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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17. 2017

04. 잘못은 과감히 인정하라.

<최후의 승자가 되라>

목숨을 바친 충신, 주가

한 4년인 기원전 203년, 항우가 유방을 형양에서 포위해 위급했을 때 유방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면서 주가에게 형양성을 지키게 했다. 항우가 형양성을 점령한 뒤 주가를 회유해 초나라 장수로 삼으려고 했다. 주가가 항우를 향해 크게 꾸짖었다. “그대는 속히 유방에게 항복하도록 하라. 그러지 않으면 곧 사로잡힐 것이다!”
   
「장승상열전」은 항우가 격노해 주가를 삶아 죽였다고 기록했다. 유방에 대한 충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주가는 항우의 회유를 단호히 뿌리치다가 팽살을 당하고 만 것이다. 항우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으로 거부만 했어도 혹형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가는 항우를 크게 질타함으로써 항우의 화를 돋웠다. 성정이 매우 강직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사촌 동생인 주창도 그에 못지않았다. 『사기』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더한 감이 있다.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주창을 벗으로 대한 유방

한번은 유방이 한가롭게 쉬고 있을 때 주창이 안으로 들어가 어떤 일을 고하고자 했다. 이때 마침 유방이 총희인 척희(戚姬)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문 원문은 ‘방옹척희(方擁戚姬)’이다. 바야흐로 척희를 끌어안고 있었다는 뜻이다. 주창이 보고 차 궐 안으로 들어갔을 당시 유방은 내실에서 척희를 끌어안고 낯 뜨거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창이 뒤돌아 달아나자 유방이 뒤쫓아 달려와 붙잡았다.’는 글이 이를 뒷받침한다.     

주창의 강직한 성품을 고려할 때, 유방이 단순히 척희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려 황급히 달아났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유방도 달아나는 주창을 뒤를 곧바로 쫓아가 붙잡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황제의 몸으로 보고차 찾아 왔다가 급히 달아나는 신하의 뒤를 쫓아가 붙잡은 것도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창을 쫓아가 잡은 뒤 주창의 목을 타고 앉은 점이다. 마치 아이들의 병정놀이를 연상시킨다.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을 알려준다.
     
첫째, 황제와 어사대부라는 공식적인 군신 관계에도 불구하고 유방이 사적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속사정을 털어놓고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주창을 친근하게 여겼을 가능성이다. 그렇지 않고는 달아나는 신하의 뒤를 쫓아가 붙잡은 뒤 목을 타고 앉을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유방은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도 체통을 생각하지 않는 호방한 모습을 보였을 가능성이다. 『사기』 「고조본기」 등의 여러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유방은 주창이 뒤돌아 달아나자 곧바로 그 뒤를 쫓아가 주창을 붙잡은 뒤 그의 목을 타고 앉아 물었다.
     
“나는 어떤 군주인가?”
주창이 고개를 곧추세우고 말했다.
“폐하는 하나라 걸이나 은나라 주와 다를 바 없는 폭군입니다.”
   
하나라 걸과 은나라 주는 폭군의 상징이다. 『사기』의 기록을 볼 때 유방이 하나라 걸이나 은나라 주와 같은 폭군의 행보를 보인 적은 없다. 정전에 나와 근무해야 할 시간에 침전에서 총희인 척희를 얼싸안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경우든 분명 주창의 지적은 과한 것이다. 황제를 비롯한 대다수 군주는 모든 신하로부터 이런 비난을 받으면 크게 화를 내기 마련이다. 한때 사실상 황제와 거의 진배없는 서초패왕 자리에 오른 항우가 주가를 팽살한 게 좋은 사례다. 사실 유방이 주창으로부터 더 큰 욕을 먹은 셈이다. 그런데도 유방은 크게 웃으며 주창의 지적을 달게 받아들였다. 「장승상열전」의 다음 대목이 그 증거다.
     
“유방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후 주창을 더욱 삼가게 됐다.”
   

잘못은 바로 인정하고 개선하라.

예나 지금이나 최고통치권자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직언을 하는 것은 사실 목을 내놓는 일이나 다름없다. 한비자는 그 위험을 역린(逆鱗)으로 표현했다. 『한비자』 「세난」의 대목이다. 
     
“무릇 용이란 동물은 유순한 까닭에 잘 길들이면 능히 타고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그 턱밑에 한 자나 되는 ‘역린’이 거꾸로 박혀 있다. 사람이 이를 잘못 건드리면 용을 길들인 자라도 반드시 죽임을 당하게 된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 유세하는 자가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 설득할 수만 있다면 거의 성공을 기할 수 있다.”
   
