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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2. 2016

09. 페라리 디자이너는 개집도 디자인한다.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페라리의 디자이너인 마르코 모로시니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그는 열심히 디자인 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결코 자동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작업 시간의 절반 정도는 핸드백, 허수아비 의상, 강아지 집을 디자인하는 데 씁니다.” 모로시니가 괴짜라서 그런 걸까? 

   

  
그가 강아지 집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최신 트렌드는 여성들이 끌고 가는데, 여성들을 따라가지 못하면 제아무리 페라리라도 자동차 디자인을 선도할 수 없습니다.” 모로시니가 강아지 집을 디자인하는 이유는 전혀 새로운 자동차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서다. 다른 자동차의 디자인을 연구해서는 절대 자동차를 뛰어넘는 디자인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따라서 최신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자 매력이다.
     
한 브랜드가 만약 100년 이상 이어가고 있다면 그 비결이 뭘까? 그 비결은 옛것을 유지하면서 최신을 추가하는 역설적인 균형의 조화에 있다. 기존 고객들의 눈높이를 맞추면서도 신규 메뉴를 개발하여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며 계속 신규 독점 시장을 창출해나가는 것이다.
     
100년을 넘는 가게들은 ‘새로움’이 주는 위력을 잘 알고 있다.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 최고의 스테이크하우스 올드 홈스테드(Old Homestead), 112년 동안 프랑스 초콜릿의 역사를 매일 써내려 온 이르상제르(Hirsinger), 19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터키 이스탄불의 디저트 명가 카라쿄이 귤류올루(Karakoy Gulluoglu). 이들은 모두 역설적인 균형을 모토로 태생에서부터 현재까지 기나긴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올드 홈스테드의 사장 그레그 셰리는 손님 테이블에 앉아 미디엄 웰던으로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제공한다. 그는 손님의 입에 스테이크가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속삭이듯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가게에는 4가지 음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 소고기, 두 번째 소고기, 세 번째도 소고기, 네 번째도 소고기입니다.” 입안에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그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레그 셰리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140년 전처럼 변함없이 스테이크를 구울 겁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140년의 역사는 반복만으로 만들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릴 때 올드 홈스테드는 일본산 소고기를 수입해 비장의 신메뉴를 선보였다. 바로 고베 버거다. 고베 버거의 동그란 소고기 패티는 굽기 전의 선홍빛 빛깔을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1988년 당시 햄버거 하나의 가격이 무려 15만 원. 사람들은 올드 홈스테드가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이 ‘미친 가격’은 이유가 있었다. 일본에서 소고기를 직수입해온 탓에 재료 가격이 무려 50%에 육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행을 좇는 뉴요커들은 올드 홈스테드의 이 미친 도전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미국 전역이 들썩였다. 이 화려한 데뷔 이후 고베 버거는 현재 자국산 소고기로 패티를 교체했고, 매일 200개 이상의 패티를 구워내면서 쌓인 숙련도를 바탕으로 가격을 3분의 1로 내렸다. 고베 버거와 같은 새로운 메뉴는 140년 전 오픈 첫날부터 구워냈던 설로인 스테이크와 같은 전통적인 상품과 잘 어우러져 올드 홈스테드의 생명력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프랑스의 수제 초콜릿 명가 이르상제르의 사장인 에두아르 이르상제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산과 들을 쏘다닌다. 고객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매년 1가지 신제품을 선보여야 합니다. 그건 약속이자 소명입니다.” 에두아르가 개발하는 신제품의 목표는 단 하나다. 이제까지 없던 맛을 고객들에게 선보이는 것. 이르상제르는 50가지의 막강한 초콜릿 라인을 보유하고 있지만 매년 1가지의 신무기를 장착함으로써 늘 새로운 브랜드 인지도를 쌓아간다. 이런 점은 이스탄불에서 디저트의 지존이라고 불리는 카랴쿄이 귤류올루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터키에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는 맛은 있지만, 가격이 비싼 카랴쿄이 귤류올루의 대표 메뉴 바클라바의 가격을 절반으로 내리라고 일방적으로 명령했다. “밤을 새워 고민했지만, 가격을 반으로 내리면 품질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카랴쿄이 귤류올루의 사장은 바클라바를 만들지 않을 것을 결정한다. 군사정부는 언젠가 물러날 것이지만 고객의 신뢰는 영원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랴쿄이 귤류올루는 다른 디저트를 팔면서 1년을 버텼다. 마침내 고객들의 원성과 항의를 이기지 못한 당국의 조치로 다시금 바클라바를 팔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카랴쿄이 귤류올루는 대표 메뉴인 바클라바만으로도 충분히 가게를 유지할 수 있지만 새로운 메뉴 개발을 열심히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침 메뉴인 뵤렉이다. 같은 가게를 찾는다 할지라도 아침 손님과 점심 손님의 속성은 완전히 다르다. 간판메뉴인 바클라바는 주로 점심 이후에 팔린다. 아침 손님들은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빵을 먹고 출근하기에 반복 필수재 구매의 성격이 강하고, 점심 이후의 손님들은 기호 구매의 성격이 강하다. 카랴쿄이 귤류올루는 그 품질 그대로를 선호하는 수준 높은 신규 고객 독점군을 개척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결과가 신제품 개발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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