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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10. 2017

04. 네 번째 방, 자살 습관

<일곱 개의 방>

“마포대교로 가주세요.” 

택시를 타고 말했다. 택시 기사는 말없이 차를 돌렸다. 이제 차는 강변북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곧 다리에 도착하면 다리 한가운데에서 택시를 멈추고 내릴 것이다. 새벽 네 시.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적하다. 다리에는 아무도 없겠지. 나처럼 죽으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 시간에 다리 위에 있겠는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모든 게 다 끝난다. 후회도 원망도 없다. 그저 이 괴로움이 끝날 거라는 생각뿐이다. 문득, 몇 달 전 클리닉에서 본 서약문이 떠오른다. 위험 행동은 하지 않겠다, 자살 위기가 오면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결국 그 서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치료도 더는 받으러 가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아마 집에 있을 것이다. 지갑만 겨우 챙겨서 나왔으니까. 이대로 택시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가 박사님에게 전화를 건다면……. 그럼 어쩌면……. 

‘다 귀찮아.’ 

그때였다. 

“손님.” 

마포대교가 가까워오는지 기사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깐 바람 쐬고 댁으로 다시 들어가세요.” 

황망했다. 그곳은 다리 위가 아니라 한강 둔치였다. 

“아니, 왜…….” 
“조금 걷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몰라요.” 

뭔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기사에게 나는 대꾸도 못 한 채 택시에서 내렸다. 싸늘한 바람 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죽어 있던 내 감각을 깨운다. 조금 있으면 날이 밝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죽지 못했다. 

이렇게 내 여섯 번째 자살 시도도 실패로 끝났다. 

“택시 기사님 덕분에 자살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 셨네요.” 

박사님의 음성은 늘 그렇듯 편안하다. 

“네.” 
“혹시 지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지금은 아니에요. 이제 괜찮아요.” 

사실이다. 박사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왠지 차분해지니까. 자살 충동이 사라지고 나면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박사님을 찾아왔다. 

“현정씨가 확실히 안전해질 때까지 현정씨를 보호하는 게 제 의무이자 책임이에요. 그러니 현정씨도 저와 계속 만나면서 치료를 받으려면 제 제안을 따라야 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박사님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서약서 얘기구나.’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또다시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다면 그땐 어떻게 행동할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서약서 쓰기를 차일피일 미루며 치료도 중단했던 것이다. 

“우리는 현정씨를 위험 상황에서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거예요. 그게 현정씨의 비밀을 타인에게 밝히는 일일지라도요.” 

박사님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점점 더 궁지로 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 왜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알리겠다는 거야?’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현정씨 생명이니까요.” 

박사님이 마치 내 머릿속 질문을 들은 듯 이렇게 말했다. 문득,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절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할 수 있습니까?” 
“네, 서약할게요.” 

나는 고개를 들고 박사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오늘도 역시 안 되겠다.’ 

새벽 세 시에 눈을 떴다. 오늘도 한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멍하게 누워 있다가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겠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일중독자라고 부른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을 할 때 그나마 편안하다. 타국의 언어, 타인의 생각에 나를 완전히 맡긴 채 번역하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면 슬프거나 우울하지도 않다. 그렇게 컴퓨터 모니터와 책, 원고에 파묻혀 있다가 지쳐서 책상에 엎드려 그대로 잠이 들면 한두 시간이라도 편안하게 잘 수 있다. 




네 번째 방, 나를 죽이는 삶에서 돌보는 삶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좋은 음식을 먹고, 따뜻한 침구에서 충분히 잠을 자고,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안위와 편안함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현정은 이와는 반대로, 자신을 괴롭히고 죽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착취당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도 ‘아니오’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저축한 돈을 타인에게 주고, 자신은 이불 등 살림살이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살았습니다. 

현정은 DBT 치료를 통해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분석했고, 지속적으로 비수인적 환경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나가는 방법, ‘나’를 사랑하고 돌보는 삶을 배워나갔습니다. 재정적인 부분부터 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설계하도록 유도했고, 그 결과 현정은 이제 자신을 위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맛있고 건강한 한 끼를 좋은 사람들과 나눌 줄 알게 된 현정을 보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은 이렇게 작고 평범하지만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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