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Feb 13. 2017

07. 내 집 마련하려다 전 재산을 날리다.

<정의는 약자의 손을 잡아줄까>

“내 집 한 칸 마련하는 게 이렇게 힘든 겁니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까”

   
부산에서 만난 금정주 씨는(가명) 저를 붙잡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결혼한 지 20년이 됐지만, 아직 ‘내 집’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살기 좋은 동네에 가족과 함께 노후를 꾸려갈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부산 지역의 일반적인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평균 1,000여만 원. 그런데 평당 분양가가 700만 원인 지역 주택조합 아파트를 발견했습니다. 조합 업무 대행비와 계약금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시중 분양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신중한 성격으로, 이리저리 꼼꼼하게 따져봤습니다. 이 조합이 정식 인가를 받은 조합인지부터 살펴봤습니다. 아파트 홍보관이 지어져 있고 모델하우스도 있기는 했지만, 아직 정식 인가를 받은 조합은 아니었습니다. 조합이 인가를 받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안될 가능성도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합 설립인가를 받으려면 분양 예정 세대수의 절반이 넘는 조합원을 모집해야 하고, 토지 소유주 80% 이상의 동의도 받아야 합니다.
     
그는 몇 개월을 기다리며 이 조합의 사업 추진 실현 가능성을 살폈습니다. 몇 달 뒤 해당 조합은 전체 예정 세대수의 절반이 넘는 500여 명의 조합원을 모집했습니다. 그는 안심하고 조합에 가입했습니다. 내 집을 갖게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말입니다.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가 들어설 땅에 또 다른 아파트가 분양되고 있다.

하지만 금씨의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가 가입한 지역 주택조합이 지자체로부터 승인이 반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자체는 해당 건물의 층수가 제한 기준을 넘었고, 토지 소유주 동의 비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합 승인을 반려했습니다. 조합원들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보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또 벌어졌습니다. 지역 주택조합 아파트를 분양한다던 바로 그곳에 또 다른 지역 주택조합이 아파트를 분양한다며 홍보관을 건설하고 조합원 모집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한 지역을 대상으로 두 개의 지역 주택조합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 조합원들은 경악했습니다. 지자체를 상대로 이게 무슨 일이냐며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지자체는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파트 홍보관은 가설 건축물에 들어가기 때문에 허가 사항이 아니라 신고 사항인 만큼 요건을 맞춰 오면 지자체는 건축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지역 주택조합이라는 것이, 추진위원회 단계에서는 법적인 규제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두 개의 지역 주택조합 대행업체가 한 지역을 두고 조합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조합 추진위원회의 활동을 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조합원은 지자체가 두 개의 조합이 한 지역을 대상으로 조합원 모집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방관했다고 분노를 금치 못하고, 지자체는 이런 주민의 반응에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지역 주택조합은 주민이 조합을 만들어 땅을 사고, 시공사를 선정해 집을 짓는 일종의 주택 공동구매 제도입니다. 1980년대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사업이 진행된 뒤 잠시 주춤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재개발, 재건축 정비 구역으로 지정됐다가 경기 침체로 사업이 지지부진해 개발 계획이 해제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주택조합이 대안으로 떠올라 다시 성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정부로부터 지역 주택조합 설립 인가를 받은 조합은 120여 개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전국에 아파트 58,000채를 건설하는 규모입니다. 지역 주택조합을 이용해 집을 마련하려는 서민은 계속 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택법에 나와 있는 지역 주택조합 관련 규정이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첫째, 지역 주택조합 설립 전 단계에서 업무 대행을 맡는 업체가 있는데 그 업체의 자격 요건을 규제할 방안이 마땅치 않아서 함량 미달의 업체가 난립할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검증받지 않은 업체가 난립하고, 이들이 과장된 광고로 조합원을 모집한다 해도 이것을 규제할 방안이 없으니 피해자가 늘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조합설립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사업이 잘못됐을 경우 조합원을 보호할 방안이 마땅치 않습니다. 지역 주택조합은 인가를 받은 이후에야 법의 규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설립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가 시행되지 않습니다.
     
셋째, 조합 설립 이후 시공자의 사유로 사업이 중단됐을 경우, 조합원에게 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지만 ‘시공자 귀책사유’가 매우 애매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중간에 실패할 경우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계약금과 조합원 비용을 내고 가입한 시민만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역 주택조합을 둘러싼 이런 제도적인 허점은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MCN (마지막 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