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Nov 07. 2021

거짓말을 해서라도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이직을 준비해왔다.

 그래도 그동안 함께했던 직장이었지만, 나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기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그 도전의 길은 너무 힘든 것은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합격을 할 자신도 없었다. 

 결론은 개인적인 스펙을 쌓아서 이직을 하는 게 답이었는데, 그게 용케도 성공했고 이직이 결정되었다.

"그런 기념으로 쫑파티라도 해야죠?"

"네? 아, 좋죠."

 이직하는 날은 3주 후에 있을 예정이었다. 일을 하고 이번 달이 끝나는 대로 바로 옮길 예정이라서 쉴 틈은 따로 없었다. 사실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긴다는 시점에서 좀 불편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회사 사무실의 사람들과 친했고 잘 지냈던 탓인지 좋은 마무리로 이어나갈 것 같아서 그것대로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 결과 나를 계기로 삼아서 5일에 3번은 매번 회사원 사람들과 회식을 하거나 저녁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회사원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게 아쉽기도 했지만, 즐거웠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 마음이 들다 보니 어째 이 회사에 들어와서 뭔가 기억에 계속 남을 법한 추억 하나가 남아 있던 것 같진 않았다. 직장은 직장일 뿐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았던 것 같았고, 일의 재미를 찾았던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나는 처음부터 여기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직하기 1주일 전.

"내일 호연 씨 생일이라서 마치고 조촐하게 한잔 하러 갈려고 하는데 가실래요?"

"네? 진짜요? 가야죠."

 그럼에도 술 마실 핑계가 또 생겼네 하는 생각을 했다.

 호연 씨는 나의 1년 선배이기도 했고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 이직을 생각을 했다면, 나보다도 더 일찍 이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능률이 좋은 사람이었다.

"흠..."

 생일이라고 하니, 그냥 축하만 해줘도 괜찮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입사했을 때부터는 아니지만, 같이 일을 하면 할수록 서로 도움을 많이 주고받던 사이였다. 확실하게 따져보자면 되려 내가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내가 도움을 줬다고 할 만한 것들은 얼마 없었다. 그만큼 이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몇 번의 생일이 지나쳤음에도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그래도 표시는 해야지 않나?"

 나는 그렇게 고민을 해봤다.

 이번 주만 지나면 못 볼 사이가 될 것이기에, 아니 무엇보다 내일 당장 생일이라고 하니까 선물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급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남자의 선물을 잘 고를 줄 아는 편도 아니었고,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선물을 고르는 것은 더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향수는 안 쓰는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의 옆에 있었을 때 향기 같은 것을 생각해봤지만, 향수 같은 건 없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옷차림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해봤다.

'딱히 무슨 게임을 하는 것 같진 않았고, 시계도 안차고 있었고, 옷을 사준다고 하기엔 사이즈도 모르고, 그냥 프리한 맨투맨 같은 거면 되려나?'

 같이 일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도움도 많이 받았으면서 아는 건 참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가까운 매장을 찾아서 그가 잘 입을 수 있는 맨투맨 상의 옷을 하나 사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했다.

 수많은 색으로 진열되어 있는 만큼, 여기선 그가 또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검은색과 흰색은 너무 성의가 없어 보였다. 결국엔 난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옆에 있는 백화점으로 이동을 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와이셔츠를 하나 구입했다.

 그냥 처음부터 이럴걸 싶었다.

 직장에 입고 출근하기에도 좋고 필요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눈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될만한 괜찮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생일.

"저는 잔업이 쪼~금 남아 있어서 이것만 마저 끝내고 합류할게요."

"그게 좋겠네요. 뭐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것도 좋죠."

 그는 그렇게 회사에 잠시 남아서 합류하기로 했다. 회사원들은 꽤나 그의 생일을 신경 써 주었다. 자신들의 돈을 모아서 케이크를 하나 사기도 했고, 회비를 걷어내듯이 2만 원씩 회식비로 내기도 했다.

"자. 부탁해요?"

 그렇게 나에게 2만 원을 주기를 바라고 있는 다른 회사원.

 보통은 생일인 사람이 자신이 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회사원들로 부터 이런 대우를 받는 것 보면 꽤나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원래 이렇게 다른 회사원들 챙기고 그랬어요?" 나는 그렇게 물었다.

"마냥 그렇진 않죠. 하지만 다들 워낙에 호연 씨한테 신세 진 게 하나씩 있다 보니까. 이러는 거죠. 아마 호연 씨도 이직을 준비하려는 것 같던데."

"아. 그래요?"

 이 회사는 꽤나 이직에 대해 관대한가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나 유감스러운 게 있다면, 다들 그가 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연어를 먹으러 갔다는 점이었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섞을 기회가 나지 않아 선물을 주기에 묘하게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이 선물을 준다면 그 틈에 끼어서 주려고 했지만, 분위기를 보니 그에게 선물을 주려고 준비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괜히 들떴던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직장동료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에게 선물을 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랬다. 이렇게 챙겨주면 된 거지 선물까지 줄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보니 괜히 혼자 준비한 선물이 묘했다.

 1차가 끝나고 2차로는 그가 좋아한다는 닭집으로 향했다. 그 가게는 정장을 입고 셔츠를 입고 있음에도 술 판매의 명목으로 각자의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럴 땐 묘하게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곤 각자 웃으면서 주민등록증을 제시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 씻고 누웠을 땐 이미 새벽 1시가 넘어가려고 했다.

