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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08. 2016

02. 허드슨 강의 기적과 휴브리스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이 흔들릴 때>

수에즈 운하는 홍해와 지중해를 관통하여 세계의 항로를 바꾼 대역사(大役事)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것은 나폴레옹이었고, 총감독을 맡아 완공한 것은 토목기사이며 외교관이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 1805~1894)였습니다.

그는 첫 삽을 뜬 후 무려 10년 동안 불굴의 의지로 흙을 파내어 대역사를 완공했습니다.

그 성공은 그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주면서 그를 일약 운하계의 대스타로 부상시켰고, 그로부터 12년 후 파나마 운하 공사에 전격 기용되게 했습니다.

수에즈 운하에 투자하고 그 이용료를 받아 대박을 터트린 금융업자들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기로 했고, 그 공사의 책임자로 레셉스를 지목한 것입니다.

레셉스는 또 한 번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1881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파나마 운하공사에 착수한 그는 8년간 악전고투하다 결국 포기했고 그의 회사는 파산했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세워진 곳은 해발 15m인 사막의 평원이었고, 파나마 운하 공사현장은 해발 150m의 열대 밀림이었지만, 레셉스는 극명한 환경 차이와 135m의 고도차를 모두 무시하고 수에즈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무작정 파나마의 산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레셉스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했던 것은 그의 ‘휴브리스(Hubris)’ 때문이었습니다.

‘극단적 오만, 자기 과신’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휴브리스’에서 기인된 저 용어는 역사학자 토인비가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성공에 도취되어 자신의 방법과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사람을 호칭했던 용어입니다.

수에즈 운하 건설을 성공한 레셉스가 빠져들었던 ‘휴브리스’는 너무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55,000명을 동원하여 8년간 공사를 진행하면서 전체 출역인원 대비 40%에 달하는 22,000여 명의 근로자가 사고와 말라리아로 희생됐고, 약 10조 원의 공사비가 사라지면서 회사는 파산했고 레셉스 자신도 정신병을 앓으며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습니다.

한반도 전체 인구가 대략 2천만 정도였던 그 무렵에 그것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손실이었습니다.

파나마 운하는 그로부터 15년 후인 1904년 미 육군 공병대가 투입되어 갑문식 운하로 공법을 변경하고 43,000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10년간의 고전 끝에 400조 원이 넘는 비용과 6천 여 명의 희생을 치르고 191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전시(戰時)의 사상자 비율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고 완성된 물길은 지금 매년 파나마 국민 총생산의 25%에 이르는 통행료 수입을 올리면서 국가경제의 주춧돌이 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땅을 파서 수위를 일치시키는 대신 계단식 수문과 부력을 이용해서 배를 상하로 움직이며 수평 이동하는 갑문식 공법은 레셉스가 파나마 운하 공사를 시작할 무렵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파나마 운하의 지형에 가장 적합한 공법이었지만 레셉스에게 채택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레셉스의 ‘휴브리스’에서 기인한 오판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천문학적인 돈을 허비했으며, 20년이 넘는 시간을 허송했습니다.

반면에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큰 성공을 이룬 사례입니다.

2009년 1월 뉴욕에서 155명을 태운 항공기가 이륙 2분 만에 새떼와 충돌하여 엔진이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고, 비행 관제사는 사고대응지침에 따라 기장에게 인근 공항으로 회항하여 비상 착륙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4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장은 동력을 모두 잃은 비행기로 초저고도에서 공항 회항이 불가능한 현장 상황을 직관하고 매뉴얼에서 벗어나 인근의 허드슨 강에 비상착수(非常着水)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 선택으로 155명의 승객 전원이 무사 생존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당시의 사고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일반적 사고대응지침을 따랐을 경우 탑승객 전원 사망은 물론, 시가지 추락으로 인한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을 사고였습니다.

항공기 사고의 특성상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은 현장 상황을 통찰한 ‘체슬리 슐렌버거’ 기장의 냉철하고 유연한 판단의 결과였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의해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2016년 9월 전 세계에 동시 개봉되었습니다.


하나의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 방법이 모든 곳에 다 통하는 절대적 진리라고 믿어버리는 ‘휴브리스(Hubris)’는 우리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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