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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29. 2017

06. 포스코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미라클 경영>

오늘날 한국 경제를 있게 한 산업화의 힘, 그 산업화의 출발인 포항제철(포스코), 그런 포스코를 긴 산고 끝에 낳고 키운 박태준 명예회장의 기업가정신은 분명 한국의 산업 역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전해져야 한다. 혹자는 “박 명예회장이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하지 않았겠는가?”, “정부가 그렇게 밀어주는데 못해낼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전혀 없는 한국의 실정에서, 허허벌판에 일관제철소를 지어 현재의 포스코를 일궈낸 것은 분명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러한 성과를 두고, 미국 하버드대학과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포스코의 첫 번째 성공 요인으로 ‘박태준 리더십’을 꼽았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창업 리더십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중국 최고지도자 덩 샤오핑이 이나야마 요시히로 전 신일철 회장에게 중국에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요구하자, 그는 “중국엔 박태준 같은 인물이 없어서 안 된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1967년 가을, 박정희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일관제철소 건설 임무를 맡긴다. 포스코의 전신, 포항제철이 출범하던 1968년 당시 포스코는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자원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1기 103만 톤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약 1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구할 길이 없었다. 미국과 유럽의 돈줄이 완전히 막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박태준 명예회장은 대일청구권자금을 제철소 건설자금으로 전용하기 위해 정부와 함께 뛰었고, 이를 성사시켰다.


포스코는 창립 2년째인 1970년 4월 1일, 온 국민의 성원 속에 조강 연산 103만 톤 규모의 1기 설비 착공식을 했다. 이후 회사는 선조들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할 경우 영일만에 빠져 죽겠다는 ‘우향우 정신’을 바탕으로 철야 돌관작업 등 헌신적인 노력으로 공사를 진행하여 1기 건설착공 3년 2개월 만인 1973년 6월 9일 첫 출선의 감격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 최초의 일관제철소 건립 이후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주도해 왔던 포스코는 1998년 말부터 민영화 작업을 시작하여 3년여 만인 2000년 10월 4일 민영화를 완료한다. 이후 공기업에서 민영 포스코로 출범, 글로벌 철강 리더십을 가진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여 현재에 이른다. 


     

창업자의 ‘완벽주의’ 리더십 

   

기업성과의 절반은 리더십의 영향이라는 많은 연구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은 포스코의 성공 요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요소이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창립 당시 열악한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도 자본 집약적인 철강산업에 투신하여 20여 년을 몸 바쳐 세계적인 철강기업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는 제철보국의 정신으로 “철은 곧 국가다. 그러므로 철은 곧 나의 목숨이다.”라고 종업원을 독려한다. 즉, ‘철은 산업의 쌀로서, 회사는 양질의 철을 대량생산,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창업자의 철학은 직원들을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결속하게 하였다.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동해에 투신하겠다는 ‘우향우 정신’은 이러한 의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무엇보다, 그의 제철보국의 정신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종업원들에게 대충 일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대충 일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는 포스코 정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종업원들의 일하는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고 황홀했습니다. 이것이 4반세기 동안 나 자신이 포스코에 묻혀 살았던 이유입니다.”

   

이 ‘완벽주의’를 잘 나타내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제3기 공사가 한 창이던 1977년 8월 2일, 포스코는 제강공사의 기초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일만의 지하 암반 구조는 경사져 있어 작업을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강철 파일을 용접하고 길게 연결해서 암반까지 닿을 수 있도록 깊이 박아야만 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현장을 시찰하던 도중 파일 안으로 콘크리트를 붓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강철 파일 몇 개가 약간씩 움직이는 것을 알아챘다. 이것은 파일들이 암반까지 박히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한국의 시공회사와 일본 감독책임자가 공모하여 부실공사를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들은 지상으로 나와 있는 파일들의 길이를 맞추느라고 암반까지 박지 않은 상태에서 시공을 계속했다. 이렇게 되면 기초공사가 불안해져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었다. 박태준은 부실시공한 기초공사를 모두 폭파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제3기 공사를 하는 시공회사와 감독자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렀다. 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실시공된 기초공사를 모두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다. 한국의 시공회사는 부실공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며 다시는 포스코 공사를 맡지 못했다. 또한, 일본인 감독자는 귀국시켜버렸다. 

     

“저는 멋지게 시범을 보일 필요가 있었지요. 장래를 위해 튼튼히 공사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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