 녀석 또한 나를 좋아하고 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고 전해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 단순한 욕심이 있었다.
"우리 엄마한테 얘기 들었어?"
그 녀석이 말했다.
"무슨 얘기?"
"나 졸업하면 바로 스코틀랜드로 유학 가거든."
아마, 그게 이유였던 것 같았다.
개인적인 감정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나를 보려고 한 게 아니라,
뭔가,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게 아닌가,
그것 때문에 나에게 전화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직감이 바로 왔다.
그래서인지 나의 모든 시간이 한순간 멈춰 섰던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언제… 가는데? 졸업하고 정말 바로?"
나는 정확한 시기를 물었다.
2월에 졸업하고 3월 초에 간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날짜보다는 나는 다른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 버린다면, 대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내 마음을 전해 줘야 하는 건지, 아니 어쩌면 타이밍이 좋지 못해서 그런 계기로 오히려 아예 얼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인다면 분명 그래도 상관없겠다고 할 순 있겠지만, 차이고 바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똑 부러지지도 않았고, 그 녀석에 대한 마음에 미련이 남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유학 가서… 뭘 배우는데? 뭘 하려고 가는 거야?"
그런 질문들만을 했다.
지금 돌아서면 그때 당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떠올라지지 않는다. 얼마나 정신을 놓았던 것인지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이야기를 하고 나온 카페에서 휴대폰까지 두고 와 다시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녀석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마주 편 쪽에서는 단 둘이 걷고 있는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계속 우리 쪽으로, 그 녀석에게 시선을 똑바로 두고 다가왔다.
"오늘 친구 만난다고 하더니, 여자였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 녀석의 손을 잡으면서.
"오랜 친구야. 우리들 엄마 아빠가 어릴 적부터 친구거든."
그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아무런 걱정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변명거리도 할 게 없다는 듯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하니, 꽤나 스스로가 삐뚤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 녀석이 미워지기 시작한 걸까.
"여자 친구?"
나는 괜찮은 척하며 내 목소리 톤을 유지하면서 물었다.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생이에요? 친구라면서?"
그 와중에 그녀는 나를 위아래 스캔을 하면서 물었다.
뭔가를 경계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왜 친구인데 대학생인지 그 녀석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네, 그래요."
어째서 인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얼마나 사귄 거야? 난 몰랐네. 미리 말이라도 하지."
나는 애써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게 없다 보니, 생각도 못했다.
내가 주변에 남자가 없다고 해서 그 녀석 또한 주변에 여자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당연스럽게 한 모양이었다.
“우리? 얼마 안 되었어. 이제 두 달?”
아주 깨가 쏟아내는 것처럼 웃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아주 혐오스럽기까지도 했다.
"저기… 얘가 유학 가는 거 알고 사귀는 거예요?"
나는 두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괜히’라고 했지만, 대답을 듣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그 부분에서 어떻게 고백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당연스럽게 말했다.
"유학은 1년 전부터 정해져 있던 걸로 알고 있었어요. 군대 기다리는 거, 미리 경험해 보려고 해요."
그렇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웃음이 났다.
허무하기도 했고, 정말로 눈앞의 두 사람이 우습기도 했다. 또 내가 우습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
나보다 더 못난 것 같았고,
나보다 키도 작았고,
나보다 이 녀석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을 테고,
이 여자가 과연 이 녀석한테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지 않았고,
괜한 화가 날 정도로 어이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보다 잘난 게 있는 것 같다면,
그 여자가, 확실하게 부러운 게 있다면,
내가 사랑을 받고 싶었던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깊이 들어가 내 마음이 아프게 만드는 게 있다면,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 나와는 전혀 다른 타입인 것 같은 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할 수도 없었다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애초에 걔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그런 생각 자체가 나 자신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나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면서,
그런 마음이 계속된다면,
그 녀석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는 보상을 기대했을지도 몰랐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준다고 해서 다 되돌아 받는 것도 아닌데, 애초에 나는 그런 마음도 표현한 것도 아니면서 무슨 욕심이 그렇게나 많았던 건지.
그날 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떻게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엇보다 속상한 건,
내가 이렇게 복잡한 심정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그 녀석은 분명 나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멋대로 혼자 좋아하다가, 혼자서 배신감을 만들고 느끼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 것 같아서, 너무 한심해 보였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게 아무런 소용없다고 느끼게 되는 게 이렇게나 허무하고 괴로운 일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후 그 녀석은, 인사도 없이 한국을 떠나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다.
그 후로 완전히 서로 직접적인 연락은 끊겼다.
그저 부모님끼리의 대화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얻을 정도뿐이었고, 그 녀석은 몇 년이 지나도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부모님이 스코틀랜드에 직접 찾아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곤 하는 모양이었고, 이제는 완전히 그 나라에서 정착하듯이 지내는 모양이었다.
아마 더 이상 얼굴을 볼 일이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고, 내가 언젠가는 그 녀석을 좋아했었구나 하는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면, 괜히 허탈하여 피식 웃기도 했다.
그렇게 느낄 때는 이미 6년이란 시간이 지날 쯤이었다.
결국에는 그렇게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한 짝사랑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평범한 겁 많은 짝사랑이었다.
그때의 그 실연만큼,
다시 만나도 그때만큼 뛰지 않는 평소의 심장박동수와 다르지 않은 내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래도 분명, 그때는.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란 건 사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었으니까.
그런 마음은 그가 아니더라도 여전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가 호감을 주니 그대로 돌아와 서로 연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물론 있다.
알고 보니 사실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태도가 바뀌는 사람도 있다.
사랑은 언제나 한쪽에서 신호를 보낸다고 이어지지 않는다.
신호가 닿기를 바라면서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 신호가 닿는지 모른다.
닿았다고 한들 거부당할지도 모른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만큼, 자신의 마음 때문에 어떤 식으로 변할지 모를 때 당연히 무서운 것이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 사람에게서부터 얻는다는 게 어려운 것을 알기에 그런 바람을 한다.
설령 허무하게 끝날지 모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하기를 바란다고.
이 글은 아래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지만, 수번의 교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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