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Nov 03. 2020

친한 친구일수록 지켜야 할 선은 더 많다.

소중할수록 더 소중히



 인간관계에선 '선'이라는 걸 지켜야 한다고 한다. 그런 말이 떠오르게 된 건 언제쯤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종의 '예의'로 통용되었던 것 같았다. 타인에게 할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 것 처럼, 서로 지켜줘야 할 배려가 있어야 인간관계가 계속되는 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착각하기 쉬운 게 있다.

 친한 친구일수록 더 많은 것을 포용해주고 용서해 줄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그 이전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친한 친구는 그만큼 다른 친구들 보다도 더 친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관계다. 다른 친구들 보다 이해를 해 줄 수 있겠지만, 함부로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만큼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존재다. 

 사람을 타인을 위해주는 방법을 배워야 자신 또한 존중을 받을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을 이해해주기 바라면 그건 이기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3번의 절교가 있었다. 


 첫 번째의 절교는 이유조차 모른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였지만 단 둘이 친하기보단 4명이서 서로 같이 친했던 친구였다. 그렇게 하나의 그룹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렇게 4명이서 같이 게임하고 놀고 공부하곤 했다. 하지만 A라는 친구는 B라는 친구와 싸우게 되면서 A는 그 그룹을 이탈하게 되었고 나 또한 그 친구와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다. 그게 고등학생이 되기 전의 일이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A는 억지로 B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더니 A는 나의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A는 그렇게 B 친해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B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다른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서 나를 이상한 놈으로 몰아갔다. 

 그 애는 나에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원래의 친구를 얻기 위해서 나를 그렇게 몰았던 걸까?


 두 번째의 절교는 서로의 오해와 나의 실수로 시작되었다.

 폰을 잃어버렸던 나는 좋아하는 애와 문자를 계속 주고받고 싶은 마음에 친했던 친구에게 핸드폰을 빌렸다. 결론을 따지면 내가 제때 돌려주지 않아서 싸우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10년이나 지나서 서로에게 오해가 있었고 그렇게나 싸울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친구로 되돌아가기엔 너무나도 늦은 시간이었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나 스스로를 변론하고 싶은 게 많은 사연이기도 했다. 서로 약속했던 때가 달랐었고, 무엇보다 그 친구는 워낙에 다혈질이라 다른 친구들과 워낙에 불협화음이 많았다.


 세 번째의 절교는 정말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장난을 잘못 친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 재미있는 것을 잘 공유했었고 주말에도 같이 놀았고 인터넷에서도 늘 같이 놀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장난도 자주치곤 했었고, 그것을 계기삼아 서로 웃고 놀고 했었다.

 재미있는 책이 있다면 일부러 그 친구 집으로 30분 걸어가서 건네주기도 했고, 같은 반이 되어서는 늘 옆자리에 앉고 좋은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는 친구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언제 까지곤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소한 장난이 많았다.

 어떤 때에는 그 친구가 나에게 다른 친구를 한 명 데려오면서 물었다.

"야. 솔직히 말해봐. 내가 얘보단 잘생기지 않았냐?"

 친한 친구는 얼굴이 매우 뽀얗고 입술이 빨간 게 귀여운 인상을 가진 편이었다. 반면에 그 친구가 데려온 다른 친구는 뺨에서부터 수염이 날 정도로 관리가 필요한 느낌이 바로 들었지만, 이목구비가 얄팍하지만 뚜렷해서 강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친한 친구의 편을 들어주지만, 장난 삼아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쟤가 낫지."라면서 다른 친구를 지명했다.

 그 말에 친한 친구는 얼굴에 실망감을 잔뜩 묻히면서 나를 바라봤다.

"거 봐라 인마." 

 내가 지명한 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곤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 진짜 개실망이다."

 친한 친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장난으로 그런 거라고 말하며 달래주었다. 정말 그저 장난이었다. 아마 장난이었다는 것을 잘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태껏 그래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그런 장난은 언제까지고 그 친구가 받아주는 건 아니었다.

 되려 내가 시작한 장난 하나는 그 친구에겐 '이간질'이라고 여기는 사건이 발생했고, 내 장난에 받아주지 않은 거에 당황한 나는 제대로 사과도 하지 못했다. 사과를 하기엔 그 친구는 너무나도 낯선 사람처럼 화를 냈다. 단 한 번의 화로 인해서 우리 사이엔 어색함을 낳았고 두 번 다시 예전처럼 웃지 못했다.

 그 친구도 그때 후회를 했다고 했다. 장난인 걸 알면서도 너무 심하게 화를 내었다고. 너도 선을 넘었지만 자신도 선을 넘었다고.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친한 친구로 돌아가지 못했다. 선을 지키지 못해서 우리 사이엔 친근함 보단 어색함이 더 맴돌았기 때문이다.

  친하기에, 친하다는 이유로 어떤 장난이든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어린 10대의 이야기였다.

 그때는 친한 친구일수록 나를 이해해 줄거라는 이기적인 생각보단, 친한 친구이기에 지켜줘야 할 부분이 많다고 되려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몰랐다. 



출처 pngtree



 최근의 나의 아버지는 40년이나 넘는 오랜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고 하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뭐가 화가 났던 것인지 대화조차 하는 것을 거부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대체 뭐가 불만이길래 이러는 걸까."라며.

 반대로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대체 어떤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나 오래된 친구가 등을 돌렸던 걸까.' 

 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이어져왔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 정도로 잘못한 게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었다.

 아마 그 친구분도 되려 이해를 바라며 아버지가 함부로 계속 넘었던 선에 결국 화가 났던 게 아니었을지. 아쉽기만 했다.




안녕하세요. 글쓴이 우연양입니다.

이번 글로 이렇게 만나 뵈어 기쁘고, 또 뵙게 되어 기쁩니다.


작년 2019년 12월. 독자분들이 '자신이 여태까지 [얼마나] [어떤] 사랑을 받아왔는지 되새겨 보게 될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이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책이 탄생하는 일을 맡아 너무 행복했습니다. ^^

부디 많은 분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