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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29. 2016

09. 삶이 내게 준 독이 언젠가 항생제가 될까?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톡스는 일종의 독(toxin)이다. 얼굴에 주름을 없애는 성분으로 알고 있는 보톡스는 상품명이다. 성분은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으로 근육 수축 주사제의 일종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상한 통조림에서 생기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박테리아가 만든 독소다. 식중독을 일으키거나 생화학 무기 제조용 독소가 약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사시 치료에 사용됐다. 천 배로 희석해 주사하면 눈 근육의 비정상적인 운동이 멈추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 독소를 근육에 주사하면 신경전달물질을 막아 근육의 움직임을 일정 기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특이성이 미용 시장에 유용할 것을 알아챈 미국의 제약 회사가 보톡스란 이름으로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1990년부터 성형외과에서 눈가 주름을 없애는 미용 목적으로 사용됐다. 독이 약이 된 경우다.
     
치매로 불리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중 하나는 아밀로이드반(Amyloid Plaque)이라는 독성 단백질에 있다. 몇몇 과학자들은 뱀의 독에 그 독성 단백질을 제거하는 답이 있다고 밝혔다. 그들 연구진은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살무사(Bothrops asper)의 독에서 이 분해 효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는 효소의 합성 분자를 개발했다. 초기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생긴 셈이었다. 그들의 연구는 최근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실렸다. 성공한다면 독을 독으로 치료하게 된 경우다.
     
인체에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알레르겐(allergen)을 제거하고 치료물질만을 정제하여 만든 주사액이 봉독이다. 꿀벌의 독을 이용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오래된 치료법 중의 하나다. 봉독 요법은 국제적인 표준 치료법으로 만성 통증과 면역질환을 치료한다. 봉독은 항생제 약 100배의 소염 진통 효과가 있다. 혈관을 따라 독이 퍼지는 뱀독과 달리 봉독은 신경 주위를 따라 흘러 통증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 독 자체가 약인 경우다. 
   

  
비상(砒霜) 역시 독이다. 사극에 나오는 하얀 그릇에 담긴 사약은 비상이 원료로, 비소 화합물인 삼산화비소(As₂O₃)가 곧 비상이다. 적은 양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 있으며,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비상은 한편으로 약이다. 극소량의 비상은 오래전부터 질병 치료에 쓰였다. 서양에서는 성병 치료의 특효약으로 쓰였고, 흰 피부를 만들기 위한 화장품으로도 사용되었다. 미국에서는 비상을 골수암 치료제로 승인하기도 했다. 비상은 제대로 쓰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이독제독(以毒制毒)인 셈이다. 
     
사실 인생에서 모든 실패는 독이다. 어떤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실패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떤 실패는 실패 자체가 성공이다. 실패는 실패를 어떻게 재사용하느냐에 따라 독 혹은 약이 된다. 나는 여러 번의 내 실패를 기억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그런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 내 인생에 많은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빨리 익으면 빨리 썩고, 빨리 피는 꽃은 빨리 지고, 빨리 붙는 불은 빨리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사업들은 어디가 벼랑인지 모르고 달리는 차에 올라탄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독을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 나이 30대에 하루 저녁에 1년 수입을 벌어내던 선물과 주식거래라는 독을 마셨다. 겨우 살아남은 뒤에는 근처도 가지 않는 벼랑이 되었다. 대박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은 늘 대박만 찾다 빈털터리가 된다. 그렇게 번 돈은 돈 자체의 무게감이 없어서 공중으로 사라지고 만다. 순간의 행운을 좇는 사업가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모두를 만족하게 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일에 관해서도 관심을 버렸다. 일을 그르치고 자존심에 상처받는 독을 마셔봤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기사의 댓글이나 비난 혹은 칭찬에 둔감하다. 그런 것들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던진 돌과 같다. 그러니 일부러 달려들어 내 얼굴에 돌을 갖다 댈 필요가 없다. 누군가 수군거리는 말 따위 역시 내가 들을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 뒤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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