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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7. 2017

05. 버락 오바마와 잃어버린 미국의 자신감

<도널드 트럼프의 빅뱅>

놀랍게도 퇴임 직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훌쩍 넘는다. 퇴임 직전의 지지율만 놓고 보면 역대 대통령 최고다. 버락 오바마의 이러한 지지율은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와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보다 높다. 제45대 대통령 선거가 진흙탕 육탄전인 마당에, 미국 국민이 상대적으로 퇴임을 앞두고 있는 터인 버락 오바마에게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을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버락 오바마가 집권한 8년 임기는 무난했다. 대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스캔들에 연루된 적도 없었다. 버락 오바마에 대한 미국 언론의 염려는 골프를 좀 많이 쳤다는 정도였지만, 그리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버락 오바마는 늘 상식적인 수준에서 행동하고 평균인답게 발언했다.

사실 버락 오바마는 이전 미국 대통령 43명과 비교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미국 역사가 자랑할 수 있는 개인사, 탁월한 경력, 미국 교과서에 두고두고 실릴 연설, 몇 번 들어도 웃음이 나오는 농담도 남겼다. 그리고 두고두고 볼 만한 멋진 사진과 인상적인 장면도 많이 남겼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미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차별받는 국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기치 아래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락 오바마가 집권한 8년은 사실 이 2가지 문제에 대한 대국민 설득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쉽게도 버락 오바마의 설득은 완성되지 않았다. 쉽게 완성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지난 8년간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차별받는 미국 국민이 전보다 줄어든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반대로 흑백 갈등의 골이 더 깊게 파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백인 노동자들이 기여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바로 그 증거다.

하나가 되기 위한 고비일까? 아니면 더 깊은 골을 파는 계기로 봐야 할까? 어쨌든 버락 오바마의 대국민 설득은 현재까지 성공은 아니다. 과거보다 많이 수그러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이라는 미국에는 아직도 인종 갈등이 여전하다.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과 차별은 무수하다.

최초로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감격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인들의 흑인들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할 수는 없다. 제비 한 마리가 찾아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라는 말처럼, 버락 오바마는 흑백 평등 시대를 개막하는 첫 제비였을 뿐이다. 꽃이 피고 벌과 나비가 날아야 진짜 봄이다.

그럼에도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은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버락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 될 만한 충분한 자질과 조건을 갖췄고, 균형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것은 버락 오바마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품는 사람들의 입장일 수도 있다. 본래 지니고 있던 인종적 편견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나 인권 문제에 집중하느라 여타의 문제들에 소홀히 한 버락 오바마의 통치 방식에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버락 오바마의 피부색보다 지난 8년간 보여주었던 지도력을 더 냉정하게 평가한다. ‘미국의 영향력이 더 커졌는가?’, ‘국민의 경제 형편이 나아졌는가?’,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줄었는가?’ 이런 관점으로 평가하면, 버락 오바마가 벌인 인권 개선, 전 국민 대상 의료보험 제도 도입, 저소득 계층의 생활 안정, 교회와 국가의 분리 주장 등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훼손하고,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확실히 버락 오바마의 국가 경영 목표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많이 달랐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미국을 세계 1등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버락 오바마는 미국 국민을 세계 1등 국가에 어울리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국가 발전보다 국민 생활 향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미국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구호와 《불구가 된 미국》이라는 대선 공약집을 내건 도널드 트럼프의 출마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많은 국민이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무슨 소리야? 미국이 어디가 약해? 미국은 아직도 GDP 세계 1등 국가라고?”라거나 “중국이 따라왔다고 겁을 먹은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 미국과 중국의 경제 격차가 얼마나 큰 줄 알아?”, “미국 국민 1인당 GDP가 56,000달러야. 그런 나라가 얼마나 되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래서 문제다. 미국에는 그래서 일자리가 부족하다.

물론 1인당 GDP 상승이나 고임금으로 인해 개도국으로 제조 공장이 이전하는 것은 버락 오바마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 아니다. 이는 버락 오바마 집권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할 일이 일자리 창출이냐, 산적한 내부 갈등 해소냐 하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의 목표는 교과서적이었다. 신출내기 정치인 다운 순진함과 소박함이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미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를 구체적인 숫자를 거론하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경찰국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스스로 “나는 이 책에서 미국 정부가 지녀야 할 통일된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을뿐더러 차트와 그래프, 예정표, 10개 항쯤 되는 계획안을 빠짐없이 갖춘 실천 선언문을 내놓지도 못했다”고 밝혔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버락 오바마는 정말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 의원을 꺾었고,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전쟁 영웅 존 매케인을,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매사추세츠 주지사 미트 롬니를 물리쳤다. 민주당 지도부와 전혀 무관한, 마흔일곱밖에 되지 않은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이변이었다. 아니 기적이었다. 2년 임기에 머문 일리노이 주 상원 의원 경력, 미국 하원 의원 낙선, 대통령 선거를 위해 2년 만에 사임한 미국상원 의원 경력이 전부였다. 이런 경력을 지닌 정치인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이다.

마흔둘에 대통령에 당선된 시어도어 루즈벨트, 마흔셋이었던 존 F.케네디, 마흔여섯이었던 빌 클린턴에 이어, 버락 오바마는 마흔일곱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2017년 1월, 쉰여섯으로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는 일흔한 살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보다 열다섯 살, 낙선한 힐러리 클린턴보다 열네 살이 적다. 미국 역사상 네 번째로 젊은 대통령이었다.

도널드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불만이 바로 이것이다. 버락 오바마가 아무 준비도 없이 대통령이 되어서 미국이 불구가 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는 것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대결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와 버락 오바마의 대결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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