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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an 21. 2018

연상의 여성과 연애를 계속할 수 없던 이유.

"여자 친구와 함께 올 때는 안 받아 주시더니, 정말 혼자 오니 대접해 주시네요."

 혼자 식당을 하는 주방장은 기꺼이 그를 맞이 했다. 실제로 둘이서 왔을 때 내쫓은 적은 없었지만, 미리 여자 친구와 와도 되냐고 묻기에, 단호하게 안된다고 대답했다.


 이곳은 혼자 오는 손님에게만 식사를 대접하는 식당이다.

 

 그 손님은 얼마 전에 이별을 했다고 한다.

 나이 25세에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지만 골격이 좋아서 입은 옷의 선이 깔끔하게 좋아 보였었다. 외모 또한 여우상의 느낌을 주지만, 여자 꽤나 후릴 것 같은 외모였다.

 하지만 연애를 해서 인지 배가 살짝 나오는 게, 다이어트에 실패한 것 같은 일명, 요요현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 솔로가 되었으니, 다시 살이 빠질 시기인가?

 그 손님은 딱히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의 괜히 울적해지는 것 같은 분위기는 주방장을 불편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면 들어줄 수 있으니 해도 괜찮아."

 주방장은 주문을 받기 전, 손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의 방문은 거의 3년 만이었다.

 그중 2년은 군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역을 한 뒤에서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 친구는 군대에서 상병을 달았을 때쯤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연애기간은 2년 정도에 가까웠다.

 그녀는 손님이 전역하고도 마치 내조를 하듯이 보탬이 되어주려고 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려고 할 때도 친척 중에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으니, 같이 일을 배우면서 공부하는 것을 추천하기도 했고, 기술직에 취직하기 위해서 공부를 할 때도, 일을 하는 여자 친구는 용돈을 보태주기도 했다.

"그래서? 자존심이 문제였던 건가? 요새는 마냥 그런 것 같진 않던데."

"제가 자존심을 세우고 말고는 없었죠. 저는 기술 하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 자체가 매우 불투명했으니까요, 그런 저의 미래를 돕기 위해서 이것저것 지원해 주려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불만을 할 수 있나요?"

 오히려 힘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여자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더 힘낼 수 있었다고.


 하지만 불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건 전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손님은 군대 생활을 하면서 총 3명의 여자를 사귀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입대하기 전부터 사귀었던 원거리 연애의 연상.

 두 번 째는 한 번 이별이 있었지만, 다시 만나게 된 옛 동갑내기 연인.

 그리고 지금의 연인, 아니 제일 최근에 헤어진 연인.


"분명 연인의 옛 연인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겠죠. 오래 사귀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최근의 여자 친구가 자주 들어버리곤 했거든요."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지? 셋이서 같이 만나기라도 한 건가?"

 주방장은 SNS를 잘 이용하지 않았다. 거의 모르는 것에 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옛 연인의 존재를 알게 되면, 인터넷 상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군대에 있었을 때에는 친한 선임에게 부탁을 해 도시락을 만들어서 면회장에서 같이 먹기도 했거든요. 대학교를 간 적은 없지만,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 되는 것 같은 연애였어요."

"보통은 면회를 오는 사람이 먹거리를 사 오는데, 군대에서 도시락을 따로 만들다니. 그건 면회자 입장에선 감탄스러울지도 모르겠군."

"그런 흔적들을 지워주지 않은 덕분에, 그 사람은 마음 것, 그때의 커플의 생활을 엿볼 수 있던 거죠."


 결국 옛 여자에 대한 질투로 인한 싸움이었다.

 어느 커플에나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오래가는 것도 아니고, 따로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생각해 보면 그리 싸울 것이 아니었기에 시간이 잘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 최근, 헤어지기 직전, 그녀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고 한다.

 주방장은 몹시 궁금해졌다.

 결국 전 여자 친구 때문인 걸까?

 아니면 이 손님은 다른 여자 친구를 만들어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걸까?

 


 여전히 직장은커녕 기술도 마땅히 가지지 못한 어느 날.

 그 여자는 말했다고 한다.

"너 나랑 결혼할 생각은 있니?"

 남자 손님의 나이는 25살이었다. 통장에 저금한 돈은 물론, 지갑 자체에도 돈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고용주는 월급을 지급해주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했었다.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연애는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떠났다고 한다.

 그녀는 손님과 결혼을 할 수 없으니 연애를 그만둔 것이다.

 손님은 그녀와의 결혼이 아니라, 능력이 되지 않아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결혼을 위한 연애, 좀 급박해 보이는 그녀는 왜 떠났을까?

 그녀의 나이는 32살이었다. 남자 손님보다 7살 많은 연상의 여성이었다.


