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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16. 2017

10. 당신의 빛 안에서 우리는 빛을 보나이다.

<왓칭 수업>

명상에 나를 맡기는 시간이 늘어갈 때, 어느 날부터 제 눈앞에 선명한 ‘빛’이 나타나는 걸 보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신비체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비취색 띠가 나를 둘러싸기도 하고, 커다란 황금색 고리들이 머리 위에서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황홀한 연보라빛 덩어리가 내 이마를 향해 회오리쳐 들어왔다 나가기도 했습니다.

명상하다 보면 신비체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종교를 기반에 두고 하는 명상이라면 그 신비체험은 종교적 신념을 더욱 두텁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반면 스승들은 이러한 신비체험을 너무 중히 여길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때에 따라 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는 저의 체험을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소중한 이정표로 삼았습니다. 내 마음이 고요해지면 나는 빛 세계에 들어갑니다. 무한한 사랑과 평화가 흐르는 곳입니다. 반면, 내 마음이 온갖 시끄러운 생각으로 가득하면 나는 물질세계에 빠져듭니다. 상처와 고통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어느 날 새벽, 부엌 싱크대 옆 물 사발에 들어있는 어머니의 틀니를 보고 어머니의 슬픔을 느낀 적 있습니다. 몸을 지닌 누구나 겪어야 하는 슬픔이지요. 하지만 틀니가 어머니가 아닌 것처럼 팔다리도, 심장도, 두뇌도 ‘진정한 나’는 아닙니다.

몸의 70%는 물입니다. 나머지 30%는 음식으로 만들어진 살, 근육, 뼈입니다. 말하자면 몸은 물과 음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몸은 물과 음식을 끊임없어 집어넣어야만 그 모양이 유지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몸에서 물과 음식을 몽땅 빼내 버리면 뭐가 남을까요?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오로지 텅 빈 공간만 남습니다. 이 텅 빈 공간에 흐르는 마음이 ‘진정한 나’입니다.

마음은 아무 경계가 없습니다. 물질세계는 이 무한한 마음이라는 스크린 위에, 생각이라는 필름이 돌아가면서 상영되는 영화입니다. 생각만 내려놓으면 빛과 사랑이 흐르는 고요하고 무한한 공간일 뿐입니다.

물질세계는 생각으로 가려진 어둠의 세계입니다. 생각 자체가 시한부이기 때문에 생각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도 시한부 생명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슬픔과 상처가 생깁니다. 빛의 세계는 슬픔과 상처에서 벗어난 사랑과 치유의 세계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치유하고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위험하다’는 영화 <데미지>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왜 위험할까요? 상처를 몸속에 가둬놓기 때문입니다. 내 몸이 나의 전부라 믿으니 자연히 상처가 내 몸속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내 몸에 갇힌 상처도 아픔을 느낍니다. 그래서 내 몸을 흔들어대는 겁니다. 내 몸이 나의 경계선이 아닙니다. 나의 경계선은 내가 상상하는 대로 끝도 없이 넓어지는 무한한 마음입니다. 이 간단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갇혀있던 상처는 풀려납니다. 내가 사랑받을 권리를 갖고 태어나듯, 상처도 치유 받을 권리를 갖고 태어납니다.

상처를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자유를 찾아 떠나도록 마음의 공간을 넓혀주어야 합니다. 그 공간 속에 흐르는 빛과 사랑의 품속에서 치유와 안식을 얻도록 헤아려주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가둬놓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영원한 빛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태어난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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