 그 선배의 생일이 이미 지나갔었고, 나는 결국 선물을 건네주지 못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으로 SNS을 살펴보며 잠을 청하기로 했다.

"어?"

 그렇게 스마트폰을 살펴보던 중에서 처음으로 알아낸 게 있었다.

"그 사람 전화번호가 있었네?"

 나의 전화번호록에는 그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언제 서로 교환했던 건지 기억도 잘 나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가 내 번호를 아는 것이라면 모를까, 나 또한 있다는 걸 보면 서로 주고받은 것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그의 전화번호를 페이스북에 검색을 해보았다.

 그는 SNS를 하지 않는 편으로 보였다.

 그다지 업데이트되는 것도 없었고, 친구 등록도 되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만들어 놓기만 한 계정으로 보였다.

 좀 더 살펴보아서 그의 등록 정보를 보았는데, 묘한 게 하나 있었다.

 오늘은 2월 17일이었다. 이미 새벽으로 넘어가서 18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계정 정보에 등록된 생일은 3월 13일이었다.

"음?"

 보통은 음력 생일이 양력보다 빠른 경우는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만약 그의 생일인 오늘이 음력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2월 17일이 생일이라고 했고, 얼핏 본 그의 주민등록증에도 2월 17일이 생일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담 그건 양력 생일이라고 하는데, 양력 생일보다 한 달 정도 늦은 음력 생일은 대체 뭐지?

 나는 통합사이트에 2월 17일을 검색했다.

 그랬더니 바로 양력 생일이 변환되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나이까지 고려해서 확인해 보았다.


 결과는 그러했다.

 음력 2월 17일과 양력 3월 13일은 같은 날에 태어난 사람의 것이었다.(1990)


 그는,

 음력 생일로 왜 양력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아니, 거짓말을 한 걸까?

 왜?

 괜히 궁금해졌다.



 하지만 다음날이 된다고 해서 곧장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 수 없었다.

 평소에도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데, 그런 걸 알아낸 것을 다른 사람 있을 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면 뭔가 잘못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퇴사하는 날이 다가왔다.

 매일 같이 할 줄 알았던 회식은 없었다. 이전에 많이 해서 상관은 없었지만, 막상 스스로가 그런 걸로 합리화하려는 것을 생각하니 조금 쓸쓸해지기도 했다.

 한 사람씩 퇴근을 하면서 사람들은,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건강 챙기면서 잘 지내요."

 그런 말을 남기면서 어깨나 등 한번 토닥이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가 남아있었다.



 처음부터 빠졌던 건 아니었다.

 그저 보면 볼수록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고, 이상형이나 나의 취향을 떠나서 그저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변화되어갔다. 하지만 내 마음을 드러낼 용기는 없었고, 나름대로 표현을 한다고 해 봤지만 영 반응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주변 동료들이 눈치를 챌 정도였는데, 그걸 모르는 그녀는 생각보다 둔감한 편이 아닌가 싶었다.

 마냥 그런 점도 좋다고 생각했다.

 혹여나 나중에 나의 행동 이유가 좋아서 그랬었던 거라고 알게 된다면, 그녀의 머릿속에선 나에 대해 무언가 좋지 않은 선입견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건 내 성격 그대로 그녀에 대한 태도로 맞춰졌다.

 겁쟁이인 만큼 조심스럽다는 표현을 할 뿐, 그저 소극적으로 보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면 모를수록, 더 내 마음을 알려주고 싶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꼭꼭 숨어 감추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한 손길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친절 마냥 똑같이 행동을 했고, 단 둘이서 대화를 하기보다는 거의 매번 다른 사람들 틈에서 끼어서 대화에 참여하곤 했다.

 하지만 역시 단 둘이 있으면 대화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그건 그저 내가 부끄러워했던 게 컸다.

 그런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직을 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웹툰 같은 것에서나 보던 덜컹거린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급해졌다.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표현을 감추었던가 속상해했다.

 사실 그녀가 여길 떠난다고 하더라도 내가 마음먹고 연락을 시도하고 만남을 시도하면 만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던 만큼 그녀가 이곳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좋아한다고 다가갈 수 있는 것이고, 이렇게 떨어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기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늘 평소의 상황을 좋아했던 것이다.


 이러니까,

 연애를 하는데 실패할 확률이 높은 거겠지.

 이러니까,

 늘 짝사랑만 하고 끝나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거짓말까지 했다.

 며칠 후면 나의 생일이라고,

 사실 그건 회사 정보판에 다 올라가는 것이기에 거짓말을 해도 바로 들통이 난다.

 하지만 이미 나의 사정을 아는 회사원들은 그런 나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날까지 자리를 먼저 비워주기까지도 했다.


 아마 그 사람들 눈에는 마치, 아주 답답한 고구마를 연상시키게 하는 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물었다.

 SNS를 찾아봤었다고, 그런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생일이 다른 것 같았다고.

 라고 말하지만 말끝은 흐려져 있었다.

 무언가의 해명 같은 걸 원하는 듯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충분히 내가 더 솔직하고 편하게 대답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렇게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어요. 아쉽지 않게. 아니 그래도 아쉽겠지만."

 그 말에 그녀는 "네?"라고 되물었다.

 한참 동안 내 심장은 크게 뛰고 있었다.

 이미 그녀가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렸지만,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만큼 내 심장소리를 난 듣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나는 오늘 겁쟁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한참을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어쩌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1초가 너무나도 느리게 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릿속은 굳어가는 것 같았다.

 분명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또 겁쟁이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한참을 꾸물 거린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서 몸을 섞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