유방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입만 열면 욕을 내뱉는 험한 말버릇을 가지고 있었고 정전에 나와 신하들과 국사를 돌봐야 할 시간에 총희를 끼고 노는 식의 호색이 있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이를 수긍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가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거친 항의에 화가 난 나머지 혹형을 가한 항우의 좁은 도량과 대비된다. 항우는 알량한 자존심과 좁은 도량 때문에 패망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항우의 휘하에 있다가 유방에게 귀의한 한신의 지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회음후열전」에 따르면 유방은 자신에게 귀의한 한신을 대장에 임명한 뒤 이같이 물었다.
“승상 소하가 대장에 대해 자주 얘기했소. 그대는 무엇으로 과인에게 계책을 일러줄 생각이오?”
한신이 사례한 뒤 오히려 반문했다.
“지금 동진하여 천하의 대권을 다툴 자는 항왕이 아니겠습니까?”
유방이 대답했다.
“그렇소.”
한신이 물었다.
“대왕이 자신을 항왕과 비교할 때 용감하고 사납고 어질고 굳센 용한인강(勇悍仁彊)에서 누가 더 낫습니까?”
유방이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만 못하오.”
   
한신이 재배(再拜)하며 칭송한 뒤 이같이 말했다.
“저 또한 대왕이 항왕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찍이 그를 섬긴 적이 있기에 그의 사람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화를 내며 큰 소리를 내지르면 1천 명이 모두 엎드립니다. 그러나 현장을 믿고 병권을 맡기지 못하니 이는 일개 사내의 용기인 필부지용(匹夫之勇)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자애롭고 말씨 또한 부드럽습니다.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눠줍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이 공을 세워 봉작해야 할 때는 인장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차마 내주지를 못합니다. 이는 일개 아녀자의 어짊인 부인지인(婦人之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비록 천하의 패자가 돼 여러 제후를 신하로 삼았지만, 관중에 머물지 못하고 팽성에 도읍했습니다. 또 의제와 맺은 약속을 저버리고 자신이 친애하는 정도에 따라 제후들을 왕으로 삼은 것은 불공평한 일입니다. 제후들은 그가 의제를 옮겨 강남으로 쫓는 것을 보고는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 그 군주를 쫓아내고 자신들이 좋은 땅의 군주가 됐습니다. 그의 군사가 지난 곳은 학살과 파괴가 휩쓸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천하의 많은 사람이 그를 원망하고 있고, 백성은 가깝게 다가가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그의 강한 위세에 눌려있을 뿐입니다. 그가 비록 패자로 불리고 있으나 실은 천하의 인심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위세는 이내 약화하기에 십상입니다. 지금 대왕이 그의 정책과 정반대로 천하의 용장에게 믿고 맡기면 주멸하지 못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천하의 성읍을 공신에게 봉하면 심복하지 않을 신하가 어디 있겠습니까? 의병의 기치를 내세워 동진하고자 하는 병사를 거느리면 이들의 전진에 놀라 흩어져 달아나지 않을 적병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점은 버리고 장점을 잡아라.

유방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했다. 유방이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했던 항우를 제압하고 천하를 거머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진승상세가」에 나오는 진평의 유방과 항우에 대한 비교 평가가 이를 웅변한다.
     
“항우는 사람을 공경하고 사랑합니다. 청렴하며 지조 있고 예를 좋아하는 선비들 대부분 그에게 귀의했습니다. 그러나 논공행상을 하고 작위와 봉지를 내리는 데 매우 인색합니다. 선비들이 그에게 완전히 귀의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지금 대왕은 오만하고 예의를 가볍게 여깁니다. 청렴하고 절개 있는 선비들이 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대왕은 작위와 봉지를 아낌없이 내리는 까닭에 청렴과 절개를 돌아보지 않은 채 이익을 탐하며 수치를 모르는 자들이 대거 한나라로 귀의했습니다. 만일 양자의 결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면 손만 휘저어도 쉽게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방이 항우를 제압한 데에는 당대 최고의 무략을 자랑하는 한신과 같은 인물을 손에 넣은 게 결정적이었다. 사람을 널리 포용하는 분방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항우는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었음에도 알량한 인정(仁情)과 힘만 자랑하는 무용(武勇)인 ‘부인지인’과 ‘필부지용’에 함몰된 나머지 손에 넣은 천하를 유방에게 ‘상납’한 꼴이 되었다. 정반대로 험구와 호색 등의 ‘건달’ 기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알면 곧바로 고치며 사람들을 포용하는 덕목은 유방이 천하를 쥐는 큰 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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