 남자 손님은 그 이후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동안에 그녀가 준 호의와 내조는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이라고, 즉 자신의 남편으로 만든다고 하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결국, 자기 미래를 위해서 저를 키우려던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 결혼 후가 무서워졌어요."

 너무 입장이 명확했다.

 여성은(물론 남성도) 나이가 결혼 적령기 이후로 더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의 확률은 낮아지는 편이다. 그녀는 손님을 남편으로까지 생각하며, 결혼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남자의 결혼할 자신감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손님은 달랐다.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가장이 될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여성의 그런 입장이 자신이 아닌 그녀 자신의 결혼을 위함이라고 느껴버렸다.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의심'을 한 것이다.


 의심이라는 감정의 발생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아주 명료하다.

 자신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이 남자는 나와 함께 할 건가? 내 나이 32살인데, 이렇게 밀어주는데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

'모아둔 돈은커녕 써야 할 돈도 없는데, 그리 급하게 결혼할 생각도 없고, 굳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

'그녀가 나를 좀 기다려줬으면 좋겠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고, 만약에 나를 떠난다면?'

 서로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게 바로 의심이다. 반드시, 언젠가는 이루겠다는 마음이 있더라도.

 복잡하다.

 그렇기에 의심은 확산시키기 좋다.


 주방장은 요리를 내었다.

 그가 낸 요리는 잡채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공기였다.

"저는 잡생각을 지우려고 할 때마다 재료들을 손질하는 데 신경 씁니다. 그러면 잡생각을 할 여유가 없거든요. 그리고 여라가 지 손질한 재료들이 다 들어간 잡채, 시금치, 당근, 소고기, 계란, 당면 이 하나하나가 잡생각들이라고 생각하고 식사하세요."


 손님은 어떻게 식사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아무런 반찬 없이 그저 밥 한 공기와 잡채 한 그릇이 전부.

 그의 입에 잡채는 조금 싱거워 보이는 색깔이었다. 영 식감이 끌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드세요."

 주방장은 강조했다.

 그저 식사를 하라고.

 손님은 젓가락으로 잡채를 집어 살짝 둘둘 말았다. 그리고 밥 위에 얹었다.

 입천장을 다 데어버리게 만들 것 같은 뜨거움이 눈 앞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음식은 그럴 때가 가장 침을 많이 고이게 한다.

 손님 입속으로 들어간 잡채의 풍미는 충분히 입안 여기저기에 세겨든다.

"흐아..."


 주방장은 식사를 하는 손님에게 말했다.

"그런 말도 있더군요. 요즘 시대는 20살이 되면 다 큰 게 아니라, 결혼 후에 크는 거라고. 딸을 가진 사람도, 아들을 가진 사람도 말이죠"

"그럼 결혼하지 않으면 성인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글쎄요. 하지만 결혼하고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건 틀림없는 것 같더군요. 물론 그렇지 못해서 이혼을 하는 사람도 있죠."

 주방장은 계속 말했다.

"뭐든지 완벽한 법은 없습니다. 결혼 또한 마찬가지, 어딘가에 모자란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둘이서 함께 그 부분을 메우지 못한다면 결혼할 의미가 없죠. 두 사람은 그런 걸 메울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무리하게 그녀에게 이끌려 결혼하지 않는 게 다행일지 모르겠네요."

 그 손님은 그녀와의 헤어짐에 미련이 남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괜히 스스로를 창피해했다.

 주방장은 물었다.

"그렇다면, 그 여성분에게 자신이 가장으로서 능력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해서, 그래 주겠다고 한다면, 그녀는 그 말 그대로 의심 없이 손님을 기다려 주었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여성분은 그럴지 모르죠.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더 믿음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히려 손님이 불안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어딘가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미래에 반드시 사회적인 능력이 생길 거라는 확증은 없다.

"능력은 결혼의 필수조건이 아니에요. 그렇기에 자신을 키워 줄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는 말도 그런 말에서 나온 거예요. 혹시 모르죠. 더 이상 발생할 능력이 없는데, 배우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사회적 능력이 생길지."

 주방장은 손님이 마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 물러났다.

"결혼의 필수조건은 믿음입니다."


 그는 후에 어떤 마음으로 여성을 만날까? 또 다시 연상의 여자를 만난다면 그런 고민을 할까?

 하지만 1년 후 그 손님은 3살 어린 헤어디자이너를 여자 친구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다.

 쓸데없는 기대감을 품었나 보다.

 주방장은 바로 그 둘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았다. 이 식당은 어디까지나 혼자 온 손님들을 위한 곳이다.





* 이 글은 실제 사연을 소재로 한 단편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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