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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08. 2016

04. 저주받은 학번과 제로금리 시대

<부동산 위기인가, 기회인가>

우리나라 94학번들은 자신을 스스로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부른다. 대학 4학년을 마치고 취직해야 하는 시점에 외환위기(1997)가 터졌다. 그때는 외환위기나 모라토리엄(Moratorium)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나라가 달러가 부족해 외채를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또 그 부족한 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 정도로만 알았다. 

     
외환위기의 진정한 의미는 그들이 취업시장에 나서면서부터 체감하게 되었다. 정말로 운 좋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직전 세대까지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면 웬만큼 원하는 직장에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1980년대 졸업한 선배들에 비하면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일자리와 타협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외환위기를 맞이한 은행과 기업은 구조조정을 강요당했다. 500~600%에 달하던 부채비율을 150% 미만으로 낮춰야 했고, 수익성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 수준으로 높여야 했다. 데리고 있는 직원도 내보내야 하는 판에 신입사원을 뽑을 틈은 없었다.
     
운 좋은 친구들 일부는 신입사원 채용 합격통지서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상당수가 바로 합격취소통지서도 받아들었다. ‘당신을 신입사원으로 뽑으려고 했으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뽑을 수 없으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 이런 뜻의 무미건조한 서류 한 장이 취업지망생에게는 날벼락과도 같은 충격이 되었다. 학생들은 서둘러 대학원에 진학했다. 2년쯤 지나 경기가 나아지면 그때 다시 취업의 문을 두드리리라. 그러나 이것은 단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에는 대우사태(1999)가 터졌고, 그 뒤에는 카드대란(2003)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세대는 유난히 자영업 비율이 높다. 때를 놓쳐 취업을 포기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난히 미혼여성도 많다. 요즘 말하는 골드미스(Gold Miss)가 그 나이 또래다. 취업이 늦어지면서 결혼을 미뤘으나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나니 혼기를 놓친 것이다. 사실 이들을 전후로 여성들 사이에 미혼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리고 당연히 출산율도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94학번들은 그렇게 외환위기를 이해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외환위기를 맞이하고서도 외환위기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외환위기는 ‘이제 고도성장은 끝났다.’는 성장 신화의 종언이었다. 성장 신화의 종언,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디플레이션이다. 제로(0) 성장, 제로 일자리, 제로금리 모두 디플레이션의 다른 말이다. 지금 우리는 제로금리 시대를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제로금리 시대, '은행이 이자를 주지 않는다'는 사전적 의미의 이면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우리는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외환위기를 맞이했던 94학번 졸업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로금리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제로금리가 반가운 사람도 있다. 대출받아서 돈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다. 연봉 5,000만 원짜리 공무원은 ‘걸어 다니는 50억 원’이다. 7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장안의 명문 SKY 대학 출신들이 대거 몰리는 것도 비난부터 할 일은 아니다. 투자자의 눈으로 보면 ‘안전한 월급, 안전한 연금’,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그만한 투자처는 없다.
     
제로금리가 반갑지 않은 사람은 누가 뭐래도 이자 생활자이다. 은행에 돈을 넣어 놓아봐야 이자가 안 나온다. 퇴직금 1억 원을 은행에 넣어봐야 월 20만 원을 건지지 못한다. 몇 년 전 저축은행 대량 부실화 사태(2011)가 터졌다. 옛날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서 ‘은행’으로 둔갑했다. 이자도 고금리였다. 4% 이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저축은행 후순위채권으로 몰렸던 이들이 이자는커녕 원금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게 된 것이 저축은행 사태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레밍스(들판에서 나그네처럼 몰려다니다가 어느 날 절벽에서 떼로 떨어져 죽는 나그네쥐)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열심히 뛰어가는 곳이 어딘지 알지 못한다. 저축은행의 4% 금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것처럼 제로금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 이면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몰려다닌다. 그 끝에 절벽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니면 대초원이 펼쳐져 있는지 모른 채 말이다.
     
제로금리 시대는 원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아무도 그 물꼬를 되돌릴 수 없다. 오로지 대처할 수밖에 없다. 제로금리는 쓰나미처럼 우리를 휩쓸어갈 것이다. 손 놓고 넋 놓고 있던 사람들은 쓸려갈 것이고, 미리 준비한 사람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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